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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1 : 1~16 전능자의 그늘,가장 좋은 피난처

by Lily00112233 2026. 4. 8.

시편 91 : 1~16
전능자의 그늘,
가장 좋은 피난처


안전한 피난처 91:1~13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환난당할 때 도우시는 분 91:14~16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1. 내용 요약 (Summary)
시인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과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누리는 절대적인 안전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새 사냥꾼의 올무, 전염병, 밤의 공포와 낮의 화살로부터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방패와 요새가 되십니다. 

천 명, 만 명이 쓰러지는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자는 천사들의 호위 아래 보호받으며 

사자와 독사를 이기는 권세를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이름을 아는 자를 반드시 건지고, 

응답하며, 영화롭게 하실 것을 약속하며 구원의 확신으로 마무리하십니다.

2. 역사적 구조 (Historical Structure)
① 지혜 전승과 예배적 배경 (1~2절)
이 시는 특정 역사적 사건을 명시하기보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국가적 재난(전염병, 전쟁)이나 

개인적 위기에 처했을 때 성전에서 선포되었던 '신뢰의 시'입니다.
1절의 '은밀한 곳', '그늘'은 성전 지성소의 언약궤 위 '그룹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성소 중심적 역사성을 지닙니다.

② 광야와 전쟁의 이미지 (3~13절)
올무, 전염병, 화살, 재앙, 사자, 독사 등은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걷거나 

대적과 싸울 때 마주했던 실제적인 역사적 위협들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구체적인 위협들을 나열하며 하나님의 보호가 관념이 아닌 '실제적 사실'임을 강조합니다.

3. 신학적 구조 (Theological Structure)
① 신론(Theology): 네 가지 거룩한 칭호 (1~2절)
시인은 하나님을 지존자(엘리온), 전능자(샤다이), 여호와, 나의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신학적 의미: 가장 높으신 분이 나를 덮으시고(그늘),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 

나의 안식처가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지식이 피난처의 견고함을 결정합니다.

② 보호의 신학: '깃'과 '날개'의 은유 (4~11절)
어미 새가 새끼를 품듯 '깃'으로 덮으시고, 천사들을 명령하여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십니다.

신학적 통찰: 하나님의 보호는 소극적인 회피가 아니라,

재앙의 한복판에서 당신의 '진실함(Truth)'을 방패 삼아

우리를 감싸 안으시는 적극적이고 인격적인 개입입니다.

7절의 '만 명'이 쓰러지는 극한 상황은 하나님의 보호가 상대적 확률이 아닌 절대적 주권임을 보여줍니다.

③ 관계의 신학: "사랑한즉 건지리라" (14~16절)
13절까지는 시인의 선포였다면, 14절부터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Oracle)입니다.

구원론적 조건: 하나님이 건지시는 근거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사랑(Hashaq)'과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친밀한 관계가 환난 날에 응답과 구원의 열쇠가 된다는 '관계 중심적 신학'을 제시합니다.


인생에는 반드시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이 있습니다. 

이것을 피하는 방법은 더 단단한 성벽을 쌓는 것이 아니라, 전능자의 그늘 아래로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건지실 때 이유를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 것, 

그 하나면 충분합니다. 지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넘어, 그분의 이름을 깊이 사랑하는 관계 안에 거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올무'나 '전염병' 같은 문제가 있습니까? 

천 명이 옆에서 무너지는 것 같은 위기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주소지는 재앙의 한복판이 아니라 '지존자의 은밀한 곳'입니다. 

그 그늘 아래서 평안히 거하며, 사자와 독사를 발로 누르는 승리의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주소지는 어디입니까? 전능자의 그늘 아래

“너의 진짜 주소는 어디인가
시편 91:1–16

 


도입
당신의 진짜 '주소'는 어디입니까?


불안의 시대: 우리를 에워싼 그림자
여러분, 요즘 세상을 보며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불안', '위기', '예측 불가'라는 단어들이 우리 삶을 가장 잘 설명할 것입니다.

