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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 : 33~46 사명 망각과 욕망의 끝

by Lily00112233 2026. 3. 10.

 

 

마태복음 21 : 33~46 사명 망각과 욕망의 끝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21:33~42
33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보라. 포도원을 만든 집주인이 있었다. 
그는 포도원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땅을 파서 포도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어떤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주고 멀리 여행을 떠났다.
34 수확할 때가 가까워지자 주인은 열매 소출의 얼마를 받기 위해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35 그 농부들은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리고 다른 하나는 죽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돌로 쳤다.
36 그 후 주인은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냈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 종들에게도 똑같이 대했다.
37 마침내 주인은 ‘그들이 내 아들은 존중하겠지’라며 자기 아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38 그러나 농부들은 그 아들을 보자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가서 그를 죽이고 그의 유산을 빼앗아 버리자!’
39 그래서 그들은 아들을 붙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 죽이고 말았다.
40 그렇다면 포도원 주인이 돌아와서 이 농부들에게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주인은 그 악한 사람들을 처참히 죽이고 제때에 소출의 열매를 바칠 수 있는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내어 줄 것입니다.”
4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됐다. 
주께서 이렇게 하셨으니 우리 눈에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는 자들 21:43~46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 나라를 너희에게서 빼앗아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에게 줄 것이다.
44 [누구든지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며 

이 돌이 어느 사람 위에 떨어지든지 맞는 사람은 가루가 될 것이다.]”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의 비유를 듣고서 

그것이 자기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인 줄을 알아차렸습니다.
46 그들은 예수를 체포하고 싶었지만 백성들이 두려웠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 내용 요약
한 집주인이 완벽한 조건을 갖춘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떠납니다. 

수확 시기가 되어 소출을 받으러 종들을 보냈으나, 농부들은 그들을 폭행하고 살해합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으나, 농부들은 포도원을 차지할 욕심에 아들마저 포도원 밖에서 죽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시편 118편의 '버린 돌' 예언을 인용하시며, 

열매 맺지 못하는 기득권자들에게서 하나님 나라를 빼앗아 열매 맺는 백성에게 주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2. 역사적 구조
본문은 이사야 5장의 '포도원의 노래'를 배경으로 하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구속사적 파노라마입니다.

완벽한 포도원 (33절): 울타리, 즙 짜는 틀, 망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포도원)을 선택하시고 보호하시며 

열매 맺기에 부족함 없는 은혜를 주셨음을 상징합니다.

보내진 종들 (34-36절):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에 끊임없이 보냈던 선지자들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거절해 왔습니다.

아들의 살해 (37-39절): 이는 비유를 말씀하시는 시점으로부터 며칠 뒤,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고합니다.

포도원 밖 (39절): 히브리서 13:12와 연결되는 대목으로, 예수님이 영문 밖(성 밖)에서 고난당하실 것을 정확히 지시합니다.

3. 신학적 구조
신학적으로 이 본문은 '주권의 찬탈'과 '심판의 필연성'을 다룹니다.

① 사명의 망각과 탐욕
농부들의 죄는 단순히 열매를 안 바친 것이 아닙니다.

주인에게 위탁받은 자(청지기)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스스로 '주인 행세'를 하려 한 '찬탈'의 죄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자리를 자신의 권력과 소유로 착각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정조준합니다.

② 기독론적 전전 : '버린 돌' (42절)
머릿돌 예언: 건축자들(종교 지도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예수)을 하나님이 집의 기초인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인간의 거역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거역을 통해 하나님의 승리가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③ 하나님 나라의 전이(43-44절)
열매 맺는 백성: 하나님 나라는 '혈통'이나 '전통'에 머물지 않습니다. 

'열매'라는 삶의 증거가 있는 자들에게로 옮겨갑니다. 이는 유대교 중심의 구원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교회)으로 확장됨을 

의미하는 세대주의적 전환점입니다.
돌의 심판: 그리스도는 누군가에게는 기초석이 되지만, 

거절하는 자에게는 그들을 산산조각 내는 심판의 돌이 됩니다.

 

"사명은 소유가 아닙니다"
이 비유의 절정은 45절에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가 아닌 '체포'를 모의합니다.

청년 사역과 신학 교육 현장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사명의 익숙함이 주는 탐욕'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포도원에서 주인의 아들을 몰아내고 내가 주인 노릇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날마다 '열매'로 우리의 청지기직을 증명해야 합니다.

