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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마태복음 27 : 1~26 고난 주간 QT 거짓된 고발, 불의한 판결

by Lily00112233 2026. 4. 1.

 

마태복음 27 : 1~26
고난 주간 QT 거짓된 고발, 불의한 판결


가룟 유다의 죽음 27:1~10
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십자가에 넘겨지심 27:11~26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1. 내용 요약 (Summary)
날이 밝자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깁니다. 한편, 스승을 판 유다는 정죄된 결과를 보고 뒤늦게 후회하며 은 삼십을 돌려주려 하지만 거절당하자 성소에 던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재판정에 서신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에 당당히 답하시면서도 종교 지도자들의 고발에는 침묵하십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알았고 아내의 경고까지 들었으나, 민란을 두려워하여 무리의 요구대로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한 뒤 십자가형에 넘겨줍니다.

2. 역사적 구조 (Historical Structure)
① 사법권의 이양과 빌라도의 딜레마 (1~2, 11~14절)

당시 유대 공회는 사형 집행권이 없었기에 예수를 로마법상 '반역자'로 몰아 총독 빌라도에게 압송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시기'를 간파했으나(18절),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유지해야 하는 통치자로서 유대인들과의 정치적 타협이 절실했습니다.

② 유다의 죽음과 구약의 성취 (3~10절)

유다가 은을 던진 곳이 '성소(Naos)'였다는 점은 그가 제사장들만 들어가는 곳까지 침범할 만큼 절망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대제사장들이 그 돈으로 산 '토기장이의 밭'은 이방 나그네의 묘지가 됩니다.

역사적 증언: 이는 스가랴 11:12-13과 예레미야 19:1-13의 예언적 이미지들이 결합된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절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역사적으로 확증합니다.

③ 바라바 전례와 군중 심리 (15~23절)

'바라바(Barabbas)'라는 이름은 아람어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예수)과 인간의 아들(바라바) 사이에서 군중은 폭력적 혁명가를 선택합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관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왜곡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단면입니다.

3. 신학적 구조 (Theological Structure)
① 후회(Remorse)와 회개(Repentance)의 차이 (3~5절)
유다는 스스로 '뉘우쳤으나' 주님께 돌아가지 않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신학적 교훈: 유다의 죽음은 하나님 없는 양심의 가책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죄를 인지했지만, 죄를 사하시는 '은혜'를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대제사장들의 '핏값' 운운하는 위선은 종교적 형식주의가 낳은 극악한 악을 폭로합니다.

② 대속의 신비: 바라바를 대신함 (21~26절)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이 흉악범 바라바를 대신하여 사형장에 가십니다.

신학적 의미: 이것은 '제한적 대속'의 모형입니다. 바라바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어야 했으나, 예수로 인해 자유를 얻었습니다.

재판정의 불의한 판결 이면에는 인류를 대신해 죽으시는 하나님의 '의로운 대속'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③ 빌라도의 손 씻기와 백성의 저주 (24~25절)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으나, 사도신경은 여전히 그를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기록합니다. 백성들은 "그 피를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칩니다.

신학적 비극: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빌라도의 '비겁함'과 유대 군중의 '광기'가 합쳐져 의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하나님은 그 흘리신 피를 심판의 근거가 아닌 구원의 근거로 바꾸시는 역설을 준비하십니다.

고난 주간, 이 재판정을 묵상할 때 우리는 세 부류의 인간상을 마주합니다.
빌라도: 진리보다 '여론'과 '안정'을 선택한 기회주의자.
대제사장: 종교적 명분으로 '질투'와 '살인'을 정당화한 위선자.
유다: 자신의 실수를 '은혜'로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도망친 절망자.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 불의한 판결문이 오늘 우리에게는 '무죄 선언'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침묵하며 그 판결을 받아들이신 이유는, 

그 판결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의 명령'에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 억울하고 불의한 판결이 있습니까? 

침묵하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결국 승리는 빌라도의 법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에서 결정됩니다.