뉴스를 틀면 전쟁과 경제 위기, 변종 질병과 끊이지 않는 사고 소식들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우리 내면의 불안입니다.
"나중에 뭐 먹고 살지?"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라는 관계에 대한 불안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라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입니다.

가짜 피난처: 모래 위에 쌓은 성벽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숨을 곳을 찾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돈으로 성벽을 쌓고, 스펙으로 요새를 만들며, 

인맥과 보험이라는 안전장치를 겹겹이 두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집니다.

“그게 진짜 너를 지켜줄 수 있느냐? '만 명'이 쓰러지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도

그 성벽이 너를 보호할 수 있느냐?”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믿었던 세상의 방패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전능자의 그늘: 결코 뚫리지 않는 주소지
오늘 시인은 우리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견고하고, 

동시에 가장 따뜻한 피난처를 소개합니다.

바로 '전능자의 그늘'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단 하나를 묻습니다.
 “너의 진짜 주소는 어디냐?”

여러분은 지금 '불안'이라는 길거리에 노숙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전능자의 그늘'이라는 완벽한 요새 안에 거주하고 계십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비결인 

'진짜 피난처'로 이사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현실 속 우리는 취업의 불안, 흔들리는 관계, 예측할 수 없는 건강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스펙, 사람, 자기관리 같은 세상적 안전장치를 붙들지만, 그것들은 우리를 완전히 지켜주지 못합니다. 

결국 우리는 더 흔들리지 않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아시고 붙드시는 분이시며, 

그분 안에서만 참된 안전이 있습니다. 세상은 당신을 ‘번호’로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날개 아래 숨겨진 보석’으로 대하십니다.


본문

 

진짜 피난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 
: 잠깐 들르는 쉼터인가, 영원한 주소지인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핵심 단어를 마주합니다. 바로 ‘거주’와 ‘사는 자’입니다.
피난처는 소나기가 올 때 잠시 비를 피하고 다시 떠나는 편의점 같은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위기 때만 잠깐 들르는 '비상대피소'가 되기를 거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구적인 주소지’, 즉 우리가 먹고 자고 숨 쉬는 ‘집’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영적 노숙'을 끝내십시오
많은 청년이 평소에는 내 힘으로 살다가, 감당 못 할 위기가 닥쳐야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것은 '거주'가 아니라 '방문'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을 필요할 때만 찾는 서비스 센터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거처’이십니다. (9절) 여러분의 마음이 불안이라는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것을 끝내고, 

전능자의 그늘이라는 완벽한 집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라는 2절의 고백이 매일의 아침 인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방식: 깃과 날개
딱딱한 성벽이 아닌 따뜻한 품
4절을 보십시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이미지를 만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실 때, 차가운 철갑을 두른 군대의 사령관처럼만 서 계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새끼를 품기 위해 온 몸의 깃을 펼쳐 체온을 나누는 ‘어미 새’로 묘사됩니다.

 인격적인 개입과 진실함의 방패
:이것이 하나님의 보호 방식입니다.

품어주는 보호: 하나님은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단순히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품 안으로 우리를 끌어당기십니다. 폭풍우가 쳐도 어미 새의 품 안은 가장 따뜻합니다.

진실함의 방패: 4절 후반부는 하나님의 ‘진실함(Truth)’이 방패가 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방패는 녹슬고 깨지지만,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과 성품은 결코 뚫리지 않는 최강의 방패입니다.

세상의 보호에는 언제나 조건이 따릅니다. 더 잘해야 하고, 더 가져야 하고, 

더 버텨야 유지되는 불완전한 안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는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이유를 묻지 않고, 자격을 따지지 않으며, 우리를 있는 그대로 덮으시는 사랑입니다. 

“깃으로 덮으신다”는 것은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주님의 온기를 직접 느끼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청년 여러분, 지금 세상의 거센 바람이 여러분을 흔들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멀리서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영혼을 부드럽고도 강한 깃으로 덮고 계십니다. 

