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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0 : 1~17 유한한 인생이 의지할 하나님

by Lily00112233 2026. 4. 7.

시편 90 : 1~17
유한한 인생이 의지할 하나님

유한한 인생 90:1~10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지혜로운 마음 90:11~17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1. 내용 요약 (Summary)
시인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세세토록 우리의 거처가 되심을 선포합니다. 반면, 인간은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이며, 그 수명은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시드는 풀과 같이 짧고 허무합니다. 더욱이 인간은 죄로 인해 주의 진노 아래 놓여 있으며, 그 인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이에 시인은 우리에게 '날 계수함'의 지혜를 주셔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만족하게 하시고, 유한한 우리가 손으로 행한 일들을 주께서 견고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2. 역사적 구조 (Historical Structure)
① 모세의 광야 경험과 공동체적 배경 (1~6절)
이 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순종으로 인해 1세대가

모두 죽어가는 과정을 목격한 모세의 역사적 경험을 배경으로 합니다.
정착할 땅이 없던 광야 시절, 모세는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거처'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국가적 위기나 유배기에 처했을 때 항상 인용되었던 역사적 토대입니다.

② 심판과 죽음의 역사성 (7~10절)
40년 광야 생활은 매일이 장례식이었습니다. 

칠십, 팔십 년의 인생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날아가는 것' 같은 속도감은 광야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생명을 지켜본 지도자의 처절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3. 신학적 구조 (Theological Structure)
① 신론(Theology): 영원하신 하나님 vs 유한한 인간 (1~4절)
하나님은 '산이 생기기 전'부터 계셨고,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십니다(천 년이 밤의 한 순간 같음).
신학적 대비: 하나님의 영원성(Eternity)과 인간의 일시성(Temporality)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인간이 의지할 유일한 대상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뿐임을 강조합니다.

② 인간론(Anthropology): 죄와 진노 아래 있는 인생 (7~11절)
인간의 허무함은 단순히 생물학적 한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 빛' 앞에 드러난 '죄악' 때문입니다.
신학적 통찰: 죽음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임을 명시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비극은 시간이 짧은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서 있는 상태임을 고발합니다.

③ 구원론(Soteriology): 지혜와 은총을 구하는 기도 (12~17절)
날 계수함의 지혜: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보상의 신학: 괴롭게 하신 날수만큼 기쁘게 해달라는 간구(15절)는 고난을 뚫고 

지나가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회복을 신뢰하는 고백입니다.

견고함의 은총: 티끌 같은 인생이 행한 일이 의미를 갖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은총이 그 손의 일을 '견고하게(Establish)' 해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고가 영원성을 덧입는 유일한 길을 제시합니다.

모세는 인생을 '날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허무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세월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지혜는 '내가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데서 옵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자(Memento Mori)만이 오늘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청년설교

 

날아가는 인생, 영원한 거처
:짧은 인생, 영원을 선택하라
시편 90:1~17

 

도입
: 당신의 '시간'은 어디로 흐르고 있습니까?

 

 

속도감의 역설: 기차에서 빛의 속도로
여러분,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느껴지시나요? 어릴 때는 방학이 왜 그렇게 안 오는지, 

시간이 기차처럼 느릿느릿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청년이 된 지금은 어떻습니까? 

월요일인가 싶으면 벌써 주말이고, 새해 인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계절이 바뀝니다. 

KTX를 탄 것 같더니, 이제는 정말 빛처럼 빠르게 지나간다는 느낌을 받지 않나요?

모세의 광야 장례식: 티끌의 허무함
오늘 본문의 저자 모세는 이 속도감을 누구보다 처절하게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매일같이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어제 함께 만나 웃으며 밥을 먹던 동료가 오늘 한 줌의 티끌로 돌아가는 것을 수만 번 지켜보았습니다. 

그 죽음의 행렬 속에서 모세는 인생의 처절한 유한함을 깨달았습니다. 

"아,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아침에 돋았다 저녁에 시드는 풀 같구나."

우리의 착각: "나는 안 죽을 것처럼 산다"
여러분, 솔직하게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래 살 것 같습니까?” 

우리는 머리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우리가 **'안 죽을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영원히 남은 것처럼
기회가 언제든 다시 올 것처럼
내일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말입니다.

날아가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 본문 시편 90:10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성경은 인생이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니라 '날아간다'고 표현합니다. 

멈출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이 날아가는 짧은 인생을, 무엇을 붙들고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 모세가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그 '지혜'를 통해,

허무를 이기고 영원을 붙드는 비결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청년들에게 죽음은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속도'라는 공감대를 통해 그들의 유한함을 직면해야합니다.

