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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1절 - 14 왕의 초대에 합당한 예복을 갖추는 사람

by Lily00112233 2026. 3. 11.

마태복음 22 : 1~14 왕의 초대에 합당한 예복을 갖추는 사람

왕의 초청을 외면한 결과 22:1~10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청함받은 자, 택함받은 자 22:11~14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1. 내용 요약 
어느 임금이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그러나 초청받은 이들은 자기 사업과 밭으로 가버리며 초청을 거부하고, 

심지어 임금의 종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에 분노한 임금은 그들을 진멸하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선한 자와 악한 자)을 잔치에 초대합니다. 

잔치 자리가 가득 찼으나, 임금은 그중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며,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는 준엄한 결론을 내립니다.

2. 역사적 구조
이 비유는 당시 유대 사회의 관습과 초대 교회의 상황을 반영하는 중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 초청의 관습 (3~4절): 당시 유대 관습은 잔치 전에 미리 명단을 확인하고(1차 초청), 

준비가 완료되었을 때 다시 부르러 갑니다(2차 초청). 

이미 초청에 응했던 자들이 당일에 거부하는 것은 임금에 대한 중대한 모욕입니다.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7~10절): 임금의 초대를 거부하고 

종들을 죽인 자(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과 

그 동네의 불사름은 역사적으로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암시합니다. 

이후 '네거리 길'에서 사람들을 부르는 것은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확장을 보여줍니다.

왕의 예복 제공 (11절): 역사적 배경에 따르면, 

왕실의 잔치에서는 왕이 손님들에게 입을 예복을 미리 준비하여 

나누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자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왕이 제공한 성의를 의도적으로 거절'했음을 의미합니다.

3. 신학적 구조 
① 은혜의 우선성과 인간의 우선순위
하나님 나라는 임금이 베푼 '잔치'입니다. 모든 것은 갖추어졌고 인간은 그저 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자기 밭'과 '자기 사업'이라는 현세적 욕망에 사로잡혀 영원한 잔치를 거절했습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일반 은총 속에 매몰되어 특별 은총을 거절하는 인간의 전적 부패'를 보여줍니다.

② 무조건적 초청과 조건적 합당함
복음은 이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10절).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보편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잔치에 들어온 것이 끝이 아닙니다. 

왕은 들어온 자들 중에서 '예복'을 확인합니다.

이는 '구원의 보편성'과 '심판의 개별성'이라는 신학적 긴장을 보여줍니다.

③ 예복의 신학: 칭의와 성화의 통합
가장 논쟁적인 '예복'은 신학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닙니다.

전가된 의 : 인간의 누더기 같은 옷을 벗고 왕이 주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칭의'를 의미합니다.
삶의 열매 : 마태복음 전체의 맥락(열매 맺는 백성)에서 볼 때,

예복은 부르심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행실'을 뜻합니다.

즉, 초청(믿음)은 거저 주어지지만,

그 잔치에 머물기 위해서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의 변화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값싼 은혜를 경계하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14절)"는 말씀은 현대 교회에 던지는 뼈아픈 경고입니다.
잔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모두가 택함받은 자는 아닙니다. 

왕이 제공한 예복(예수 그리스도라는 의의 옷)을 입기를 거부하고, 

여전히 '나의 옷(자기 의,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자는 잔치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신학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왕의 초대에 걸맞은 예복을 갖추어 입는 '존중과 복종'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청년설교

 

가장 빛나는 초대, 가장 엄중한 예복
:초대받은 사람인가, 준비된 사람인가
본문: 마태복음 22:1~14

 

도입
당신의 우선순위가 당신의 왕을 결정합니다

 


초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초대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단톡방의 초대 알람이 울리고, 

주말이면 결혼식 청첩장이 날아오며, 

간절히 기다리던 기업의 면접 제안이나 합격 통지가 우리를 초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름의 '필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가?", 

"지금 내 기분이 괜찮은가?" 우리는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 초대를 필터링하며 살아갑니다.

 왕의 초대, 그 거룩한 파티 
오늘 본문은 한 왕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열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잔치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여러분, 결혼식 초대는 보통 어떻게 진행됩니까?

