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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10절 - 20절 작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by Lily00112233 2026. 2. 27.

마태복음 18 : 10~20 작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잃어버린 양 18:10~14
10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고 있다.
11 (없음)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양 100마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가 99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그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만약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 잃지 않은 99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욱 기뻐할 것이다.
14 이와 같이 이 어린아이 중 한 명이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형제가 죄를 범할 때 18:15~20
15 “만일 네 형제가 네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잘못을 지적해 주어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너는 네 형제를 얻는 것이다.
16 그러나 만일 네 말을 듣지 않으면 그가 하는 모든 말에 두세 사람의 증언을 얻기 위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거라.
17 그러나 만일 그가 그들의 말도 거부하면 교회에 말하여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으면 너는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다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땅에서 어떤 일이든지 마음을 모아 간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


 


1. 내용 요약
예수님은 작은 자 한 사람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경고하시며,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잃은 양 비유'를 통해 가르치십니다.

이어서 공동체 내에서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그를 정죄하여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돌이키게 하여

'형제를 얻기 위한' 단계별 권면의 절차를 알려주십니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의 합심 기도와 주님의 임재를 약속하시며 교회 공동체의 영적 권위를 선포하십니다.

2. 역사적 구조
그들의 천사들 (18:10): 유대 전통에는 각 사람을 보호하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주님은 가장 작은 자의 천사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 

소외된 자가 하나님께 얼마나 직결된 귀한 존재인지를 강조하십니다.

이방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17): 이는 단순히 '절교하라'는 뜻이 아니라,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이들이 복음의 우선적인 전도 대상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모든 노력이 거부되었을 때, 그를 다시 '처음부터 복음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고 

긍휼히 여기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두세 사람의 증언 (18:16): 신명기 19:15의 율법을 인용한 것으로, 

한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형제를 정죄하지 못하도록 법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3. 신학적 구조 
① 찾으시는 사랑: "한 영혼의 절대 가치" (18:10~14)
신학: 하나님의 경제학은 효율성이 아니라 '사랑의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99마리를 산에 두고 1마리를 찾아 나서는 것은 계산적으로는 손해지만,

사랑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숫자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② 회복의 권징: "심판이 아닌 구원을 위한 절차" (18:15~17)
신학: 공동체 내의 갈등과 죄를 다루는 목적은 '출교'가 아니라 '형제를 얻는 것'에 있습니다.

일대일 만남에서 교회적 권면까지 이어지는 단계적 절차는,

죄인의 인격을 보호하면서도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반영합니다.

③ 공동체의 영적 권세: "땅과 하늘의 연결" (18:18~20)
신학: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하늘의 권세가 위임된 곳입니다. 

성도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결정하는 일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단 두세 사람이 모인 곳일지라도 주님이 임재하신다는 약속은 공동체의 거룩한 책임감을 일깨워 줍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혹은 공동체의 분위기를 해치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저 사람만 없으면 우리 모임이 참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님은 "99마리보다 그 한 마리 때문에 더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공동체의 실력은 잘 맞는 사람들끼리 즐거운 것이 아니라,

도저히 품을 수 없는 그 한 사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단계를 밟아 인내하며 기도하느냐에서 결정됩니다.

교회는 심판하는 법정이 아니라, 길 잃은 양을 찾는 수색대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정죄의 손가락질 대신, 길 잃은 형제를 위해 두세 사람이 마음을 모아 

눈물로 기도하는 '회복의 현장'이 되길 축복합니다.

 


청년설교

 

99보다 큰 1, 정죄보다 귀한 회복
부제: 작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마태복음 18:10–20

 

 

도입 

— 효율성을 넘어서는 사랑의 경제학


가성비와 효율이 지배하는 세상
우리는 지금 '효율'과 '가성비'가 최고의 선이 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든 학교에서든 100명 중 1명이 이탈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우리는 보통 "어쩔 수 없지, 남은 99명이라도 잘 챙겨서 가자"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99보다 큰 1의 가치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세상의 계산법을 완전히 뒤집는 '사랑의 경제학'을 제시하십니다. 

양 100마리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목자는 안전한 99마리를 산에 두고 그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아 온 산을 헤매지 않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공동체 안에서 살다 보면 우리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들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우리 모임이 참 평화로울 텐데…”
“왜 저 사람은 항상 공동체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문제를 일으킬까?”
“나와 잘 맞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즐겁게 신앙생활 하면 안 될까?”

우리는 보통 '잘 맞는 사람'이나 '말 잘 듣는 99명'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업신여기지 말라. 

하나님은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욱 기뻐하신다.”

왜 하나님은 그 '한 사람'에게 집착하실까요?
왜 하나님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만큼 그 한 사람에게 그토록 집착하시는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도저히 품어지지 않는 그 한 사람을 어떻게 

우리 모임 속에서 '형제로 얻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정죄하는 판사가 아니라, 

잃어버린 생명을 찾아 나서는 수색대원의 마음으로 

공동체를 바라보는 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그 한 사람이 바로 우리 공동체의 진짜 실력이자 

영적 성숙의 척도임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 

— 하나님의 시선: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가치

 

찾으시는 사랑: 하나님의 계산기는 다르게 돌아갑니다 (18:10~14)
예수님은 본격적인 가르침에 앞서 우리에게 아주 엄중한 경고를 던지십니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마 18:10)

여기서 말하는 “작은 자”는 단순히 나이가 어린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해 겉도는 사람, 혹은 삶의 무게에 눌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그들을 '숫자'나 '효율'로 평가하지만, 주님은 그들이 하나님과 직결된 존재임을 강조하십니다.