 


청년설교


주인 행세인가, 청지기인가: 사명과 탐욕의 갈림길
:포도원의 주인은 누구인가
마태복음 21:33~46

 

 

도입

"인생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순간, 비극은 시작됩니다"
청지기인가, 주인인가? 
만약 어떤 자산가가 여러분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고, 사업체를 꾸려주고,

운영할 큰 재산까지 다 맡겼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소유권'입니까, 아니면 '관리 책임'입니까?
당연히 관리 책임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고질적인 죄의 뿌리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맡은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주권 찬탈' 사건
성경이 말하는 첫 번째 죄의 구조도 이와 같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에덴을 관리하도록 위탁받은 존재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며 주인의 자리를 탐냈습니다.
오늘 본문의 농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은 포도원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까지 세워 모든 인프라를 완벽하게 세팅해 주었습니다. 

농부들은 그저 몸만 들어가 열매를 맺기만 하면 되는 은혜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착각이 시작됩니다. "주인이 멀리 떠났으니, 

이제 이 포도원은 내 맘대로 해도 되는 내 소유가 아닌가?"

"여러분의 포도원 주인은 누구입니까?"
오늘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의 인생이라는 포도원의 주인은 누구냐?"  여러분에게 주어진 빛나는 재능과 건강이 여러분의 것입니까?

여러분이 지금 쓰고 있는 청춘이라는 시간이 여러분의 소유입니까?

공동체에서 맡은 직분과 영향력이 여러분의 권리입니까?

이것이 '위탁'받은 사명임을 잊고 '소유'라고 우기는 순간, 

우리의 열심은 사명이 아니라 무서운 탐욕으로 변질됩니다. 

오늘 이 비유를 통해 내 인생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나는 지금 주인의 아들을 대접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 쫓고 있는지 정직하게 대면해 보길 원합니다.

"사명은 내가 지켜야 할 권리가 아니라, 주인께 돌려드려야 할 열매입니다. 

주인이 완벽하게 세팅해준 내 삶의 포도원에서 나는 지금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충성스러운 농부로 살고 있습니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라고 외치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나는 관리자일 뿐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큰 도전이 됩니다. 

'완벽한 세팅' 뒤에 숨겨진 주님의 은혜를 먼저 강조해주시고, 

그 은혜를 '권리'로 착각할 때 오는 비극을 생각해야합니다.

 


사명 망각: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33~36절)


1. 완벽하게 준비된 은혜의 환경 (33절)
본문에 등장하는 포도원은 주인이 직접 모든 것을 공들여 만든 곳입니다.
울타리 → 보호: 들짐승과 도둑으로부터 포도원을 안전하게 지켜줍니다.
즙 짜는 틀 → 생산: 수확한 열매를 가공하여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핵심 장치입니다.
망대 → 관리: 멀리서도 위험을 감지하고 포도원을 효율적으로 돌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셋팅은 농부들이 열매를 맺기에 '부족함이 없는 최적의 환경'입니다. 주인이 다 준비했고, 

농부들은 그저 몸만 들어와서 성실히 일하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누리는 '은혜'의 본질입니다.

2. 수확의 때와 종들의 방문 (34~35절)
시간이 흘러 수확할 때가 되자 주인이 종들을 보냅니다. 

주인이 요구한 것은 포도원 전체가 아니라 '소출의 얼마(열매)'였습니다. 

그것은 세입자로서 당연히 지불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약속이었습니다.

종들의 정체: 역사적으로 이들은 이스라엘에 끊임없이 보냈던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회개의 열매, 정의의 열매"를 요구하셨습니다.

농부들의 반응: 농부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쳤습니다.

3. 이것은 단순한 폭력이 아닌 '반역'입니다 (36절)
농부들이 왜 이렇게까지 잔인해졌을까요?
그들은 '주인이 멀리 떠나 있다'는 사실을 오해했습니다. 

주인의 부재를 '나의 자유'로 착각했고, 나아가 '내 소유'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종들을 때린 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져온 '주인의 권리'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즉, "여긴 내 땅인데 왜 주인이 열매를 내놓으라고 해?"라는 반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권면을 간섭으로 느끼는 교만"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감사가 사라진 자리: 주님이 울타리 쳐주시고 건강과 재능이라는 즙 짜는 틀을 주셨을 때는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익숙해지니, 이 모든 것이 당연히 내 것인 줄 압니다.