그 날개 아래에서 주님의 심장 소리를 들으십시오. 그것이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입니다.

시편 91편 1절의 ‘거주’는 단순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계속 살아가는 상주(常住)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4절의 ‘깃’은 그렇게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가 실제로 누리는 보호와 온기입니다. 

하나님 안에 머무는 자만이 그분의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을 피하는 지능적인 도피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인격적인 안식입니다.

그러니 잠시 멈추어, 그 날개 아래의 아늑함을 묵상하십시오. 

세상의 소음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당신을 감싸고 있는 그 온기를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그 평안 위에서, 

천 명이 쓰러지고 만 명이 무너지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십시오.


 

두려움을 밟는 권세: 상황이 아니라 결과를 책임지시는 하나님
밤낮으로 날아드는 화살들


본문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밤에 찾아오는 공포, 낮에 날아드는 화살,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 

시인은 우리의 삶을 에워싼 두려움의 목록을 아주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밤에는 보이지 않는 불안이, 낮에는 눈에 보이는 위협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것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필리핀이나 한국이나 똑같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만 명'의 의미
7절에 보면 "천 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쪽에서 쓰러져도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는 파격적인 약속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믿는 자에게는 절대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마술적 주문이 아닙니다.
진짜 의미는 무엇입니까? 상황이 어떠하든 그 '결과'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무너져도 너는 무너지지 않게 하겠다.

환난이 너를 스쳐 지나가게 하거나, 환난을 뚫고 지나갈 힘을 주겠다.
결국 너를 지키고, 끝까지 붙들겠다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의 선포입니다.

핵심은 관계: 사랑하기 때문에 건지신다 
하나님이 건지시는 단 하나의 조건
이제 본문의 결론이자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14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조건은 우리의 뛰어난 능력이나 완벽한 행위가 아닙니다. 

바로 ‘사랑(Hashaq)’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바싹 달라붙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관계의 신학: 이름을 아는 지밀함
또한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름을 안다는 것은 지식적인 정보가 아니라, 인격적인 깊은 '관계'를 뜻합니다.
결국 시편 91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는 지금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운가?”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은 환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과 밀착되어 있는 자는 사자와 독사를 발로 누르는 승리의 권세를 맛보게 됩니다.

 


ㅡ부모님의 손을 잡은 아이

어린 시절, 캄캄한 밤에 혼자 방에 있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작은 소리에도 가슴이 뛰고 온갖 무서운 상상이 엄습합니다. 
그런데 그때 부모님이 들어오셔서 옆에 누워 손을 잡아주시면 어떤가요? 
순식간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상황이 바뀐 게 아닙니다. 방은 여전히 어둡고 밖에서는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바뀐 것은 단 하나, “누가 내 옆에 있느냐”입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문제가 없어야 평안한 것이 아니라, 그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기에 평안한 것입니다.

 


결론 및 결단


흔들리는 세상, 흔들리지 않는 요새
오늘 우리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가 누리는 압도적인 특권을 보았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위협적입니다. 밤의 공포와 낮의 화살, 예상치 못한 전염병과 재앙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나의 요새로 선포하고 

그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자에게는 결코 뚫리지 않는 진실함의 방패가 주어집니다.

'방문객'에서 '거주자'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 안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필요할 때만 잠시 찾는 방문객인가?"
오늘 여러분의 불안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두려움은 환경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거리에서 옵니다. 하나님과 가까우면 폭풍 속에서도 평안하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잔잔한 호수 위에서도 불안한 법입니다. 

사자와 독사 같은 삶의 문제들 앞에서 떨지 말고, 전능자의 손을 잡고 그것들을 발로 밟아 누르며 일어서십시오.

마지막 선포: 당신의 주소지는 어디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이 고백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의 안전을 위협할 때마다 이 주소지를 확인하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재앙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능자의 날개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대상'이 아니라 '머무는 거처'로 선택하십시오. 

