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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2 : 1~15 풀과 같은 악인, 나무와 같은 의인

by Lily00112233 2026. 4. 9.

시편 92 : 1~15
풀과 같은 악인, 나무와 같은 의인

감사와 찬양 92:1~3
1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2 (1절에 포함)
3 (1절에 포함)

악인과 의인의 차이 92:4~15
4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6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7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9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11 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1. 내용 요약 (Summary)
시인은 아침부터 밤까지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고 즐거운 일임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크고 깊어서 어리석은 자는 깨닫지 못하지만, 시인은 그 지혜 안에서 두 부류의 인생을 대조합니다. 악인은 '풀'처럼 잠시 무성하나 영원히 멸망할 존재인 반면, 의인은 '종려나무'와 '백향목'처럼 하나님의 집에 심겨 늙어도 결실하며 번성하는 존재입니다. 결국 시인은 하나님의 정직하심과 바위 되심을 찬양하며 마무리합니다.

2. 역사적 구조 (Historical Structure)
① 안식일의 예배적 배경 (1~4절)
이 시는 제2성전 시대 안식일 아침 제사 때 불렸던 공식적인 예배 시입니다.
노동을 멈추고 하나님의 '행하신 일(His works)'을 묵상하는 안식일의 정신이 4절의 기쁨과 찬양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② 심판과 역전의 역사성 (7~11절)
악인들이 '흥왕'하는 현실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고난의 상황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당장의 형통함이 아닌 '영원한 결말'을 바라봅니다.

들소의 뿔처럼 높여주시고 신선한 기름을 부으시는 체험은 고난 끝에 주시는 승리의 역사적 확신을 보여줍니다.

3. 신학적 구조 (Theological Structure)
① 신론(Theology): 주의 생각의 깊음 (5~8절)
하나님은 '지존자'이시며 그분의 생각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매우 깊으십니다'.
신학적 의미: 악인이 잘되는 부조리한 현실 뒤에는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심판의 계획이 있음을 뜻합니다. 무지한 자는 눈앞의 현상만 보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신뢰합니다.

② 기독교적 인생론(Anthropology): 풀(Grass) vs 나무(Tree) (7, 12~14절)
악인(풀): 뿌리가 얕아 아침에 돋았다가 저녁에 마르는 풀과 같습니다. 외형적인 번성은 일시적이며 결국 소멸됩니다.
의인(나무): 종려나무(번성)와 백향목(성장)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에 심긴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신학적 통찰: 의인의 번성은 자기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의 집'이라는 근원(Source)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한다"는 것은 세월을 이기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③ 보응의 신학 (10~15절)
하나님은 의인의 '뿔(권세)'을 높이시고 신선한 기름을 부으심으로 그 가치를 증명하십니다.
결론적 신학: 하나님은 우리의 '바위(Rock)'이십니다. 바위는 불의가 없고 정직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상징하며,

그분께 뿌리를 내린 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줍니다.

인생에는 두 종류의 번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풀'과 같은 번성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와 같은 번성입니다. 

풀은 빨리 자라지만 쉽게 꺾이고, 나무는 느리게 자라지만 풍풍을 견디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청년의 때에 우리는 빨리 성과를 내는 '풀'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이 '여호와의 뜰'에 심긴 나무가 되길 원하십니다. 

당장 눈앞의 악인이 잘되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들은 뿌리 없는 풀에 불과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주소지는 어디입니까? 세상의 시장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뜰입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십시오. 그러면 세월이 흘러도 시들지 않고, 

당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정직하심이 선포되는 '청청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청년설교

 

풀의 화려함인가, 나무의 영원함인가
:풀처럼 살 것인가, 나무처럼 살 것인가
시편 92:1–15

 

도입
당신은 지금 '속도'에 속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식일의 질문: 멈춰야 보이는 것들
여러분, 시편 92편은 '안식일에 부르는 찬송시'입니다. 안식일은 어떤 날입니까?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세상의 미친듯한 속도를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속도'를 묵상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정신없이 뛰다 보면 놓치는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마음: 왜 나만 제자리인가?
오늘 여러분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봅시다. 요즘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왜 저 사람은 나쁜 짓을 해도 저렇게 잘 되지?”
“왜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데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악한 사람들이 훨씬 더 화려하게 사는 것 같은데...”

