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 : 17~28 주님을 따르는 섬기는 종
높은 자리를 구하는 제자들 20:17~24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섬기는 종이 되라는 가르침 20:25~28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 내용 요약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며 자신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두 아들을 높은 자리에 앉혀달라고 청탁합니다.
이에 분노하는 다른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세상의 권세 원리와는 완전히 다른 '섬김의 원리'를 가르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섬기는 자이며, 예수님 자신이 목숨을 대속물로 주러 오신 최고의 섬김이심을 선포하십니다.
2. 역사적 구조
당시의 정치적 배경과 제자들의 동상이몽이 충돌하는 구조입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 (17-19절): 예수님은 이제 죽음을 향한 '직진'을 선포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유대 지도자와 이방 세력에 의한 처절한 굴욕과 고난임을 구체화하십니다.
청탁과 분노 (20-24절):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면 '로마를 몰아내고 왕이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요구한 '좌우편'은 정무직 1, 2위를 뜻합니다.
나머지 제자들이 분노한 이유는 의로워서가 아니라, '선수'를 빼앗겼다는 시기심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집권자 원리 (25절): 당시 로마 압제 하의 청년들이 매일 보던 것은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당연한 상식을 하나님 나라에서는 '금지된 방식'으로 규정하십니다.
3. 신학적 구조
본문은 '권력의 욕망'을 '사랑의 희생'으로 치환하는 기독론적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① 무지한 열정 vs 고난의 잔
제자들은 "할 수 있나이다"라고 호기롭게 답하지만, 그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영광의 자리는 권력 쟁취로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마시는 고난의 잔(십자가)을 함께 마실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임을 명시합니다.
② 위대한 자의 재정의
세상의 위대함: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부리는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기는가?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한다면 '종'이 되어야 한다는 역설은,
하나님 나라의 서열이 세상과 정반대임을 보여줍니다.
③ 대속물로 오신 왕
본문의 절정이자 신학적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단순히 친절을 베푸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주는 희생적 섬김입니다. 주님이 종이 되셨기에,
그를 따르는 우리도 섬김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제자도의 완성입니다.
"섬김은 높은 곳으로 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흐르는 생명이다"
앞선 19-20장에서 '보상'을 기대했던 제자들에게 주시는 최종적인 답변입니다.
"보상은 있다. 그러나 그 보좌에 이르는 길은 섬김의 종이 되는 길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섬김의 끝판왕"입니다.
높은 곳에 오르려는 '사다리 신앙'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낮은 자리의 영성'을 가질 때 진짜 사명자가 됩니다.
청년설교
사다리를 내려와 수건을 들라
높아지는 길인가, 낮아지는 길인가
(마태복음 20:17–28)
도입
성공의 사다리를 내려와, 섬김의 자리에 서다
끝없는 사다리 타기
요즘 여러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성공, 영향력, 인정'일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거대한 사다리 게임에 던져졌습니다.
남들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하고,
더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라야 하며,
SNS에서도 남보다 더 많은 '좋아요'를 받아야 승리자라고 배웁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더 높아질까?"를 고민하며 병적으로 사다리 위를 갈망합니다.
(제자들의 동상이몽: 십자가 vs 왕관
오늘 본문 속 제자들도 우리와 똑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러'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계십니다.
주님의 머릿속에는 '십자가'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왕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누가 넘버 투(No.2)가 될 것인가?"
주님은 죽음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권력을 꿈꿉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 3년을 함께하고도 정반대 곳을 바라보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의 현장입니다.
당신은 위로 가고 있습니까, 아래로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세상은 말합니다. "높아져라, 사람 위에 서라, 그것이 실력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낮아져라, 사람을 섬겨라, 그것이 위대함이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꿈꾸던 '세상적 성공'과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늘 나라의 길'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장면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혹시 '인사 청탁'입니까?
