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 : 1~14 지금은 복음 전파를 완성할 때입니다
재난의 시작 24:1~8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복음 전파와 세상의 끝 24:9~14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본문은 단순히 공포를 조장하는 예언이 아니라,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붙들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1. 내용 요약
제자들이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 건물을 자랑하자,
예수님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언을 하십니다.
이에 제자들이 그 시기와 징조를 묻자,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로 미혹하는 자들의 등장,
전쟁과 기근, 지진 등을 언급하시며 이것이 '재난의 시작(진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성도들이 겪을 박해와 배신, 사랑이 식어가는 영적 위기를 경고하시면서도,
끝까지 견디는 자의 구원과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끝이 오리라'는 선교적 사명을 결론으로 제시하십니다.
2. 역사적 구조
이 본문은 당시 유대인들의 성전 중심 사고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처한 긴박한 상황을 반영합니다.
성전 파괴 예언 (1~2절):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예언은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됨으로써
역사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는 구시대(율법과 제사)의 종언을 의미합니다.
진통의 비유 (8절): '재난의 시작'으로 번역된 헬라어 '오딘'은 산고를 의미합니다.
즉, 고통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하나님 나라)를 해산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임을 역사적 비유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로마 제국 내의 기독교 박해 (9절): 네로 황제 시기부터 시작된 조직적인 박해와
유대 사회로부터의 출교 등 초기 교회가 겪었던 실제적인 역사적 정황이 본문의 배경이 됩니다.
3. 신학적 구조
① 종말의 이중적 시각
제자들은 '성전 파괴'와 '세상 끝'을 동일시하여 질문하지만, 예수님은 이를 구분하십니다.
전쟁과 기근은 종말의 직접적 신호라기보다 세상이 겪어야 할 '과정'입니다.
신학적 교정: 예수님은 종말의 '시기'에 집착하는 제자들의 관심을 종말을 살아내는 '태도
(미혹되지 말라, 깨어 있으라)'로 전환시키십니다.
② 인내의 신학
불법의 성함과 사랑의 식어짐 (12절): 종말의 가장 무서운 징조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영적 냉담'입니다.
관계가 파괴되고 사랑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큰 위기입니다.
종말론적 인내 (13절): 여기서 구원은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한복판에서 믿음을 지켜내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③ 선교적 종말론
종말의 시계 (14절): 예수님은 종말의 시간을 자연재해나 정치적 상황에 묶어두지 않으시고,
'복음 전파'에 연결하십니다.
끝이 오는 결정적인 조건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는 것입니다.
즉, 종말은 두려워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완성해가는 시간'임을 신학적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화려한 건물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건물의 몰락과 그 너머의 영원한 나라를 보셨습니다.
오늘날 청년들이 기후 위기, 전쟁, 경제적 붕괴로 종말론적 불안을 느낍니다.
하지만 본문은 우리에게 명확히 말합니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식어가는 사랑을 회복하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말을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흔들리는 세상, 흔들리지 않는 사명
:끝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완성하는 사람
마태복음 24:1–14
도입
우리는 무엇을 보며 살고 있는가?

눈에 보이는 화려함: 우리의 '성전'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당시 헤롯 성전은 거대한 흰 대리석과 금으로 치장되어,
멀리서 보면 마치 눈 덮인 산처럼 빛났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그 웅장함에 취해 예수님께 그것을 자랑하듯 가리켰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시대의 성전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 화려하게 빛나는 커리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파트와 자산...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의 견고한 성전들을 쌓고, 그것을 소유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곤 합니다.
충격적인 선언: 모든 것은 무너진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찬물을 끼얹는 듯한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있는 돌 하나라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져 내릴 것이다." (2절)
인간이 쌓아 올린 가장 화려한 업적도, 영원할 것 같던 견고한 시스템도 결국은 무너진다는 선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결코 영원한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주님은 명확히 하십니다.
청년들의 불안: "혹시 지금이 마지막 때인가요?"
제자들은 당황하며 묻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세상 끝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습니까?" (3절).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 청년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연일 들려오는 전쟁의 소문, 기후 위기,
경제적 붕괴 소식을 접하며 우리는 막연한 종말론적 공포를 느낍니다.
"세상이 점점 이상해지는데, 정말 끝이 온 걸까?"
오늘의 목적: 날짜보다 중요한 '태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정확한 날짜나 시간을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세상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의 징조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짜 끝'이 무엇이며,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흔들리지 않는 사명'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성전이 무너지는 소리는 절망의 신호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태동하는 산고의 소리입니다. 우리는 무너질 돌덩이가 아니라,
세워질 복음의 나라를 보아야 합니다."
본문
재난의 시작: 두려움을 넘어 분별로 (1~8절)
절대적인 것의 붕괴: 성전 파괴의 충격 (1~2절)
제자들은 성전 건물을 가리키며 그 웅장함을 자랑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중심'이자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였습니다.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였죠.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성전으로 삼고 있는 '절대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영원할 것 같던 직장, 영원할 것 같던 건강, 영원할 것 같던 시스템...