SNS를 열면 온통 성공한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뿐입니다. 

그런데 더 괴로운 것은,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앞서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요동칩니다.
“나도 저들처럼 세상 방식대로 살아야 하나? 정직하게 사는 게 결국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닌가?”

풀이 될 것인가, 나무가 될 것인가?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게 공정한가요?”라는 질문입니다.

왜 나는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결과는 더디고, 저 사람은 나보다 덜 노력한 것 같은데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까요.

우리는 비교 속에서 살아가고, 결과로 평가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점점 이런 생각이 쌓입니다. “하나님, 이게 맞습니까?”, “하나님, 이게 공정합니까?”

 

이 질문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정직한 질문입니다.

문제는 그 질문을 어디로 끌고 가느냐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 질문을 비교로 가져가고, 불만으로 키우고, 결국은 신앙의 흔들림으로 이어갑니다.

눈앞에 보이는 결과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면, 믿음보다 감정이 더 크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은 우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끕니다.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깊다”입니다. 우리는 얕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것, 당장 드러나는 결과,

눈앞의 형통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깊은 것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현재를 보지만 하나님은 끝을 보시고, 우리는 결과를 보지만 하나님은 과정을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세상이 불공정한 것 이전에, 우리의 시선이 너무 얕다는 데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안식일의 의미가 중요해집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멈추는 날입니다.

왜 멈춰야 합니까? 다시 보기 위해서입니다. 비교를 멈추고, 조급함을 멈추고, 불안을 멈추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다시 보기 위해서입니다.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비교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잠깐 멈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다시 보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의 관점을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눈앞의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계획을 보도록,

비교하는 인생이 아니라 신뢰하는 인생이 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잘 되죠?”가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질문을 붙드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오늘 시편은 이 질문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답합니다.
“겉모습에 속지 말고, 그 인생의 ‘끝’을 봐라.”

 


본문
– 악인은 ‘풀’이다: 속도라는 가짜 복


빨리 자라는 것이 축복인가?
본문 7절을 보십시오.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시인은 악인을 ‘풀’에 비유합니다. 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비가 오면 하루아침에도 쑥쑥 자라납니다.

금방 들판을 가득 채워 무성해 보입니다.

뿌리 없는 번성의 허무함
악인의 번성은 바로 이런 ‘빠른 성장’입니다. 하나님 없이, 정직함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우리 눈에 너무나 부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풀은 뿌리가 얕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혹은 계절이 바뀌면 가장 먼저 말라 비틀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빨리 가는 것이 복이 아니라,

바르게 가는 것이 복입니다.

무지한 자는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은 생각’ 
겉모습 너머의 결말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어리석은 자는 눈앞의 현상만 봅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만 보고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원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그보다 훨씬 '깊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의 푸름이 아니라 

그 인생의 영원한 결말을 보고 계십니다.

현상에 속지 말고 본질을 붙드십시오
세상의 공정하지 못한 성공을 보며 낙심하지 마십시오.
풀의 화려함: 화려할수록 더 빨리 마릅니다.
하나님의 침묵: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깊은 경륜 속에서 심판의 때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 마음을 빼앗겨 세상 방식에 올라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깊은 통치를 신뢰하며, 

오늘 나에게 주어진 정직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십시오. 빠른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히 남는 가치'입니다.

 

시편 92편 7절은 악인을 “풀”에 비유합니다. 이 장면을 우기 이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비가 지나가면 잡초가 순식간에 자라납니다. 며칠 만에 무성해지고, 빠르게 퍼지고,

굉장히 생명력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풀은 뿌리가 얕습니다.