세베대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절하며 부탁합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0:21)
혹시 우리의 기도가 이 '청탁'과 닮아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 제가 주님 잘 믿을 테니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혀주세요.
저를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세요."
우리는 주님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실상은 주님을 이용해 사다리 꼭대기에 오르려 하지는 않나요?
오늘 주님은 그 사다리를 발로 차시며, 우리에게 '수건과 대야'를 내미십니다.
추구하는 '영향력'이라는 이름의 욕망이 "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요"라는 고상한 말 뒤에 숨겨진
"나도 남들 위에 서고 싶어요"라는 본심이라면 그 마음을 내려놔야합니다.
본문
죽음을 향한 직진 vs 영광을 향한 청탁 (17~21절)
십자가를 향한 고독한 직진 (17~19절)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십니다.
그 길은 영광의 레드카펫이 아니라 처형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을 세 번째로, 그리고 가장 구체적으로 예고하십니다.
넘겨짐: 종교 지도자들에게 배신당하고
조롱과 채찍질: 인간적인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히며
십자가: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주님의 시선은 오직 인류를 살리기 위한 '제물'의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영광의 지분을 요구하는 청탁 (20~21절)
주님의 무거운 수난 예고가 끝나자마자, 세베대의 아들(야고보, 요한)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절을 하며 은밀하고도 강력한 '인사 청탁'을 넣습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1절)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와 '부총리' 자리를 미리 예약해달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은 고난의 장소가 아니라,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자리였습니다.
역사적 배경
"제자들의 동상이몽(同床異夢)"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로마 군대를 몰아내고 다윗 시대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 이야기는 승리를 위한 '전술적 후퇴' 정도로만 들렸을지 모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 내 자리는 어디인가?"에만 쏠려 있었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구원하려 하시는데, 제자들은 자기 인생 하나 '피는 것'에 목숨을 걸고 있었습니다.

ㅡ조별 과제와 프리라이더
대학에서 조별 과제를 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능력 있는 조장' 옆에 붙으려 합니다.
"저 친구 옆에 있으면 내 점수(GPA)도 잘 나오겠지?"
"저 선배랑 친해지면 나중에 취업 정보라도 하나 더 얻겠지?"
우리는 누군가를 따를 때 그 사람의 '가치'를 따르기보다,
그 사람의 '영향력'을 이용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라는 거물급 리더가 실권을 잡았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권력을 나눠 갖겠다는 계산이 그들을 움직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무엇을 따릅니까?"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이 주실 '보좌'를 따르고 있습니까?
고난은 주님 몫이고, 영광은 내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예수님은 지금 "내가 너를 위해 죽으러 간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주님, 그 나라 가면 내 지분은 얼마입니까?"라고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지금 고독하게 십자가를 향해 직진하시는데,
우리는 그 뒤에서 자기 의자 크기를 재고 있는 비극이 오늘 우리 삶에서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기적인 신앙'에 우리는 직면해야합니다.
"나 잘되려고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동상이몽'인지 깨닫게 할 때,
다음 대목인 '고난의 잔'에 대한 메시지가 다가 올 것입니다.
십자가의 잔을 마실 수 있는가 (22~24절)
무지한 열정: "할 수 있나이다!" (22절)
예수님은 인사 청탁을 하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묻습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여기서 '잔'은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고난과 심판의 잔'이자, 곧 주님이 지실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합니다. "할 수 있나이다!"
그들이 용감해서일까요? 아닙니다.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주님이 내미시는 잔을 승리의 축배, 영광의 와인 잔으로 착각했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고생은 견딜 수 있다는 '세속적 야망'이 그들의 눈을 가린 것입니다.
2. 분노의 진실: 시기라는 이름의 독 (24절)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머지 열 제자가 '분히 여겼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왜 화가 났을까요? 야고보와 요한의 이기적인 태도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입니까?
아니면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어서입니까?