모세의 '광야 장례식'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어,

인생의 허무함이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실존적 사실'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1. 영원하신 하나님 vs 유한한 인간 
우주적 시간의 대비: "영원부터 영원까지" (2절)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선포합니다. “산이 생기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압도적인 대비를 마주합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자이시며,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Eternity)' 그 자체이십니다. 반면, 그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풀의 인생: "아침에 돋고 저녁에 시드나이다" (5~6절)
모세는 광야에서 매일 아침 돋아났다가 뜨거운 사막의 바람에 저녁이면 바싹 말라버리는 풀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탄식합니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5-6절)
이것이 우리 인생의 적나라한 성적표입니다.

아침 → 저녁: 우리가 느끼는 80년의 세월은 하나님의 시간표에서는 단 하루, 아니 밤의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시작 → 끝: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납니다. '나중에'라고 미루지만, 그 '나중'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학적 통찰: 잘못된 거처를 짓는 인생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삽니다. 그리고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 내 모든 생명력을 쏟아붓습니다.
돈, 사람의 인정, 성공, 타인과의 비교... 여러분, 냉정하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없이 쌓은 이 모든 것은 저녁이 되면 마르는 풀과 같습니다. 홍수가 나면 쓸려 내려갈 모래성일 뿐입니다. 죽음이라는 파도 앞에서 남을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의 진짜 '거처'는 어디입니까? (1절)
그래서 모세는 1절에서 위대한 신앙 고백으로 포문을 엽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집이 없었습니다. 매일 텐트를 치고 걷으며 떠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진짜 집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구나!"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여러분의 인생을 지켜줄 '안전한 집'으로 삼고 있습니까? 

취업입니까? 통장입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사랑입니까?
그것들은 여러분을 끝까지 책임져주지 못합니다. 

날아가는 인생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뿐입니다. 

그분 안에 거할 때만 우리의 짧은 인생은 '의미'라는 옷을 입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의 거처를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옮기십시오.

인간의 '일시성'을 강조하여 청년들의 교만을 낮추고, 하나님의 '영원성'을 대조하여 그들의 시선을 하늘로 향해야합니다.

광야의 '텐트' 이미지를 사용하여, 이 땅의 모든 것은 임시적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한 안식처임입니다.

 


 

2. 인생이 허무한 이유 (7~11절) 


숨길 수 없는 폭로: "주의 얼굴 빛 가운데" (8절)
본문 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 여러분, 이 구절은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 '얼굴 빛'은 감추어진 모든 것을 드러내는 강력한 서치라이트와 같습니다. 

우리가 밤마다 이불 속에서 짓는 죄, 아무도 모를 것이라 믿었던 마음의 시기와 음란함, 

그 은밀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앞에 낱낱이 폭로되었다는 뜻입니다.

신학적 통찰: 허무의 뿌리는 '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이 왜 이토록 고달픈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합니다. 

인생이 힘든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짧거나, 돈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죄' 때문입니다.

단절의 결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죄로 인해 끊어져 버렸기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수고와 슬픔의 악순환: 10절은 말합니다.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하나님 없이 달리는 인생은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결국 '피로'와 '공허'라는 종착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요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삽니다. 

스펙을 쌓고, 자격증을 따고, 인간관계를 맺느라 에너지를 다 쏟습니다. 그런데 왜 침대에 누우면 그토록 허탈합니까?

피곤함과 스트레스: "열심히 사는데 왜 행복하지 않지?"
지독한 공허함: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인가?"

답은 명확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채로 시간을 달리는 것은, 

엔진이 고장 난 차를 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수고는 많으나 전진은 없고 슬픔만 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시계를 내 욕망의 속도가 아닌, 하나님의 공의와 빛 앞에 다시 맞추십시오. 

빛 가운데로 나오지 않으면, 여러분의 평생은 순식간에 날아가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겪는 '번아웃(Burn-out)'과 '현타'를 성경적 죄(하나님과의 단절)와 연결해야합니다.

도덕적인 죄를 넘어, '하나님 없이 주인 되어 사는 삶'이 어떻게 인생을 허무하게 만드는지

그 결과를 알아야합니다.


3. 지혜로운 인생의 전환: 죽음을 기억하라
 

날 계수함의 지혜
본문 12절은 시편 90편의 거대한 전환점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진짜 '지혜'가 무엇입니까? 박사 학위를 따는 것입니까? 

재테크를 잘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Memento Mori)'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을 아는 자가 제대로 삽니다
죽음을 잊고 사는 사람은 오늘을 낭비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남과 비교하며 질투하느라 시간을 다 씁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남은 날짜를 셀 줄 아는 사람은 오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어떻게 하면 더 성공할까?"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영원에 남는 일인가?"를 묻게 됩니다.

유한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영원하신 하나님을 붙들게 됩니다.



4. 은혜로만 의미 있는 인생: 견고함의 은총
[강해: 하나님이 붙드셔야 남습니다]
마지막 17절은 모세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여러분, 우리는 티끌입니다. 티끌이 아무리 화려한 성을 쌓아도 바람 한 번 불면 사라집니다. 

