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 : 45~56
고난 주간 QT 십자가 죽음 앞 진실한 신앙 고백
숨을 거두심 27:45~53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의 고백 27:54~56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1. 내용 요약 (Summary)
정오(제육시)부터 오후 3시(제구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합니다.
고통의 절정에서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시며 영혼이 떠나십니다.
그 순간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죽었던 성도들이 일어나는 초자연적 징조가 나타납니다.
이를 목격한 로마 백부장과 군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고백하고,
멀리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여인들의 모습이 비춰지며 주님의 지상 사역이 마감됩니다.
2. 역사적 구조 (Historical Structure)
① 초자연적 어둠과 심판의 징조 (45절)
'제육시부터 제구시'는 현대 시간으로 낮 12시부터 오후 3시입니다.
가장 밝아야 할 시간에 임한 어둠은 단순한 일식이 아니라,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아들의 고통에 대한 우주적 슬픔을 상징하는 역사적 징조입니다.
② 성소 휘장의 파손 (51절)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던 두꺼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이는 사람이 밑에서 찢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에서 여셨음을 의미합니다.
역사적 전환: 이는 구약의 제사 제도가 종결되고, 누구나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③ 백부장의 외인(Gentile) 고백 (54절)
예수님의 죽음을 집행했던 로마 군인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복음이 유대의 담을 넘어 이방인에게로 확장될 것임을 예고하는 역사적 복선입니다.
3. 신학적 구조 (Theological Structure)
① 유기(Abondonment)의 신학: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46절)
예수님은 시편 22:1을 인용하시며 하나님께 '버림받음'을 외치십니다.
신학적 의미: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외면하신 이 순간은 인류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전가된 순간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영원한 단절과 유기를 주님이 대신 당하심으로,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대속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② 승리의 신학: 휘장의 찢어짐과 부활의 첫 열매 (51~53절)
주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습니다. 휘장이 찢어짐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이 허물어졌고(히 10:19-20),
무덤이 열린 사건은 주님의 죽음이 죽음의 권세를 깨뜨렸음을 신학적으로 선포합니다.
자던 성도들이 일어난 것은 장차 있을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자 첫 열매입니다.
③ 신실함의 미학: 끝까지 자리를 지킨 여인들 (55~56절)
모든 제자가 도망갔을 때, 갈릴리에서부터 섬겨온 여인들은 '멀리서'라도 끝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신학적 교훈: 참된 신앙은 화려한 고백보다 '고난의 자리에 끝까지 머무는 것'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여인들은 후에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고난 주간, 이 엄숙한 죽음의 현장을 묵상할 때 우리는 두 소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명: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이 비명은 우리를 향한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사랑의 확약입니다.
백부장의 고백: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 이 고백은 그분과 가장 멀리 있던 이방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진실한 신앙의 정수입니다.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이제 우리를 가로막을 담은 없습니다. 우리의 실패도, 죄책감도, 두려움도 찢겨진 휘장 사이로 다 지나갔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는 휘장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이미 찢으셨습니다.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주님의 죽음은 여러분의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청년설교
설교 제목: 찢겨진 휘장, 열린 하늘
:십자가 앞에서 드러나는 진짜 믿음
마태복음 27:45~56
도입
: 당신의 신앙이 '진짜'가 되는 순간
평안함 뒤에 숨은 가짜 믿음
“여러분의 신앙은 언제 가장 진짜가 됩니까?”
뜨겁게 찬양할 때입니까?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할 때입니까?
아니면 모두가 나를 축복해 주는 예배의 자리입니까?
사람은 상황이 편안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다 믿음이 좋아 보입니다.
그때의 믿음은 어쩌면 '기분'일지도 모릅니다.
고난, 신앙의 리트머스 시험지
진짜 믿음은 고난 앞에서 드러납니다.