초대장을 받습니다.
날짜를 확인합니다.
그 자리에 맞는 예복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반응은 충격적입니다. 

사람들은 이 최고의 초대를 너무나 쉽게 거절합니다.

거절의 이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우상화
그들이 왕의 초대를 거절한 이유는 대단한 악행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5절)." 

지극히 평범한 자기 일상 때문이었습니다.


초대는 받았지만 아무 준비 없이, 

아니 준비할 마음조차 없이 그저 내 눈앞의 현실에만 매몰된 태도

—그것은 초대한 왕에 대한 무시를 넘어선 존중의 결여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드레스코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을 영원한 잔치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취업 준비', '연애',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의 '나의 밭'을 일구느라,

왕이 보내신 초대장을 돌아보지도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초대를 받은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초대의 가치를 알고 합당하게 응답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 삶의 왕이 누구인지를 증명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입고 있는 삶의 옷을 점검하고,

진짜 왕의 잔치 속으로 들어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초대에는 예복을 갖추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면서, 

하나님의 초대에는 아무 옷이나 입고, 

혹은 아예 돌아보지도 않는 무례함을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이 오늘 가장 중요하게 응답하는 그 초대가 바로 당신의 왕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취업이나 사업이 나쁜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밭과 사업 자체가 죄가 아니라,

그것이 왕의 초대보다 우선순위에 놓이는 순간 그것이 곧 우상이 된다"라고 인지해야합니다.


본문

 

1. 일상이 우상이 될 때 (1~7절) 


최고의 가치, 왕의 잔치 (2~3절)
성경에서 '혼인 잔치'는 하나님 나라가 주는 기쁨의 절정을 상징합니다. 

더군다나 이 잔치는 '왕의 아들'을 위한 잔치입니다.

나라에서 가장 귀하고 화려하며, 모든 비용을 왕이 지불한 완벽한 잔치입니다.

왕은 이미 명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냈고, 잔치가 준비되었으니 오라고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충격적입니다. "오기를 싫어하거늘(3절)."

그들은 이 잔치의 가치를 전혀 몰랐습니다.

거절의 이유: 죄가 아니라 '일상'이었습니다 (4~5절)
왕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종들을 보냅니다.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제발 오라"고 간청하듯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돌아보지도 않고(5절)": 아예 관심조차 없습니다.
"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들이 간 곳은 도박장이나 죄를 짓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성실하게 일하는 '직장'이었고, 생계를 책임지는 '비즈니스 현장'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지점입니다.

그들은 '나쁜 일'을 하느라 초대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을 하느라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일상이 왕의 초대보다 앞서는 순간, 그 성실함은 곧 우상숭배가 됩니다.

공격적인 거절과 그 결말 (6~7절)
어떤 이들은 한술 더 떠서 왕의 종들을 모욕하고 죽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박해했던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종교적 기득권(자기 밭)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까지 제거하려 했습니다. 

결국 왕은 노하여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사릅니다. 

이는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는 역사적 경고이기도 합니다.

"우선순위의 실패가 곧 신앙의 실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자기 밭'과 '자기 사업'은 무엇입니까?

"취업 준비하느라 바빠서요",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요", "자기계발이 먼저잖아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성실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성실함 때문에 왕의 초대를 '돌아보지도 않는' 상태가 되었다면,

당신은 지금 영적인 위기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해서가 아니라,

내 일상이 너무 소중해서 하나님을 내 삶의 '옵션'으로 밀어내는 것이

'우선순위의 전도'가 우리를 잔치 밖으로 밀어냅니다.

"천국은 악한 일을 한 사람만 못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내 일상을 더 사랑해서, 왕의 초대를 '무시'한 사람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스케줄표에서 하나님은 몇 번째 순위에 있습니까?

당신의 일상이 왕의 초대를 삼키지 않게 하십시오."

 

2. 길거리의 은혜, 자격 없는 자들의 입장 (8~10절) 


사거리에 선포된 파격적인 초대 (8~9절)
왕은 잔치 준비가 끝났음에도 오지 않는 이들을 향해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초대받은 자들은 합당하지 않다." 그리고 종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립니다.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라."