주님은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은 언젠가 무너질 수 있음을 선포하십니다.
진짜 신앙은 무너질 성전이 아니라, 무너뜨릴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재난의 정체: 죽음의 비명이 아닌 탄생의 산고 (3~8절)
제자들은 불안해하며 징조를 묻습니다.
예수님은 전쟁, 기근, 지진의 소식을 말씀하시며 핵심적인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8절)
여기서 '재난'으로 번역된 헬라어 '오딘'은 사실 '산고(출산의 고통)'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가장 놀라운 반전입니다.
• 세상 사람들은 재난을 보며 '멸망의 징조'라고 말하며 비명을 지릅니다.
•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재난을 보며 '해산의 진통'이라고 읽습니다.
산모가 진통을 겪을 때, 그것은 몸이 망가지는 고통이 아닙니다.
곧 태어날 새 생명을 맞이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세상의 혼란과 아픔은 이 지구가 멸망하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해산하기 위한 거룩한 진통입니다.
미혹을 주의하라: 공포에 속지 않는 분별력 (4~5절)
주님은 재난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이 '미혹'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종말의 때에는 공포를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가짜 메시지들이 판을 칩니다.
"여기가 안전하다", "저 사람을 따라야 산다", "날짜가 언제다"라며 불안을 조장하는 목소리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재난의 소식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놀라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는 것'입니다.
일상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세상의 위기 소식에 압도되어 "어차피 끝인데 공부해서 뭐 해?",
"취업 준비가 무슨 의미가 있어?"라며 일상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재난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사인'입니다.
"세상의 비명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 비명 너머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숨소리를 들으십시오.
재난은 끝의 신호가 아니라, 진짜 시작의 예고편입니다."
영적 겨울: 식어버린 사랑을 경계하라 (9~13절)
진짜 종말의 신호: 사랑의 결핍 (12절)
예수님은 지진과 전쟁보다 더 무서운 징조를 말씀하십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2절)
여러분, 진짜 위기는 통장 잔고가 비는 것이나 취업 문이 닫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종말은 '사랑의 온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불법이 판을 치고 정의가 무너지는 세상을 보며,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급니다.
"나만 아니면 돼", "손해 보기 싫어",
"저 사람은 적이야"라며 타인을 혐오하고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이 경고하신 '영적 겨울'의 풍경입니다.
인내의 본질: 끝까지 버티는 온도 (13절)
이 차가운 시대 속에서 주님은 대안을 제시하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3절)
여기서 '견딘다'는 것은 단순히 고통을 참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휘포메노'는 '아래에서 머물며 버티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미워하고, 모두가 배신하며, 모두가 자기밖에 모르는 그 차가운 현실 '아래'에서,
끝까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머무는 것'이 진짜 인내입니다.
구원은 환난을 피한 자의 것이 아니라,
환난 한복판에서도 주님이 주신 사랑의 온도를 끝까지 지켜낸 자의 것입니다.
각자도생을 거부하십시오
무한 경쟁 사회는 우리에게 '각자도생'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가르칩니다.
옆에 있는 동료를 밟고 올라가야 생존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내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방식입니다.
혐오가 상식이 된 시대에 우리는 기꺼이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
남들이 마음의 문을 닫을 때 우리는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 영적 겨울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서로의 온기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ㅡ영하 40도의 연대
남극의 황제펭귄들은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기 위해 '허들링'을 합니다.
수천 마리의 펭귄이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고 거대한 원을 만듭니다.
놀라운 점은 바깥쪽에서 찬바람을 막던 펭귄이 몸이 식으면,
안쪽에 있던 따뜻한 펭귄들이 자리를 내어주며 밖으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위치를 바꾸며 서로의 온기를 나눌 때,
그들은 단 한 마리도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납니다.
여러분의 삶이 영하 40도의 겨울처럼 느껴지십니까?
혼자서는 절대 버틸 수 없습니다.
"나 혼자 잘해서 구원 얻어야지"라는 생각은 종말의 때에 가장 위험한 생각입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보듬고, 식어가는 친구의 손을 잡아주며 함께 머물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온도가 내려갈 때, 성도의 온도는 올라가야 합니다. 인내는 악착같이 버티는 오기가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여러분의 심장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기도의 불을 지피십시오."
종말의 시계: 복음 전파의 완성 (14절)
제자들은 시기와 징조에 집착했습니다. "언제입니까? 어떤 징조입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종말의 시계추를 엉뚱한 곳에 놓으십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4절)
여러분, 종말은 전쟁이 나서 오는 게 아닙니다. 기후 위기가 심해져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종말의 결정적 버튼은 '복음 전파의 완성'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망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듣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이 주님을 아는 그날, 하나님은 비로소 역사의 막을 내리실 것입니다.
능동적인 종말론: 우리가 돌리는 시계
이것은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종말은 우리가 무기력하게 당해야 하는 '수동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을 '능동적으로 완성해가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캠퍼스에서, 직장에서, 열방의 끝에서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할 때마다,
종말의 시계바늘은 한 칸씩 결승점을 향해 전진합니다.