내 삶이 처참하게 무너질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닥칠 때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을 때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내가 내뱉는 첫 마디,
내가 붙드는 그 끝자락이 바로 여러분의 '진짜 실력'이자 '진짜 신앙'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3시간
오늘 본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장면을 비춥니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태양조차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깔린 예수님의 죽음의 순간입니다.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이해할 수 없으며, 하나님마저 침묵하시는 것 같은 그 처절한 죽음의 자리입니다.
세 종류의 신앙, 세 종류의 응답
놀랍게도 그 짙은 어둠 속에서 세 종류의 신앙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버림받음 속에서도 하나님을 부르짖는 예수님의 신앙
모든 기적이 멈춘 순간 터져 나온 이방인 백부장의 신앙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킨 여인들의 신앙
오늘 우리는 이 어두운 십자가 아래서 나의 신앙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정직하게 대면하기 원합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빛나는 진실을 만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
유기의 신학
: 나를 대신해 버림받으신 주님

우주에서 가장 고독한 비명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십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장면입니다.
3년 동안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시던 하늘 아버지가,
인류의 온갖 추악한 죄를 뒤집어쓴 아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신 순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셨을까요?” 답은 “예(Yes)”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기에, 죄 덩어리가 된 아들을 심판하셔야만 했습니다.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친밀함이 끊어지는,
인류 역사상 유일한 ‘영적 유기’가 일어난 것입니다.
위대한 맞교환(The Great Exchange)
왜 주님은 이 처절한 단절을 겪으셔야 했을까요?
이것이 바로 복음의 정수인 ‘대속’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단절을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심판을 주님이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처해야 할 버림받음을 주님이 대신 가져가셨습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위대한 맞교환’입니다.
주님이 하나님께 ‘버림받음’을 당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영원히 용납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는 ‘절대 버리지 않겠다’는 확증입니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이런 생각 해본 적 없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아.”
“내 기도는 천장도 못 뚫고 튕겨 나오는 것 같아.”
“결국 하나님도 나를 버리셨나 봐.”
그 순간, 여러분의 감정을 믿지 말고 십자가를 보십시오.
십자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내 아들을 버렸던 그 순간, 너를 절대 버리지 않기로 결단했다.”
예수님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물으셨기에,
이제 우리에게는 “내가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만 남았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고독과 소외감은 주님이 겪으신 그 칠흑 같은 어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버림받으심이 나의 ‘영원한 안전’이 되었음을 믿으십시오.
‘느낌’(감정적 소외)과 십자가의 ‘팩트’(영적 대속)를 대조해야합니다.
주님이 하나님을 ‘아버지’가 아닌 ‘하나님’(엘리)으로 부르며 철저히 외인 취급당하셨음을 강조할 때,
자신이 받은 용납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승리의 징조: 위로부터 찢어진 휘장
단절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그 찰나, 성전 깊은 곳에서 경악할 만한 소리가 들립니다.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여러분, '성소 휘장'이 무엇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벽입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 휘장은 말 여러 마리가 양옆에서 끌어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두껍고 견고한 천이었습니다.
죄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넘을 수 없었던 '불가능의 경계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죽으시는 순간, 그 철벽같던 담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사람이 찢은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디테일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은 휘장이 아래에서 위가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밑에서 칼로 찢은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지성소에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친히 위에서부터 찢어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죽음을 보시고, 이제는 인간을 가로막던 그 지긋지긋한 죄의 담을
직접 허물어뜨리셨다는 역사적 선언입니다.
이제 더 이상 짐승의 피도, 복잡한 제사 절차도, 중보자 제사장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피'를 힘입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열린 것입니다.
자격이 아니라 '열린 문'을 보십시오
여전히 많은 청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주저합니다.
“목사님,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제가 지난주에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염치가 없네요.”
“좀 더 거룩해진 다음에 하나님을 찾을게요.”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복음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휘장은 여러분의 노력으로 찢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이 찢어 놓으셨습니다.
값은 이미 지불되었고, 문은 활짝 열렸습니다. 여러분이 자격이 있어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주님이 길을 여셨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격의 유무가 아니라,
이미 열린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우리의 '불신'입니다.