 


 

청년설교

 

가장 불의한 판결, 가장 위대한 대속
:불의한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마태복음 27:1~26

 

 

당신의 재판장은 누구입니까?


'공정'과 '억울함'
여러분, 우리 청년들이 요즘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바로 '공정'입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할 때,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논리에 밀려 기회조차 얻지 못할 때,

우리는 이 세상이 지독하게 불공평하다고 느낍니다.

"왜 착한 사람이 고통받고, 왜 악한 사람이 더 잘될까?

왜 진실은 묻히고 거짓이 이기는 걸까?" 이 질문은 여러분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불의한 재판
오늘 본문에는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처절한 현장이 나옵니다.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불공정하고 불의한 재판입니다. 죄가 전혀 없으신, 

우주에서 가장 의로운 분이 사형 선고를 받고, 

누가 봐도 죽어 마땅한 흉악범이 자유를 얻는 말도 안 되는 재판이 열립니다. 

상식이 무너지고 정의가 실종된 현장입니다.

재판정의 세 얼굴: 유다, 빌라도, 군중
이 타락한 재판정 안에는 세 부류의 인간상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죄책감에 짓눌려 스스로를 파괴하는 유다, 진리보다 자신의 안위와 여론의 눈치를 보는 빌라도, 

그리고 광기와 군중심리에 휩쓸려 예수를 죽이라 외치는 무지한 군중입니다.

나의 재판석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우리는 이 재판을 보며 분노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정직하게 우리 삶의 재판석을 들여다봅시다. 

혹시 그 자리에는 '진리'가 아닌 '나의 이익'과 '사람들의 시선'이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불의한 재판 현장 속으로 함께 들어가 봅시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불의 속에서, 침묵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묵묵히 완성해 가시는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대면하기 원합니다.


본문

 

1. 유다의 후회: 은혜 없는 양심의 비극

 

유다의 뒤늦은 깨달음: "무죄한 피를 팔았도다" (3~4절)
유다는 예수님이 정죄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큰 충격에 빠집니다. 

자신이 넘겨준 스승이 정말로 죽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일까요? 

그는 '스스로 뉘우쳐'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에게 다시 가져다줍니다. 자신의 입으로 직접 고백합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여기까지는 베드로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다가 찾아간 곳은 주님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함께 공모했던 악인들을 찾아가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싸늘하게 대답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후회(Remorse)와 회개(Repentance)의 차이
유다의 인생이 비극으로 끝난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후회'는 했지만 '회개'는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후회(Remorse):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과 수치심에 매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양심의 가책은 결국 우리를 파괴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회개(Repentance):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그 비참한 모습 그대로 주님의 긍휼과 은혜 앞으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죄는 보았지만, 그 죄를 덮으시는 예수님의 은혜는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성소에 돈을 던져 넣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절망을 선택합니다.

사탄의 속삭임, "넌 이제 끝났어"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이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탄은 여러분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 같은 게 무슨 그리스도인이야? 너는 이제 끝났어. 하나님도 너를 포기하셨을 거야."

사탄은 우리를 자책의 감옥에 가두어 하나님께 나아갈 용기를 뺏어버립니다.

 여러분, 하나님 없는 양심의 가책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교만입니다. 

"내가 내 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결국 유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여러분의 자책에 빠져 자신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그 죄를 위해 지금 빌라도의 재판정에 서 계신, 채찍에 맞으실 준비가 된 예수님의 은혜로 도망치십시오. 

회개는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며, 거기에는 반드시 살 길이 있습니다.

 

 


 

2. 빌라도의 비겁함: 진리보다 안정을 선택한 죄

 

빌라도의 통찰: "시기로 넘겨준 줄 앎이더라" (18절)
로마 총독 빌라도는 어수룩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노련한 정치가였고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기록합니다. 빌라도는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넘긴 이유가 공의 때문이 아니라 

'시기심' 때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재판 중에 아내로부터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소서"라는 

신령한 경고까지 전달받습니다(19절). 빌라도는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무죄하며, 이 재판은 조작된 불의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빌라도의 선택, 진리보다 '내 자리' (24절)
하지만 빌라도는 결정적인 순간에 진리를 등집니다. 그가 본 것은 '진리'가 아니라 '민란이 나려는 것'이었습니다.