하나님 없이 이룬 성공은 모래 위에 쓴 글씨와 같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은총이라는 접착제
하지만 단 하나, 방법이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 손의 일을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100억 → 사라짐
하나님과 함께한 작은 기도와 섬김 → 영원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삶에 '영원성'이라는 옷을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해냈습니다"라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 나의 작은 수고를 주님의 손으로 견고하게 붙들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청년이 되십시오.

 


ㅡ성공이라는 이름의 공허

앞만 보고 정말 열심히 달린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남들 놀 때 공부했고, 남들 잘 때 일했습니다.
결국 원하는 기업에 들어갔고, 인정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퇴근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끝인가? 다음은 뭐지? 이렇게 살다 사라지는 건가?” 
돈도 생기고 자리도 생겼는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지독한 공허함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멘토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성공하는 것은, 더 큰 공허로 들어가는 문일 뿐이란다.” 
그날 밤, 청년은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공을 구하던 입술로 처음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을 주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 사용해 주세요. 
내 손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주님이 붙들어 주세요.” 
그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속도'가 아닌 '의미'를 향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17절의 '견고하게 하소서'를 강조합니다.

우리의 노력이 하나님의 은혜와 만날 때만 진정한 성취가 일어난다는 '은혜 중심적 노동관'을 심어야합니다. 

 


 

결론 및 결단 


짧은 인생, 영원한 거처
오늘 우리는 광야의 지도자 모세의 절규와 같은 기도를 들었습니다. 인생은 날아갑니다. 강건해야 칠팔십 년이며, 그나마도 수고와 슬픔뿐인 것이 우리 인생의 적나라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절망하지 마십시오. 영원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진짜 **'거처'**로 삼을 때, 우리의 유한함은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담는 거룩한 그릇이 됩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내일이 영원인 것처럼"
우리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봅시다. "나는 혹시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사라질 것들에 목숨을 걸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나의 날을 계수합시다. 내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지혜로운 마음'을 가집시다. 

죽음을 기억하는 자만이 오늘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그 영혼을 채울 수 있습니다. 

짧은 인생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인생을 던지십시오.

 

하나님 안에서만 '영원'이 됩니다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가고, 기회는 매일 줄어듭니다. 결국 인생은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사는 인생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이 모세의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붙드신 여러분의 눈물,

 여러분의 수고, 여러분의 헌신은 결코 티끌로 사라지지 않고 하늘나라의 견고한 보석이 될 것입니다.

"내 날을 셀 줄 아는 사람만이, 내 날을 가치 있게 채울 줄 압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시간은 결코 무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과 연결될 때, 여러분의 1분 1초는 영원이 됩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세월을 만드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인생은 짧지만, 하나님 안에서만 진짜 영원이 시작됩니다."


묵상질문

01. "인생은 날아간다"는 말씀이 요즘 나의 삶에서 어떻게 느껴지나요? (너무 빨라 불안한지, 혹은 허무한지)
02. 내가 생각했던 지혜와 성경이 말하는 '날 계수함의 지혜'는 어떻게 다른가요?
03.  내가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 중,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영원히 남을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04. 하나님이 내 손의 수고를 '견고하게' 붙들어 주셔야 할 구체적인 영역은 어디인가요?
05.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누구를 만나고 어떤 고백을 남기고 싶습니까?


 

 

날아가는 인생을 영원의 반석 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유일한 거처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모세의 고백을 통해 우리 인생의 적나라한 성적표를 마주합니다. 

산이 생기기 전부터 계셨고, 천 년이 밤의 한 순간 같으신 영원한 주님 앞에, 

우리는 그저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시드는 풀과 같으며 

한 줌의 티끌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가 '날 계수함의 지혜'를 갖게 하옵소서. 

우리는 마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돈과 명예, 사람의 인정과 성공에 목숨을 걸고, 

남과 비교하며 질투하느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소중한 '오늘'을 낭비했음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라는 말씀을 심장에 새기게 하시고, 

죽음을 기억하는 자(Memento Mori)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수고와 슬픔'을 '인자와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없이 주인 되어 달렸던 시간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피곤했는지 모릅니다. 

주의 얼굴 빛 앞에 드러난 우리의 은밀한 죄악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사오니,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 평생이 한숨이 아닌 즐거움과 기쁨의 노래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고난 당한 날수대로, 괴로워했던 연수대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다시 웃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상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손이 행한 일'을 주님의 손으로 견고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우리는 티끌이기에 우리가 쌓은 모든 성은 바람 한 번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주님의 은총이 우리 삶에 접착제가 되어 주신다면, 

우리의 작은 수고도 영원한 가치를 지닌 열매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 직장에서 일하는 것, 

공동체를 섬기는 그 모든 손길 위에 주님의 인장을 찍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만지셔서 우리의 짧은 헌신이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기록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기도합니다. 지금 인생의 속도가 너무 빨라 불안해하는 청년들, 

혹은 인생이 무의미해 보여 절망하고 있는 우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세월을 만드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유한한 인생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진짜 인생'이 시작됨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의 시작이자 끝이 되시며, 

티끌 같은 우리를 보석처럼 여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