네거리 길의 의미: 이곳은 시장통이자, 갈 곳 없는 자들이 서성이는 곳이며,

이방인과 유대인이 섞이는 광장입니다.

복음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기득권을 넘어,

소외된 자들과 이방인(우리)에게까지 확장되었음을 선포하는 복음의 보편성을 상징합니다.

악한 자와 선한 자의 공존 (10절)
종들이 길에 나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데려옵니다. 

성경은 강조합니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잔치에 들어오는 일차적 조건은 '나의 선함'이 아니라 '왕의 부르심'입니다.

도덕적 완벽함이 입장의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왕의 잔치는 이제 "누구든지"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격 없는 자들에게 주어진 조건 없는 은혜가 잔치 자리를 가득 채웁니다.

 


ㅡ기회는 응답하는 자의 것

한 대학에서 파격적인 장학금 공고를 냈습니다. 
조건은 오직 하나, "정해진 시간까지 지원서를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석을 다투던 학생들은 "나중에 하면 돼", 
"지금은 전공 공부가 더 급해"라며 미루다가 시한을 놓쳤습니다.

반면, 형편이 어렵고 성적도 평범했던 한 학생은 공고를 보자마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원서를 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었던 이들은 혜택을 놓쳤고, 
오직 부르심에 즉각 응답한 학생만이 그 기회를 누렸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초대에 '예(Yes)'라고 답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당신의 과거가 초대를 막을 수 없습니다
"혹시 이런 마음으로 주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아직 성경을 잘 몰라서", "어제도 죄를 지어서",
"남들처럼 신앙 경력이 화려하지 않아서."
길거리에서 불려 온 사람 중에 준비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오라"는 말에 "네" 하고 따라나선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과거'를 캐묻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왕의 잔치를 '함께 누리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자격지심이라는 옷을 벗고, 은혜의 잔치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십시오.

 

"복음은 자격 있는 자를 위한 보상이 아니라, 자격 없는 자를 위한 선물입니다. 

원래 초대받았던 자들이 '내 밭'과 '내 일' 때문에 놓쳐버린 그 자리가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주저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부족함보다 왕의 자비가 훨씬 더 큽니다."

 

3. 잔치의 완성, 예복의 엄중함 (11~14절)


왕의 시선이 머문 곳: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
잔치 자리에 손님들이 가득합니다.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왕이 들어와 손님들을 살피던 중 한 사람 앞에서 멈춰 섭니다. 

그는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왕이 묻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왔느냐?"


무거운 침묵: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핑계를 댈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역사적 배경: 당시 왕실 잔치에서는 왕이 입구에서 예복을 나누어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즉, 이 사람은 옷이 없어서 못 입은 게 아니라,

왕이 준 옷을 거부하고 자기가 입고 온 '내 옷'이 더 좋다고 고집을 피우며 들어온 것입니다.


2. 예복의 신학: 칭의와 성화의 옷 (12절)
그리스도의 : 이사야 61:10 말씀처럼,

우리 자신의 누더기 같은 공로를 벗고 하나님이 거저 입혀주시는 '구원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이 칭의(Justification) 의입니다.


계시록 19:8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합니다.

왕의 잔치에 합당한 삶의 변화, 즉 성화(Sanctification)를 의미합니다.

 

잔치에 들어오는 것은 '무료'였지만,

잔치에 머무는 것은 왕에 대한 '예의(존중)'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략시킨 자는 결코 잔치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3. 청함과 택함의 준엄한 경계 (13~14절)
왕은 예복 없는 자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지라 명합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신학적 통찰: '청함'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부르심이지만,

'택함'은 그 부르심에 예복(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한 자들의 몫입니다.

 

교회 마당을 밟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잔치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왕이 입혀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실제로 입고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자유와 무례함 사이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명품 런웨이에 초대받아 놓고 슬리퍼를 신고 간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초대한 자에 대한 무례함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내 고집,

내 가치관, 내 옛 습관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잔치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만 다니면 됐지, 뭘 그렇게까지 살아야 해?"라는

생각 자체가 왕이 주신 예복을 거부하는 교만입니다.