쉽게 뽑히고, 오래 가지 못합니다.

 

지금 청년 문화는 ‘속도’에 집착합니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결과를 내는 삶을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이런 “풀 같은 번성”이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 한 문장으로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아무리 빠르게 자라도, 끝이 무너지면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도가 아니라 결말을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부러워하는 삶의 끝은 어디인가.


의인은 ‘나무’다: 진짜 성공은 ‘뿌리’에 있습니다
느리지만 강한 생명력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악인이 '풀'이라면, 의인은 ‘나무’입니다. 나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풀보다 훨씬 느립니다. 자라는 게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나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고, 비바람이 불수록 강해집니다.

신학적 구조: 어디에 심겼느냐가 인생을 결정합니다
13절이 그 비결을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인생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뿌리’의 문제입니다.
세상의 유행과 인정에 뿌리를 내리면, 세상이 흔들릴 때 같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 안에 뿌리를 내리면, 

어떤 가뭄과 폭풍 속에서도 안정을 유지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심겨 있습니까?

진짜 성공의 기준: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순간의 반짝임인가, 영원한 열매인가
14절은 청년들이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이것이 진짜 성공입니다.
풀의 인생: 젊을 때만 반짝하고, 화려함이 지나면 금방 시들어버립니다.
나무의 인생: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더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빨리' 성공하는 것보다, 주님 안에서 '끝까지' 신실하게 성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왜 우리는 흔들리는가: 끝을 보는 능력
어리석은 자의 조급함
6절은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눈앞’만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잘 되는 것, 지금 당장 편한 것만 쫓으면 결국 풀의 길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은 ‘끝을 보는 능력’입니다. 지금은 느린 것 같아도 하나님의 정직하심과

바위 되심(15절)을 신뢰하며 끝을 바라보는 자가 진짜 지혜자입니다.

 


ㅡ10년 후의 깨달음

교회에 함께 다니던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세상의 성공 공식을 따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렸고, 
한 명은 조금 느리더라도 믿음을 지키며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처음 1~2년은 세상 방식을 택한 친구가 훨씬 앞서갔습니다. 
차도 사고, 집도 사고, SNS에는 화려한 사진이 넘쳐납니다. 
믿음을 지킨 청년은 마음이 흔들립니다.
 “내가 틀렸나? 나만 바보같이 사는 건가?”

하지만 10년이 지났을 때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세상 따라간 친구는 기초 없는 성공 위에서 무너지고 관계도 깨졌지만, 
믿음을 지킨 청년은 그 시간 동안 깊이 뿌리를 내려 주위 사람들을 살리는 거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고백합니다. “아... 나는 나무였구나. 하나님이 나를 백향목으로 키우셨구나.”

 


ㅡ잡초와 백향목의 대화

장마철 무성해진 잡초가 백향목 묘목을 비웃습니다. 
“나는 며칠 만에 이렇게 컸는데 너는 왜 그대로니?” 
백향목은 대답 대신 뿌리를 더 깊게 뻗었습니다. 
찬 바람이 불자 잡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백향목은 수백 년을 견디는 성전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금방 태워질 땔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떠받칠 거룩한 백향목으로 키우고 계십니다.

 

“유명해지는 것”과 “영향력 있는 것”은 다릅니다.

풀은 금방 눈에 띕니다. 빨리 자라고, 넓게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봅니다.

그래서 유명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남지 못합니다. 쉽게 사라집니다.

반면 나무는 다릅니다.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자라는 것도 느립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아래에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맺고,

사람을 살리는 존재가 됩니다. 이것이 영향력입니다.

 

시편 92편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이게 진짜 매력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더 살아 있고
시간이 갈수록 더 사람을 살리는 인생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이런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겉으로 반짝이는 인생이 아니라, 오래도록 살아 있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유명함’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살리는 ‘영향력 있는 삶’을 살 것인가.


 

결론 및 결단


풀의 화려함과 나무의 견고함
오늘 우리는 안식일의 찬송을 통해 인생의 두 가지 길을 보았습니다. 