종들을 때리는 마음: 공동체의 리더나 영적 멘토가 "너 요즘 예배 생활은 어떠니?", 

"삶의 열매가 있니?"라고 물어올 때, 그것을 '영적 권면'이 아닌 내 사생활을 침해하는 

'간섭'으로 여기며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공격적인 방어 기제: 내 삶의 주인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 

진리를 말해주는 '종'들을 마음으로 때리고 멀리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명 망각의 신호탄입니다.

 


"농부들의 비극은 주인이 준 울타리를 감옥으로 여긴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울타리는 구속이 아니라 보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소출을 묻는 하나님의 종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포도원 주인'이 아님을 일깨워주시는 축복의 음성입니다."


탐욕의 끝: "상속자를 죽이고 유산을 빼앗자" (37~39절)


1. 주인의 마지막 카드: 아들 (37절)
주인은 종들이 죽임당하는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냅니다. 

"내 아들은 존중하겠지."

이것은 주인의 '기대'이자 농부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회개의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가장 소중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2. 정확한 인식, 그러나 뒤틀린 선택 (38절)
농부들의 반응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아들을 보자마자 서로 수군거립니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신학적 통찰: 농부들은 아들을 몰라본 것이 아닙니다.

그가 주인의 모든 권한을 이어받을 '진짜 주인'임을 정확히 알아봤습니다.

탐욕의 논리: "상속자니까 영접하자"가 아니라, 

"상속자니까 죽여서 그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임을 알면서도,

 그분을 내 인생에서 제거해야 내가 '가짜 주인' 노릇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3. 성문 밖으로 끌려나간 아들 (39절)
농부들은 아들을 붙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입니다.
역사적 성취: 이 비유를 말씀하신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예수님은 실제로 예루살렘 성벽 밖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의미: 히브리서 13:12 말씀처럼 주님은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생명의 주인을 '우리 삶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 버렸습니다.

 "내 인생의 주권 찬탈"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십시오.
불편한 진리: 예수님이 내 인생의 '상속자(주인)'라는 사실이 인정되는 순간, 

내가 마음대로 휘두르던 내 시간, 내 재정, 내 연애의 주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게 싫은 것입니다.

삶 밖으로 밀어내기: 우리는 예수를 부인하기보다 '밀어내기'를 선택합니다. 

"주님, 예배 시간에는 주인이시지만, 제 평일의 삶과 진로 결정에는 관여하지 마세요. 

포도원 밖으로 나가 계세요." 이것이 현대판 아들 살해이며 주권 찬탈입니다.

"농부들은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 것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유의 시작이 아니라 심판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변두리로 밀어내고 얻은 자유는 진짜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무너질 바벨탑일 뿐입니다."

 

 

 

ㅡ렌터카를 내 차라고 우기는 운전자

한 청년이 최신형 슈퍼카를 렌트했습니다. 
며칠 타다 보니 마치 자기 차인 양 착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자기 마음대로 튜닝을 하려 합니다. 
반납 시간이 되어 렌터카 업체 직원이 오자, 
그는 차를 돌려주기 싫어 직원을 폭행하고 차를 숨깁니다.

우리는 웃으며 "저런 바보가 어디 있어?"라고 하겠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렌트해주신 '청춘'이라는 시간, 
'재능'이라는 도구를 내 것인 양 휘두르며 주인 노릇 하는 우리를 향한 비유입니다.

 



심판과 전이: "열매 맺는 백성에게" (40~44절)


1. 스스로 선포한 심판 (40~41절)
예수님은 비유를 마치며 질문하십니다.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면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질문을 받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거침없이 대답합니다.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제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내어줄 것입니다." 

아이러니: 그들은 이 비유가 자신들을 향한 것임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자신들의 죄에 대한 사형 선고를 스스로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외부에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권리를 무시한 인간의 선택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2.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반전 (42절)
주님은 시편 118:22을 인용하며 비유의 마침표를 찍으십니다.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내버린 돌이 집의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독론적 승리: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신성모독자라며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인류 구원이라는 거대한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초석으로 삼으셨습니다.