군중이 소리를 지르고 소요가 일어나자,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릴까 두려워졌습니다.

결국 그는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외칩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여러분, 손을 씻는다고 죄가 씻어집니까? 아닙니다. 그는 진리를 알았지만, 자신의 안위와 평안, 

그리고 총독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가장 의로운 분을 사형장으로 내던졌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보다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안에도 빌라도가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너무나 잘 압니다.
직장에서 부당한 관행을 따르라고 할 때 그것이 틀렸음을 압니다.
친구들이 모여 누군가를 험담하고 비난할 때 그것이 죄임을 압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신앙을 비웃을 때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빌라도처럼 행동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될까 봐,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내 평판이 깎일까 봐 적당히 입을 닫고 손을 씻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 나 하나 목소리 낸다고 세상이 바뀌나?"라며 합리화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진리를 방관하는 것은 결국 불의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를 묻지 않으십니다. 

그 진리를 위해 무엇을 '선택'했느냐를 물으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손에는 무엇이 묻어 있습니까? 

비겁하게 씻어낸 물입니까, 아니면 진리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감당한 상처입니까?


3. 바라바의 자유: 대속의 신비 


군중의 광기: 분위기에 휩쓸리는 영혼들 (20~23절)
여러분, 재판정의 풍경을 보십시오. 불과 며칠 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를 외치며 겉옷을 깔았던 그 군중들이, 

지금은 대제사장들의 선동에 휘말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광기 어린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환경에 끌려가는 삶
어느 청년이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제 주관대로 살아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친구가 하면 따라 하고, 유행 따라 움직이고, 

분위기에 따라 신앙의 온도계가 널을 뜁니다. 자기 생각이 아니라 환경에 끌려가는 삶입니다. 

기준(말씀)이 없는 인생은 결국 군중의 소리에 진리를 팔아넘기게 됩니다. 

여러분의 기준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대속의 신비: 바라바냐 예수냐 (21~26절)
빌라도는 민심을 달래려 '바라바'와 '예수' 중 한 명을 놓아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바라바는 누구입니까? 살인자요, 반역자입니다. 죽어 마땅한 흉악범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아무 죄도 없으신 분입니다.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바라바는 풀려나고,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 가치인 '대속(Substitution)'입니다.

바라바가 살아난 이유는 그가 착해서가 아닙니다. 단 하나,

예수님이 대신 죽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바라바'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바라바는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심판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름도 모르는 그 예수가 내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재판정의 불의한 판결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가장 의로운 계획이 성취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불의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멈추지 않습니다.

 

 


ㅡ대신 벌을 받은 선생님

어느 시골 학교에 아주 엄격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물건을 훔치면 매 스무 대를 맞는다." 
그런데 어느 날 가장 가난하고 병약한 아이가 배가 고파 친구의 도시락을 훔쳤습니다.
 규칙대로라면 이 아이는 매를 맞다 죽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교실에 긴장이 흐를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규칙은 어길 수 없다. 하지만 이 아이는 맞을 기운이 없으니, 내가 대신 맞겠다." 
선생님은 윗옷을 벗고 제자 대신 스무 대의 매를 맞았습니다. 
아이는 선생님의 피 묻은 등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바라바가 바로 그 아이입니다. 
그리고 채찍질당하고 넘겨지신 분이 우리 선생님, 예수님이십니다. 
바라바가 그날 얻은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습니다.누군가의 처절한 핏값으로 지불된 자유였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누리는 이 생명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얻어진 것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결론

 

가장 불의한 판결, 가장 위대한 구원
오늘 우리가 본 재판은 인류 역사상 가장 불의한 판결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채찍질 당하고, 죽어 마땅한 죄인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말도 안 되는 불의한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구원의 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악함과 비겁함조차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내 삶의 재판석을 정직하게 비추십시오
이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세 가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유다처럼 내 잘못을 '후회'하며 자책 속에 갇혀 있습니까, 