악인은 '풀'과 같습니다. 빨리 자라고 화려해 보이지만, 뿌리가 없기에 금방 사라집니다.

그러나 의인은 '나무'와 같습니다. 더디 자라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뜰에 깊이 심겨 있기에

세월을 이기고 영원히 번성합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심겨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정직하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풀'입니까, '나무'입니까?
세상의 속도에 집착하며 남들보다 빨리 피는 꽃이 되기 위해 조급해하고 있지는 않나요? 

오늘 그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읍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내 인생의 뿌리가 어디에 박혀 있느냐입니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한 인생(14절)은 

오직 '여호와의 집'에 심긴 자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끝까지 남는 인생이 되십시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세상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 심겨진 인생은 반드시 자라고, 반드시 열매 맺습니다. 

세상의 비바람이 불어올 때, 풀은 꺾여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뜰에 뿌리 내린 

여러분은 더욱 단단한 거목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바위'이십니다.

"인생의 성공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심겨'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청년 여러분, 지금은 느려 보여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안에 뿌리 내리고 있다면 여러분은 가장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빨리 자라는 잡초가 되려 하지 말고, 끝까지 남아 주님의 성전을 떠받치는 백향목이 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통해 당신의 정직하심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빨리 자라는 인생이 아니라, 끝까지 남는 인생이 되라."

 


 

묵상질문


01. 요즘 나를 가장 조급하게 만드는 '풀'과 같은 세상의 성공은 무엇인가요?
02. 나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있나요, 아니면 세상의 유행과 인정에 뿌리를 내리고 있나요?
03. 나무처럼 느리게 성장하는 나를 보며 답답할 때, 오늘 본문 14절("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은 어떤 위로가 되나요?
04. 내 영혼의 진액이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이번 주에 내가 실천해야 할 '안식(멈춤과 묵상)'은 무엇입니까?
05. 비록 느렸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주님이 내 삶을 '견고하게' 하셨던 경험이 있나요?

 


 

 

속도를 내려놓고 깊은 뿌리를 내리는 기도
지존하시며 우리 인생의 영원한 바위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안식의 기쁨 속에서 인생의 두 갈래 길을 마주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빨리 달리고, 더 빨리 꽃을 피우며, 

남들보다 앞선 '풀'의 화려함을 가지라고 재촉합니다. 

때로는 하나님 없이도 흥왕하는 이들을 보며 우리의 마음이 요동치고, 

정직하게 걷는 우리의 걸음이 너무나 느리고 초라해 보여 낙심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주님, 이제 우리의 '속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깊은 생각'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악인이 풀 같이 자라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라 영원한 멸망의 전조임을 깨닫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눈앞에 보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속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방식에 올라타려는 유혹을 이겨내게 하옵소서. 

뿌리 없는 번성의 허무함을 알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통치만이 영원함을 선포하는 청년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 깊이 심겨진 종려나무와 백향목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어디에 심겼느냐가 우리 운명을 결정함을 믿습니다. 

세상의 유행이나 사람의 인정이라는 얕은 땅에 뿌리 내리지 않게 하시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거룩한 뜰 안에 우리 영혼의 뿌리를 깊이 박게 하옵소서. 

세상의 가뭄이 찾아오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주님께 연결된 생명력으로 

끝까지 버티며 성장하는 거목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끝까지 남는 인생'의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잠깐 반짝였다 사라지는 인생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고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한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젊음이 지나가도 여전히 빛이 청청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정직하심과 

바위 되심이 온 세상에 선포되게 하옵소서.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뿌리를 뻗는 그 인내의 시간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필리핀의 뜨거운 기후 속에서도 사시사철 푸른 종려나무처럼, 

신앙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마르지 않는 청청함을 유지하게 하옵소서.

조급함이 변하여 평안한 신뢰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성전을 든든히 떠받치는 백향목으로 우리를 빚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이시며, 정직하신 우리의 바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