오늘 그 찢어진 휘장 사이로 쏟아지는 하나님의 영광 앞으로 담대히 걸어 나오십시오.
더 이상 휘장 뒤에 숨지 마십시오.
'완벽주의적 신앙'을 깨뜨려야합니다. 휘장이 찢어진 것은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주님이 '완벽한 희생'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의 '담력'을 얻게 하는 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브리서 10:19)
백부장의 고백: 멀리 있던 자의 반전
종교인이 놓친 진실
지진과 일어난 일들을 보고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3년을 동고동락한 제자가 아닙니다. 성경을 달달 외우던 바리새인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을 처형한 집행관, 이방인 백부장입니다.
얼마나 오래가 아니라, 얼마나 진짜인가
이것은 충격적인 반전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자부했던 종교 지도자들은 눈앞의 메시아를 못 박으라고 소리쳤지만,
하나님과 가장 멀리 있었던 로마 군인은 십자가를 '제대로' 보는 순간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 직분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십자가 앞에 서 있는가? 그분을 진짜로 대면하고 있는가?"
이것이 본질입니다. 껍데기뿐인 익숙함에 속지 마십시오.
가장 낯선 곳에서 터져 나온 백부장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 신실함의 정의
: 능력이 아니라 머무름입니다
본문 55절과 56절에는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모든 제자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도망치고 숨었을 때,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섬기며 따라온 여인들은 끝까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드릴 힘도, 빌라도에게 항의할 권력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남아 있음'을 주목하십니다.
버티는 것이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은 대단한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아닙니다.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도 끝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세상이 비웃어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는 것
그 '남아 있음'이 결국 승리합니다.
놀랍게도 이 여인들이 훗날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되는 영광을 얻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 머무름이 가장 큰 신앙입니다.

ㅡ감정선 예화: 오해를 푼 눈물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뜨겁게 교회를 섬기고 리더로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안이 기울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며 인생이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늘은 구리 빛처럼 단단했고, 응답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절규했습니다. “하나님, 나 버리신 거죠? 당신은 내 고통에 관심도 없잖아요!”
그는 하나님을 저주하며 교회를 떠났습니다.
몇 달 뒤, 우연히 길에서 흘러나오는 십자가 설교를 듣게 됩니다.
거기서 이런 문장을 만납니다.
“청년아, 하나님이 너를 버린 게 아니라,
네가 버림받지 않게 하려고 예수님이 대신 버림받으신 것이다.”
그 순간 청년은 길가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미워해서 고난을 주신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당해야 할 모든 거절과 아픔을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다 겪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 내가 오해했구나.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놓으신 적이 없구나.”
그날, 그는 무너진 모습 그대로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백부장의 '발견'과 여인들의 '머무름'을 살펴보세요.
신앙은 깨닫는 것(Insight)에서 시작해 머무는 것(Endurance)으로 완성됩니다.
결론 및 결단
절망의 비명이 만든 소망의 노래
예수님의 마지막 비명,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인류의 모든 저주와 단절을 끝내는 거룩한 마침표였습니다.
주님이 가장 처절하게 버림받으셨기에, 우리는 이제 영원히 용납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숨을 거두시는 순간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진 것은,
이제 누구나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음을 알리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찢어진 휘장 사이로 걸어 나오십시오
청년 여러분, 아직도 여러분의 과거, 죄책감, 그리고 "나는 안 돼"라는 두려움의 휘장 뒤에 숨어 계십니까?
주님이 이미 그 휘장을 찢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찢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위에서부터 찢어 놓으셨습니다.
자격이 없다고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 찢어진 틈 사이로 흐르는 용서의 빛을 따라,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십시오.
마지막 선포
: 죽음을 죽이신 위대한 승리
세상은 십자가를 실패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오늘 보았습니다.
주님의 죽음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무덤을 연 위대한 승리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 십자가 아래 서 있던 백부장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백합시다.