심판의 돌: 44절은 경고합니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가루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는 기초가 되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3. 하나님 나라의 주소 이전 (43절)
비유의 결론이자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너희에게서 빼앗아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에게 줄 것이다."
열매 중심주의: 하나님 나라는 혈통이나 전통, 오래된 경력으로 유지되는 성채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철저히 '열매'로 증명되는 역동적인 통치입니다.

사명을 망각하고 주인 행세하는 자들에게서 주권은 박탈되고,

주인의 뜻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새로운 백성(교회)에게로 사명이 전이됩니다.

 


ㅡ내 사역, 내 커리어?

어느 교회에서 사역을 아주 잘하던 한 청년 리더가 있었습니다. 
그가 떠날 때가 되어 인사를 나누는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사역은 제가 밑바닥부터 일궈온 제 사역입니다. 제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그때 곁에 있던 목사님이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야, 형제. 그건 형제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형제에게 맡기신 사역이야. 
형제가 주인 노릇 하는 순간, 주님은 그 사역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실 수도 있어.
" 우리의 인생도, 우리가 쌓아온 커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만든 내 인생"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우리는 '악한 농부'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포도원 주인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농부로 삽시다

 

사명은 소유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라는 완벽한 포도원의 주인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열매를 찾으러 오십니다.

그때 "이건 제 것인데요?"라고 대항하는 

 

농부가 아니라, "주님, 주님이 주신 은혜로 이런 열매를 맺었습니다"라고

기쁘게 소출을 드리는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명을 잊지 마십시오. 사명을 잊는 순간,

우리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는 비극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농부들의 비극은 '주인 의식(책임감)'이 아니라 '주인 행세(탐욕)'를 했기 때문입니다. 

사명은 내 소유가 아니라 위탁받은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포도원은 평안합니까? 

그 안에서 아들 예수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듯, 여러분 삶의 가장 낮은 곳에 오신 예수를 다시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 사명의 익숙함에 취해 탐욕의 주인이 되었던 저를 용서하소서.

오늘부터 내 인생의 소유권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의 열매를 맺는 청지기가 되겠습니다."

 


묵상질문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인가?"


01. 내 삶에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의 환경(가족, 재능, 건강 등)'은 무엇이 있나요?
02. 내가 하나님의 것을 '내 당연한 권리'나 '내 소유'라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03. 최근 내게 들려온 영적 권면을 '간섭'으로 여겨 날카롭게 밀어낸 적은 없나요?
04. 내 욕심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삶의 변두리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나요?
05. 내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초(머릿돌)'는 무엇인가요?
06. 주님이 오늘 나에게 기대하시는 '순종의 열매'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사명의 자리에서 탐욕을 내려놓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시며 우리 인생의 참 포도원 지기이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마태복음 21장의 비유를 통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무서운 탐욕을 정직하게 대면합니다. 

우리 인생의 울타리를 쳐주시고, 열매 맺을 수 있는 망대와 즙 짜는 틀을 미리 예비해주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어느덧 우리는 그 모든 은혜를 잊고 내가 주인인 양 행세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는 참 악한 농부들이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재능과 시간, 

건강과 물질을 내 것이라 우기며 내 마음대로 휘둘렀습니다. 

주님이 보낸 사람들의 진실한 권면을 간섭이라 여기며 마음의 돌을 던졌고, 

내 인생의 유산을 내 방식대로 차지하고 싶어서 상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중심 밖으로 끊임없이 밀어냈습니다. 

내가 왕이 되고 싶어서, 내가 내 인생의 하나님이 되고 싶어서 

생명의 주권을 찬탈하려 했던 우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제 우리의 착각에서 깨어나기를 원합니다. 

사명은 우리가 지켜야 할 권리가 아니라, 주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책임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내버렸던 '겸손'과 '순종'의 돌이 우리 인생을 지탱하는 머릿돌이 되게 하시고, 

세상의 성공이라는 백마를 타는 것보다 나귀 타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청지기의 삶을 더 명예롭게 여기게 하옵소서.

성령님, 우리에게 열매 맺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는 자들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사랑과 희생과 감사의 소출을 정직하게 드리는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주가 쓰시겠다" 하실 때 우리의 포도원 문을 기쁘게 열어드리고,

우리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겉옷을 주님 발앞에 깔아드리는 진정한 예배자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을 가장 아름다운 포도원으로 빚어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