그들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작은 자의 사정을 실시간으로,

가장 우선적으로 살피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ㅡ 부모님의 손가락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아이가 손가락 하나를 다쳤다면, 
부모는 "나머지 아홉 개가 멀쩡하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모든 신경과 온 마음은 오직 피 흘리고 아파하는 그 '다친 손가락 하나'에 집중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그렇습니다. 
공동체에서 소외되거나 길을 잃은 한 명은 하나님께 있어 가장 아픈 ‘다친 손가락’과 같습니다.

 

 

비효율적인 사랑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18:12~14)
주님이 드신 양 100마리의 비유는 세상의 경제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효율의 극치입니다. 

99마리를 산에 두고 길 잃은 1마리를 찾아 벼랑 끝을 헤매는 목자의 모습은 손해를 자처하는 행동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계산법은 '효율'이 아니라 '존재'에 집중합니다.

세상은 “99를 위해 1을 희생하라”고 가르치지만,
하나님은 “1을 찾기 위해 99가 기다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그 한 마리를 찾았을 때, 

길을 잃지 않은 99마리보다 그 한 마리 때문에 더욱 기뻐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마 18:13)

당신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청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대체 가능한 부품'이나 '수많은 교인 중 한 명'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길을 잃고 방황할 때, 하나님은 99마리를 잠시 멈춰 세우시고 여러분을 향해 달려오시는 분입니다.

“이 어린아이 중 한 명이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 18:14)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스스로가 가치 없게 느껴지거나 공동체 안에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흔아홉을 두고서라도 찾아내실 만큼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입니다.

또한, 우리 역시 주님의 그 집요한 사랑을 품고 우리 주변의 '길 잃은 작은 자'를 찾아 나서는 사랑의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 회복의 권징: 심판관이 아니라 수색대가 되십시오
형제가 죄를 범할 때: 회복을 위한 3단계 (18:15–17)
공동체 안에는 갈등이 반드시 생깁니다. 주님은 갈등이 생겼을 때 단순히 참으라고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아주 구체적인 해결 절차를 주셨습니다. 이 모든 단계의 단 하나의 목적은 이것입니다.

“너는 네 형제를 얻는 것이다.” (마 18:15)

우리의 목적은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멀어진 형제를 다시 '회복'시키는 데 있습니다.

1단계: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권면하십시오. (18:15)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뒤에서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을 존중하며 조용히 다가가는 것입니다.

2단계: 두세 사람과 함께 가십시오. (18:16)
내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언을 통해 그가 자신의 상태를 깨닫도록 돕는 사랑의 안전장치입니다.

3단계: 공동체(교회)가 함께 책임지십시오. (18:17)
개인의 노력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한 영혼을 얻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ㅡ응급구조대의 골든타임

사고 현장에 도착한 응급구조대원은 부상자가 
왜 사고를 당했는지 비난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무면허였는지, 부주의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나중 일입니다.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영적으로 병들거나 죄에 빠진 형제가 있다면, 
우리는 비판하는 판사가 아니라 
그를 살려내기 위해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구조대가 되어야 합니다.

 

버림이 아닌 새로운 시작: 세리처럼 여기라 (18:17)
모든 권면을 거부했을 때 주님은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제 끝났으니 절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은 평소에 세리와 이방인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있어 가장 시급한 복음의 대상이자 긍휼의 대상이었습니다.

 즉, 모든 노력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제 그를 다시 '처음부터 사랑과 복음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고, 

더 깊은 인내로 품으라는 주님의 역설적인 배려입니다.

정죄의 손가락을 거두고 회복의 손을 내미십시오
청년 여러분, 공동체 안에서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혹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지체가 있나요?

승부욕을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할 때 형제는 떠나갑니다.
회복의 골든타임을 지키십시오. 정죄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이 형제를 어떻게 다시 얻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십시오.

우리의 실력은 '문제없는 사람들끼리의 평화'가 아니라,

'문제가 생긴 형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얻어내는 것'에서 증명됩니다.

미움의 판결문을 쓰기보다 사랑의 구조 계획을 세우는 성숙한 청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공동체의 권세: 하늘과 연결된 자리
공동체의 권세: 땅의 기도로 하늘을 움직입니다 (18:18–20)
예수님은 이제 공동체에게 엄청난 영적 권위를 위임하십니다.

“무엇이든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 18:18)

공동체의 권위는 누군가를 심판하고 정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묶여 있는 영혼을 기도로 풀어주고, 흩어진 마음을 사랑으로 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땅에서 형제를 얻기 위해 내리는 결정과 눈물은 결코 땅에서 사라지지 않고 하늘 보좌와 직결됩니다.