그 그늘 아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안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재앙의 한복판에서도 당신의 주소지가 '전능자의 그늘'이라면, 당신은 가장 안전합니다."

 

진짜 안전은 환경이 바뀌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불안이라는 노숙을 끝내고 하나님의 품으로 이사합시다.

더 이상 흔들리는 세상 속에 자신을 맡겨 두지 말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 나를 숨겨 주소서.”
이 고백 하나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건지시고, 붙드시며, 결국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진짜 안전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거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질문


01. 지금 내 삶에서 나를 가장 잠 못 들게 하는 ‘밤의 공포’나 나를 공격하는 ‘낮의 화살’(취업, 미래, 관계 등)은 무엇입니까?
02. 나는 위기가 닥칠 때 가장 먼저 어디로 도망칩니까? 하나님 안에 ‘거주’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급할 때만 찾는 ‘방문객’인가요?
03. 최근 유난히 불안했다면, 그것은 환경의 문제였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과의 ‘거리’ 문제였습니까?
04. 하나님께 ‘바싹 달라붙기(사랑)’ 위해 이번 주에 내가 꼭 실천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05. 내가 오늘 믿음으로 밟고 넘어가야 할 내 삶의 ‘사자와 독사’(두려움, 중독, 상처 등)는 무엇입니까?
06. 시편 91편 중 오늘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구절은 무엇이며, 그 구절을 어떤 상황에서 나의 ‘방패’로 삼고 싶나요?


 

불안의 노숙을 끝내고 전능자의 품으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시며, 온 우주를 당신의 날개 아래 품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밤마다 엄습하는 공포,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전염병과 재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높은 성벽을 쌓으라 말하고, 더 많은 돈과 스펙으로 자신을 보호하라 유혹하지만, 

그 모든 안전장치가 '만 명'이 쓰러지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는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도 보았습니다.

주님, 이제 우리의 '영적 노숙'을 끝내고 전능자의 그늘 아래 '이사'하기를 결단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을 필요할 때만 잠시 찾는 편의점이나 비상대피소 정도로만 생각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이제는 주님을 우리의 '영원한 주소지'로 삼겠습니다. 

잠깐 들렀다 떠나는 방문객이 아니라, 주님의 품 안에 먹고 자며 숨 쉬는 '거주자'가 되게 하옵소서.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라는 고백이 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삶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를 덮으시는 주님의 '깃'과 '날개'의 온기를 느끼게 하옵소서. 

세상의 보호는 차갑고 조건적이지만, 주님의 보호는 어미 새가 새끼를 품듯 따뜻하고 인격적임을 믿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 명, 만 명이 곁에서 쓰러지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날개 아래서 주님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평안히 단잠을 자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세상의 방패는 깨지나 주님의 '진실함'이라는 방패는 결코 뚫리지 않음을 신뢰하며, 두려움의 안개를 걷어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사자와 독사를 밟는 권세'를 주시옵소서. 재앙이 비껴가기만을 바라는 소극적인 신앙이 아니라, 

우리를 위협하는 삶의 모든 문제와 어둠의 세력들을 발로 누르며 승리하는 적극적인 보호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호위하는 천사들의 손길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발이 절망이라는 돌에 부딪혀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필리핀의 치안이나 건강,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사자 앞에서도 당당히 복음의 깃발을 흔드는 청년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무엇보다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관계' 안에 머물게 하옵소서.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말씀하신 주님, 

우리가 완벽해서 건지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바싹 달라붙어 있기에 건지신다는 그 은혜를 붙듭니다. 

주님의 이름을 깊이 아는 친밀함 속에서, 환난 날에 부르짖을 때 응답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여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주님의 구원을 보게 하옵소서.

그들의 주소지가 재앙의 한복판이 아니라 '전능자의 그늘'이 되게 하시고, 

그곳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만족과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요새이시며, 가장 안전한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십니다!"
"나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