 

 


결론
가장 빛나는 초대, 가장 엄중한 예복

:은혜의 초대와 우선순위


하나님 나라는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셋팅된 은혜의 잔치입니다. 

왕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외치십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와서 이 기쁨을 누려라!" 

하지만 이 잔치를 진짜 누리는 사람은 두 가지를 기억하는 자입니다.

 

첫째, 내 '자기 밭'과 '사업'보다 왕의 부름을 우선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왕이 주신 '예복'을 기꺼이 입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드레스코드는 무엇입니까?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성공', '스펙', '자기증명'이라는 낡은 옷을 입으라고 강요합니다. 

그 옷을 입어야만 세상이라는 파티에 입장할 수 있다고 속입니다. 

하지만 왕의 잔치 드레스코드는 전혀 다릅니다. 왕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남루한 옷을 벗어버려라. 내가 내 아들의 피로 짠 의로운 예복을 입혀주겠다."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낡고 때 묻은 옷을 고집하며 잔치 구석에 앉아만 있지는 않습니까?

'청함'을 넘어 '택함'으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이 말씀은 우리를 겁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초대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그 초대에 '합당하게 응답'하는 자가 적다는 안타까운 탄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단순히 일요일에 '교회 다니는 사람'을 넘어,

주님이 입혀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분의 성품과 행실로 살아가는

'진짜 잔치의 주인공'이 되기로 결단합시다.


묵상질문

 


01. 자격 없는 길거리 인생이었던 우리를 왕의 잔치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서 가장 크게 경험되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02. "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하러" 가느라 왕의 초대를 거절했던 사람들처럼,

요즘 나의 영적 성장을 가장 방해하는 '나만의 분주한 일상'은 무엇인가요?
03. 하나님의 말씀이나 권면을 들을 때, 나도 모르게 "나중에 할게요"라며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04. 왕이 주신 예복을 거부하고 자기 옷을 고집한 사람처럼,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나만의 옛 습관'이나 '세상적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05. 나를 가리고 있던 '자격지심'이나 '자기 의'라는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예복'을 입었을 때 느꼈던 평안이나 변화가 있다면 나누어 주세요.
06.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는 말씀 앞에서,

오늘 내가 왕의 백성다운 '합당한 예복(삶의 태도)'을 갖추기 위해 당장 실천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 22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간절한 초대와 

그 초대를 대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정직하게 마주합니다. 

 

아무 자격 없는 길거리 인생이었던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불러주신 

그 파격적인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자주 왕의 초대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오라"는 주님의 간곡한 부름보다, 

내 눈앞에 놓인 '자기 밭'과 '자기 사업'이 더 소중했습니다. 

취업의 문턱에서, 성공의 갈망 속에서, 

 

세상의 평판을 쌓느라 주님의 음성을 '돌아보지도 않고' 

외면했던 우리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보다 내 일상을 더 사랑했던 우선순위의 실패가 

곧 하나님을 향한 무례함이었음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또한 잔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예복을 입지 않았던 

한 사람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낡은 옷을 입고 

내 고집대로 살아가려 했던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내 의로움이라는 누더기를 과시하며 주님이 거저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를 거절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이제 우리가 결단합니다. 오늘 이 시간, 

나를 증명하려 애쓰던 세상의 낡은 옷을 벗어 던집니다. 

주님이 입구에서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짠 

빛나는 예복 안으로 우리의 온 삶을 밀어 넣습니다. 

 

우리의 언어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머금게 하시고, 

우리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며, 

우리의 행실이 왕의 자녀다운 품격을 갖추게 하옵소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하신 주님의 엄중한 경고를 가슴 깊이 새깁니다. 

수많은 군중 속에 섞여 앉아 있는 무관심한 구경꾼이 아니라, 

왕과 인격적으로 마주하며 그분의 통치에 즐거이 순종하는 '택함 받은 소수'가 되게 하옵소서.

예배의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주할 우리의 거친 일상이, 

주님이 입혀주신 예복을 빛내는 거룩한 잔치 자리가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최고의 잔치로 초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