아닙니다."선수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나도 저 우편과 좌편을 노리고 있었는데,
저 형제가 먼저 엄마까지 동원해 줄을 대는 것을 보고 억울함과 질투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결국 열두 제자 모두 '동상이몽'의 공범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따르는 거룩한 제자 그룹이었지만,
속으로는 누가 더 높은 의자에 앉을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는 '욕망의 화약고'였습니다.
혼란의 뿌리, 시기 (야고보서 3:16)
성경은 공동체가 무너지는 이유를 명확히 짚어줍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야고보서 3:16)
제자들 사이에 흐르는 이 팽팽한 긴장감은 거룩한 열정이 아니라,
'나만은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병적인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은 '정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왜 화가 날까요?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가 인정받거나 앞서나갈 때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노의 정체를 정직하게 들여다보십시오.
"저 사람은 자격이 없어"라는 명분 뒤에 "왜 나는 저만큼 대접받지 못하지?"라는 시기심이 숨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정작 주님이 '무시당하는 자리, 고난의 자리, 알아주지 않는 잔'을 내미실 때도 "할 수 있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아니라, 피 묻은 고난의 잔을 먼저 내미십니다.
이 잔을 마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구하는 모든 영광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시기와 다툼이 될 뿐입니다.
"나의 분노는 어디서 오는가?"를 깊이 묵상해봐야 합니다.
내 안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 생기는 분노를 '의분'으로 포장하지 않을 때,
비로소 주님의 다음 말씀인 '섬김의 도'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위대함의 재정의: 지배가 아닌 섬김 (25~28절)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25~27절)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그리고 세상의 통치 원리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날카롭게 대비시키십니다.
세상의 원리, 집권자들이 권세를 부리고, 사람들을 임의로 주관하는 것.
즉, '얼마나 많은 사람을 내 밑에 두는가'가 위대함의 척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주님은 이 세속적 방식을 단칼에 거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가 되고 싶다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 싶다면 아예 '종'이 되어야 한다고 선포하십니다.
신학적 핵심, 하나님 나라의 서열은 거꾸로입니다.
가장 위대한 자는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다리 맨 밑에서 사다리를 받쳐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독론적 절정: 대속물로 오신 왕 (28절)
주님은 이 역설적인 가르침의 근거로 자기 자신을 제시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여기서 핵심은 '대속물'입니다. 이는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 대신 지불하는 몸값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단순히 '착한 일'을 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 자체를 우리의 죄값으로 지불하시는 희생적 섬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섬김의 끝판왕"입니다.
왕이 종의 자리에 내려와 죽음으로써 종이었던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 사건, 이것이 복음의 정수입니다.

ㅡ가장 낮은 곳에 서는 리더
어느 청년부에서 리더를 선출할 때의 일입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 뽑힐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담당 목사님이 이런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의자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
그 사람을 우리의 리더로 세우겠습니다.
"세상은 '능력'을 보고 리더를 뽑지만,
하나님 나라는 '수건'을 든 사람을 리더로 세웁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사람 위에 서고 싶으냐, 아니면 사람의 발밑에 서고 싶으냐?"
성경적 원리, 자기를 비우신 예수님 (빌립보서 2:7-8)
주님의 이 섬김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7-8)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었지만, 스스로를 비워 '종'이 되셨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남을 굴복시킬 때가 아니라, 나를 비워 타인을 살릴 때 나타납니다.
"섬김은 전략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섬김은 더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한 '매너'가 아닙니다. 섬김은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섬김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대속물로 오신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높은 자리를 탐내며 서로 시기하던 제자들의 모습에서 벗어나십시오.
이제 주님이 마시셨던 그 고난의 잔, 그 섬김의 잔을 기꺼이 함께 마시는 진짜 제자가 됩시다.
'사명자의 품격'은 그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인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해?"라는 마음이 들 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결론
섬김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생명입니다

사다리의 끝인가, 십자가의 아래인가?