 

 

 


ㅡ오케스트라의 조율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악기 중 한두 개만 음이 틀어져도 전체 연주는 불협화음이 됩니다. 
하지만 지휘자는 음이 틀린 악기 연주자를 무대에서 쫓아내는 대신, 
다시 조율할 수 있도록 인내하며 기다려 줍니다. 

우리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영적 리듬이 깨졌을 때, 
우리 중 두세 사람이 짝을 지어 그의 영혼을 기도로 조율해 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하늘의 교향곡이 다시 울려 퍼지게 됩니다.

 

합심 기도의 보증수표: 두세 사람의 임재 (18:19–20)
주님은 공동체의 기도가 반드시 응답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땅에서 어떤 일이든지 마음을 모아 간구하면 

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마 18:19)

이 약속의 근거는 우리의 기도가 유창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그 자리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 (마 18:20)

교회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두세 사람이 한 영혼을 가슴에 품고 마음을 합할 때, 

그 자리는 이미 주님의 임재가 가득한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그곳에서 드려지는 합심 기도는 길 잃은 양을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강력한 하늘의 에너지가 됩니다.

함께 기도하는 '두세 사람'이 되십시오
청년 여러분, 공동체 안에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나요? 

혹은 신앙을 잃고 떠난 친구가 떠오르나요?
혼자 앓지 마십시오. 마음이 맞는 동역자 한두 명과 함께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약속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합심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여러분이 땅에서 사랑으로 풀면, 하늘에서도 그 영혼의 묶임이 풀릴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모임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주님이 그 한복판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정죄의 손가락질 대신 회복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는 두세 사람이 되어, 

하늘의 평안을 땅으로 끌어오는 통로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결론

 ㅡ공동체의 진짜 실력은 '품어내는 힘'에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시선에 주파수를 맞추십시오
공동체의 건강함은 단순히 우리끼리 얼마나 즐겁고 잘 맞느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진짜 실력은 얼마나 품기 힘든 사람까지 품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99명이 편안하게 안주하는 공동체보다, 

길 잃은 1명을 찾기 위해 산을 넘고 계곡을 지나는 역동적인 공동체가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가깝습니다.

2. '작은 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적용)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나보다 믿음이 약해 보이거나 삶의 문제가 많은 사람을 쉽게 평가하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천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공동체의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마음에서 이미 지워버린 사람은 없나요? 

주님께 그 사람은 버려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목숨 걸고 찾아야 할 '잃어버린 양'입니다.

함께 기도하십시오: 혼자서 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의 판결문을 쓰지 마십시오. 

대신 마음이 맞는 두세 사람이 모여 그 형제를 얻기 위해 눈물로 간구하십시오. 

그때 하늘 문이 열리고 회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효율을 따지는 세상의 차가운 눈을 거두고,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목자의 눈을 가지십시오.

비난의 손가락질을 멈추고, 그를 다시 얻기 위한 사랑의 구조대가 되어 '사랑의 3단계'를 시작합시다.

"주님, 정죄하는 판사가 되기보다 살려내는 구조대가 되겠습니다.

 이번 주, 길 잃은 한 형제를 위해 두세 사람이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게 하소서."

 


묵상질문


01. 나는 평소에 99명의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잃어버린 1명의 소중함에 집중하는 사람인가요?

최근 내 주변에서 소외된 '작은 자'는 누구였나요?

02. "그들의 천사가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있다"는 말씀은 나보다 연약한 지체를 대하는 내 태도에 어떤 변화를 주나요?

03. 형제의 잘못을 보았을 때, 나는 '판사'처럼 정죄하나요 아니면 '구조대'처럼 살리려 하나요?


04.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는 말씀이 '절교'가 아니라 '다시 전도할 대상(VIP)으로 삼으라'는 의미라면,

내가 다시 처음부터 사랑을 시작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05. 내가 혼자 고민하거나 비판하던 문제를 내려놓고,

이번 주에 한 영혼을 위해 함께 기도할 '두세 사람'은 누구입니까?

06. 우리 공동체의 화음을 깨뜨리는 불협화음(갈등)이 있다면,

그것을 기도로 조율하기 위해 내가 먼저 내려놓아야 할 '옳음'은 무엇인가요?

 



한 영혼을 향한 목자의 심장을 주소서
잃어버린 우리를 찾아 산과 바다를 건너오신 사랑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효율과 가성비라는 세상의 논리에 젖어 살았는지 고백합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으로 이미 밀어냈던 연약한 형제들을 떠올리며 회개합니다. 

우리에게 아흔아홉 마리보다 길 잃은 한 마리 때문에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심장을 부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모임이 정죄의 법정이 아니라 치유의 병원이 되게 하옵소서. 

형제의 허물을 보았을 때 비난의 말을 퍼뜨리기보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은밀히 찾아가 손을 잡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한 영혼을 얻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며, 두세 사람이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 

하늘에서도 그 매인 것이 풀리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모이는 두세 사람의 자리에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그 임재의 권세로 소외된 자들이 회복되고, 떠났던 자들이 돌아오며, 

깨진 관계가 사랑으로 매여지는 역사가 우리 공동체 안에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얻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