아니면 베드로처럼 주님의 은혜로 '회개'하며 돌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빌라도처럼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내 안위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적당히 손을 씻으며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군중처럼 분위기에 따라 "호산나"와 "죽여라"를 오가는,

뿌리 없는 신앙을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를 살리신 십자가의 역설
마지막 핵심 구절인 마태복음 27:26을 보십시오.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 판결문이,

오늘 우리에게는 하늘나라의 가장 기쁜 '무죄 선언문'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예수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 예수를 통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 압도적인 사랑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는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빌라도의 법정은 예수를 버렸지만, 하나님의 법정은 그 예수를 통해 우리를 다시 얻으셨습니다."

"여러분, 빌라도처럼 비겁하게 씻어낸 물로는 우리 죄를 닦을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채찍에 맞으신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이제 그 비겁한 손을 거두고, 나를 대신해 십자가로 향하시는 주님의 손을 잡으십시오."

 


 

묵상질문

01. 실패했을 때 유다처럼 '자책'에 빠지나요,

아니면 베드로처럼 주님의 '은혜'로 도망치나요? 최근 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나눠봅시다.
02. 빌라도처럼 진리를 알면서도 손해 보기 싫어서,

혹은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방관했던 '나만의 손 씻기' 현장은 어디입니까?
03.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서셨다는 '대속'의 은혜가 오늘 나의 삶에 실제적인 감격으로 다가오나요?
04. 지금 내 삶의 가치관을 결정하는 최종 재판장은 누구입니까? (나의 성공, 타인의 시선,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
05. 억울한 상황에서 나를 변호하기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침묵하셨던 예수님의 태도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가요?
06. 유대인들은 그 피를 자신들에게 돌리라고 외쳤지만, 하나님은 그 피를 구원의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이번 한 주 동안 이 '예수의 피'를 어떻게 삶으로 나타내겠습니까?

 


 

불의한 판결을 뚫고 흐르는 의로운 사랑
공의로우시며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고난 주간, 인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럽고 불의했던 빌라도의 재판정을 묵상하며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대면합니다. 

죄 없으신 주님이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죽어 마땅한 죄인이 자유를 얻는 이 말도 안 되는 역설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주님, 우리의 '후회만 남은 양심'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가룟 유다처럼 내 잘못을 깨닫고 자책하면서도, 

정작 주님의 은혜 앞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우리의 교만을 회개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너는 끝났다, 너 같은 게 무슨 그리스도인이냐"며 우리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지만, 

주님, 하나님 없는 양심의 가책은 우리를 살리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이제 자책의 감옥에서 나와,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재판정에 서 계신 예수님의 압도적인 은혜로 도망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비겁한 손 씻기'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빌라도처럼 무엇이 진리인지 알면서도 내 자리와 안위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과 여론이 두려워 적당히 타협하고 입을 닫았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세상의 불공정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내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 방관했던 우리의 비겁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비겁하게 씻어낸 물로는 우리 죄를 닦을 수 없음을 깨닫고,

이제는 진리를 위해 기꺼이 손해 볼 줄 아는 정직한 청년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내가 바로 그 '바라바'였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살인자요 반역자인 내가 풀려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이 내 명패를 가슴에 달고 대신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리는 이 자유와 생명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 주님의 처절한 핏값으로 지불된 것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군중의 소리에 휩쓸려 "주님을 못 박으라" 외치던 무지한 자가 바로 나였음을 시인하며, 

이제는 세상의 소리가 아닌 주님의 음성에만 반응하는 단단한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하옵소서.

특별히 기도합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의 불의한 판결과 억울한 상황 속에서 신음하는  청년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주님, 인간의 악함과 비겁함조차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막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이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를 준비하는 과정임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억울함에 매몰되지 않고, 침묵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내 승리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 판결문이 우리에게는 영원한 '무죄 선언문'이 되었음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대신해 모든 불의를 받아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