세상은 끊임없이 사다리 위로 올라가야 생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정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아래로 내려가야 나도 살고 남도 살린다는 것입니다.
섬김은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매너'나 '전략'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심장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순종의 길'입니다.
주님의 좌우편을 탐냈던 제자들의 욕망을 버리고, 주님이 드셨던 섬김의 수건을 손에 쥐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서게 될 내일의 자리에서
여러분은 곧 세상의 직장인이 되고,
누군가의 선배가 되며, 영향력을 가진 리더가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일 것입니다.
세상의 길: 사람 위에 서서 군림하고 통제하는 길
예수님의 길: 사람 아래로 내려가 섬기고 살리는 길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주님이 친히 높이신다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기억하십시오.
"내가 이만큼 했는데 나를 이것밖에 안 알아줘?"라는 서운함이 들 때,
그때가 바로 여러분이 든 사다리를 내려놓고 '종의 수건'을 다시 집어 들어야 할 골든타임입니다.
삶을 향해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 나는 지금 '성공'을 꿈꾸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명'을 꿈꾸고 있습니까?
✓ 나는 남에게 '인정'받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사람을 '살리기'를 원합니까?
✓ 나는 더 '높아지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더 깊이 '섬기기'를 원합니까?
세상은 더 높이 올라가라고 여러분을 등 떠밀지만,
예수님은 더 깊이 섬기라고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
세상은 사람 위에 서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는 밑거름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원리를 말로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내어주시는 십자가의 섬김으로 직접 증명하셨습니다.
이제 그 주님의 뒤를 따라 '섬기는 종'이라는 가장 영광스러운 직함을 가슴에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묵상나눔질문
01. 주님은 십자가(희생)를 말씀하시는데, 나는 혹시 왕관(보상)을 기대하며 주님을 따르고 있지는 않나요?
02. 내가 신앙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높아지고 싶은' 영역(연봉, 직급, 인정 등)은 무엇인가요?
03. 주님의 고난은 피하고 영광만 얻고 싶어 했던 제자들처럼,
내 기도 내용 중 '고난의 잔'은 빼놓은 채 '좌우편 자리'만 구하는 제목은 무엇인가요?
04.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나보다 앞서갈 때 느끼는 분노가 '의분'인가요, 아니면 나도 그 자리를 탐하는 '시기심'인가요?
05. 내가 생각하는 섬김은 '착한 일'인가요, 아니면 나를 비워 타인을 살리는 '희생'인가요?
06. 하나님 나라에서 '종'은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내가 가장 낮은 곳에서 섬겨야 할 '그 사람'이나 '그 자리'는 어디인가요?

대속의 길을 따라 섬김의 종으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숨길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민낯을 봅니다.
주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라는 가장 낮은 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계신데,
우리는 그 뒤를 따르면서도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지 계산하며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섬김'이라는 고결한 단어를 말하면서도, 정작 내 손에는 섬김의 수건 대신 성공의 사다리를 꽉 쥐고 있었습니다.
주님, 이 비겁하고 세속적인 욕망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어놓사오니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세상이 가르치는 리더십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리더십을 배우기 원합니다.
사람 위에 서서 군림하고 통제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 밑에 들어가 상처 난 발을 씻기고 생명을 살리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내가 이만큼 했는데 나를 이것밖에 안 알아주나"라는 서운함이 들 때마다,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신 주님의 핏자국을 보게 하옵소서.
칭찬받는 자리보다 필요한 자리에 있게 하시고,
빛나는 왕관보다 주님과 함께 마시는 고난의 잔을 귀히 여기는 청년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우리가 세상으로 나갑니다.
치열한 경쟁과 사다리 타기가 일상인 직장과 학교에서,
우리 청년들이 기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생명수가 되게 하옵소서.
나를 비워 타인을 세우고, 나를 낮추어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 때,
하나님 나라의 참된 위대함이 우리의 삶을 통해 증명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자 가장 낮은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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