"예수님, 당신은 진실로 나의 구원자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기에,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묵상질문
01. 내가 인생에서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았다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때 나를 대신해 버림받으신 예수님을 떠올려 보았나요?
02. 지금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심리적 휘장(죄책감, 두려움, 상처)'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이미 찢으셨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위로가 되나요?
03. 주님의 죽음으로 무덤이 열린 것처럼, 내 삶에서 주님을 만나 '죽어있던 부분'이 다시 살아난 경험이 있나요?
04. 나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당당히 고백하며 살고 있나요?
05.다들 떠나가는 '고난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던 여인들처럼,
내가 이번 한 주 동안 끝까지 지켜야 할 신앙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06. 주님이 하나님께 외면당하심으로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번 주에 실천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찢겨진 가슴, 열린 하늘의 사랑
우리의 영원한 아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오늘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도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죽음 앞에 우리 청년들이 멈춰 섭니다.
정오의 태양조차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가득했던 그 세 시간,
우리를 대신해 모든 저주와 심판을 온몸으로 받아내신 성자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합니다.
주님, 나를 대신해 버림받으신 그 사랑 앞에 엎드립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셨던 주님의 그 처절한 비명이,
사실은 우리가 영원히 지옥에서 쏟아내야 할 절규였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하나님께 철저히 외면당하고 버림받으셨기에,
이제 우리에게는 결코 버림받지 않는 자녀의 권세가 주어졌음을 믿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 의심했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의 그 '버림받음'이 나의 '영원한 안전'이 되었음을 확신하며 일어서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를 가로막던 휘장을 친히 찢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죄의 담이 너무나 높고 단단해서 도저히 하나님께 나갈 수 없었던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그 거대한 휘장을 찢어버리셨음을 믿습니다.
"나는 자격이 없어, 나는 준비가 안 됐어"라며
여전히 죄책감과 두려움의 휘장 뒤에 숨어 있는 청년들이 있습니까?
주님이 이미 찢으셨고, 문은 활짝 열렸음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주님이 치르신 완벽한 대가로 인해,
이제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걸어 나가는 믿음의 청년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백부장의 고백과 여인들의 신실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익숙한 종교적 지식에 갇혀 십자가를 무감각하게 바라보던 눈을 씻어주시고,
십자가의 진실을 대면할 때 터져 나왔던
백부장의 그 뜨거운 고백이 우리 입술에서도 터져 나오게 하옵소서.
"예수님, 당신은 진실로 나의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한 상황이 변하지 않고 아무런 기적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순간에도,
십자가 곁을 묵묵히 지켰던 여인들처럼 우리도 끝까지 믿음의 자리에 머물게 하옵소서.
능력이 아니라 '남아 있음'이 진짜 신앙임을 깨닫고,
이번 한 주간 세상의 거센 유혹 속에서도 예배의 자리, 말씀의 자리를 지켜내게 하옵소서.
특별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울부짖고 있는 청년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네가 버림받지 않게 하려고 이미 예수님이
대신 버림받으셨다는 그 복음의 팩트가 그들의 깨진 가슴에 박히게 하옵소서.
찢겨진 휘장 사이로 쏟아지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 청년들의 모든 우울과 절망을 몰아내고,
다시 살 소망과 기쁨을 얻게 하옵소서.
주님의 죽음이 우리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비명이 우리의 찬양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찢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편 90 : 1~17 유한한 인생이 의지할 하나님 (1) | 2026.04.07 |
|---|---|
| 마태복음 27 : 57~66 고난 주간 QT 봉인되는 무덤, 그러나 봉인될 수 없는 부활 (1) | 2026.04.04 |
| 마태복음 27 : 1~26 고난 주간 QT 거짓된 고발, 불의한 판결 (0) | 2026.04.01 |
| 마태복음 26 : 69~75 고난 주간 QT 영혼을 일깨운 소리, 통회하는 눈물 (0) | 2026.03.31 |
| 마태복음 26 : 57~68 고난 주간 QT 대제사장의 명령 (1) | 2026.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