그리스도인 청년은 종말을 두려워하며 숨어있는 자가 아니라,
복음의 깃발을 들고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지금은 증언할 때입니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우리는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등불은 더 밝게 빛나는 법입니다.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가는 세상은, 역설적으로 '천국 복음'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현장입니다.
지금은 종말론적 공포에 떨 때가 아니라, 복음의 증인으로 벌떡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ㅡ타이타닉호의 멈추지 않는 찬송
1912년,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차가운 북대서양 빙하에 부딪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갑판 위는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구명보트를 향해 서로를 밀치고 달려갔습니다.
절망과 공포가 배 전체를 집어삼킨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8명의 악단원들이 악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들은 도망가는 대신 자리를 지키며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배가 수직으로 세워지기 직전까지 그들이 연주한 곡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었습니다.
그 거룩한 선율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영혼을 보듬었고, 가라앉는 배를 '예배의 처소'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배가 흔들리고 가라앉는 것 같아 보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비명을 지르고 절망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그곳에서 사명의 악기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노래하고 복음을 전하는 연주를 멈추지 않는 한,
그곳은 멸망의 현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시작되는 자리가 됩니다.
세상의 화려한 성전은 무너집니다. 재난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진통입니다.
종말의 시계는 복음이 전파될 때 움직입니다. 세상의 위기 뉴스에 채널을 고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명에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식어가는 세상 속에서 '끝까지 사랑하는 한 사람'이 되기로 결단합시다.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끝은 멸망이 아니라 완성입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삽시다.
사명 확인: 나는 종말을 '두려움'으로 기다리고 있나요, 아니면 '복음 전파'로 준비하고 있나요?
영적 온도: 불법이 성한 이 시대에 나의 사랑은 식지 않고 여전히 뜨겁습니까?
증인의 삶: 내 삶의 현장에서 내가 들려주어야 할 '희망의 연주'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적용
세상의 혼란에 속지 말라
마태복음 24:4
“미혹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사랑이 식지 않도록 지켜라
신앙의 핵심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복음 전파의 삶을 살아라
우리는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종말을 완성하는 사람입니다
결론 및 결단
: 무너지는 성전 위에 세워지는 영원한 나라
끝은 멸망이 아니라 완성입니다
제자들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그 끝이 언제일지에 집착하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명확했습니다. “언제 끝이 오는가보다,
그 끝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의지하던 세상의 화려한 성전들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전쟁과 기근, 재난의 소식들은 우리를 집삼키려는 파도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하나님 나라)를 해산하기 위한 거룩한 산고입니다.
종말은 우리가 두려워하며 숨어야 할 재앙이 아니라,
우리의 사명이 마침표를 찍는 영광스러운 완성점입니다.
사랑의 온도를 지키는 종말의 주인공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가는 이 영적 겨울 속에서,
우리는 끝까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단합시다.
각자도생의 세상 논리에 속지 말고, 서로의 온기가 되어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됩시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학교, 직장, 가정—이 바로 종말의 시계를 돌리는 선교지입니다.
내가 오늘 한 사람을 더 사랑하고, 한 사람에게 복음의 소망을 전할 때,
하나님의 시간표는 완성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집니다.
우리는 공포에 질린 관객이 아니라, 역사를 완성해가는 주인공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시민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세상의 배는 흔들리고 가라앉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그 갑판 위에서 소망의 찬송을 멈추지 않는 악단원들이 됩시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품고, 복음의 증인으로 당당히 살아갑시다.
그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그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묵상질문
01. 영원할 것 같았지만 최근 내 삶에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져 내린 세상의 가치(건강, 관계, 진로 등)는 무엇인가요?
02. 전쟁, 지진, 기후 위기 뉴스를 접할 때 나의 첫 감정은 '막연한 공포'인가요,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산고(진통)'의 신호로 느껴지나요?
03.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지리라"는 말씀처럼,
요즘 내 마음이 세상에 동화되어 차갑게 식어버린 대상이나 영역은 어디인가요?
04. "끝까지 견디는 자"란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입니다.
내가 끝까지 사랑으로 버텨내야 할 '나의 현장'은 어디인가요?
05. 나의 일상(공부, 업무, 만남)이 어떻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과 연결될 수 있을까요?
06. 세상의 소음(공포 섞인 뉴스 등)에 채널을 맞추지 않고,
하나님의 사명에 채널을 맞추기 위해 이번 주에 실천할 구체적인 행동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역사의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종말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꿔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무너지는 소리에 공포를 느끼며 주저앉아 있던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옵소서.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주의 나라를 소망하게 하옵소서.
주님, 사랑이 식어가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끝까지 사랑의 온도를 지켜내는 자들이 되길 원합니다.
미움과 시기, 혐오가 가득한 세상 한복판에서 기꺼이 주님의 사랑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게 하시고,
우리가 전하는 그 복음의 발걸음을 통해 하나님의 시간이 완성되게 하옵소서.
내일부터 시작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종말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종말을 준비하며 사명을 완수하는 청년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다시 오실 약속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세상의 끝은 재난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복음의 완성'으로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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