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 : 1~13 변화산의 영광을 품고 고난의 현장으로
영광스러운 변모 17:1~8
1 그리고 6일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2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모돼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이 빛처럼 새하얗게 됐습니다.
3 바로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4 베드로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으니 참 좋습니다.
주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여기에다 초막 셋을 만들되 하나는 주를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짓겠습니다.”
5 베드로가 말하고 있을 때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기뻐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6 그 소리를 듣고 제자들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7 그때 예수께서 다가와 그들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와 세례 요한 17:9~13
9 산을 내려오면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너희가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분명히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12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가 이미 왔다.
그런데 그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대했다. 이와 같이 인자도 그들의 손에 고난을 당할 것이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 깨달았습니다.

1. 내용 요약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셔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십니다.
모세,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시는 주님의 영광에 압도된 베드로는 그곳에 머물기를 원하지만,
하늘에서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산을 내려오며 주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고,
이미 온 엘리야(세례 요한)처럼 인자도 고난을 당할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2. 역사적 구조
높은 산 (17:1): 전통적으로 다볼 산 혹은 헐몬 산으로 추정됩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을 만나는 계시의 장소입니다. 6일 전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주님의 수난 예고가 있었기에,
이 변화산 사건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정체성을 확증해 주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모세와 엘리야 (17:3):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예수님이 구약의 모든 약속과 계시를 완성하시는 분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초막 셋 (17:4): 유대인들의 초막절(하나님의 임재를 기리는 절기)을 떠올리게 합니다.
베드로는 종말론적 영광이 임했다고 생각하여 그곳에 안주하려 했습니다.
엘리야의 도래 (17:10-13): 말라기 4:5의 예언대로 메시아 이전에 엘리야가 올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기대를 다룹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그 역할을 했음을 밝히시며, 그의 고난이 곧 주님의 고난으로 이어질 것임을 시사합니다.
3. 신학적 구조
① 신성 계시의 신학: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17:2, 5)
신학: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 스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의 음성은 주님의 신성을 확증하며,
제자들에게 수난 이후에 있을 부활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합니다.
② 경청과 순종의 신학: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17:5)
신학: 환상과 체험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생각으로 초막을 지으려 했으나,
하나님은 주님의 말씀(특히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경청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영광의 체험은 감상용이 아니라 순종을 위한 동력입니다.
③ 고난과 영광의 신학: "산에서 내려오며" (17:9, 12)
신학: 영광은 고난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게 하는 힘입니다.
주님은 영광스러운 산 위에 머물지 않고 귀신 들린 아이와 아우성이 있는 산 아래(현장)로 내려가십니다.
영광의 산은 반드시 십자가의 골고다 언덕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십자가 신학'을 보여줍니다.
수련회나 뜨거운 예배에서 "주님,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고백하며 그 감정에만 머물고 싶을 때가 있죠?
하지만 주님은 그 영광스러운 빛을 보게 하신 뒤, 곧바로 "산 아래"로 가자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변화산의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그곳에 별장을 짓고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일 마주할 취업의 문턱, 인간관계의 갈등, 나를 괴롭히는 고난의 현장을 이겨낼 '천국의 기억'을 심어주시기 위함입니다.
영광을 보았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일어나 산 아래로 내려가십시오.
변화산에서 본 그 빛나는 주님이, 여러분이 겪는 고난의 현장에도 똑같이 계실 것입니다.
청년설교
변화산의 영광, 세상 속의 능력으로
: 은혜의 정상을 넘어 고난의 현장으로
마태복음 17:1–13
도입
— 주님, 여기가 좋사오니
'영적 하이'와 월요일의 괴리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황홀한 순간이 있습니다.
찬양이 가슴을 울리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며,
세상의 모든 고민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은 시간 말이죠.
우리는 소위 이런 상태를 '영적 하이'라고 부릅니다.
그때만큼은 모든 문제를 다 이길 것 같고, 이 은혜의 장소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 합니다.
"주님, 여기가 너무 좋습니다. 그냥 여기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죠.
베드로의 초막, 그리고 영광의 압도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딱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높은 산에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상상도 못 할 광경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이 눈부시게 하얘졌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인물 모세와 엘리야까지 나타나 주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압도된 베드로는 그 영광에 취해 제안합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으니 참 좋습니다.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그냥 삽시다!”
베드로는 산 아래의 소음과 갈등을 잊고, 이 신비로운 영광 속에 안주하고 싶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산 아래로 내려보내실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황홀한 순간을 멈추시고 구름 속에서 음성을 들려주신 뒤,
곧바로 주님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가게 하십니다.
산 아래에는 여전히 아우성치는 무리와 고통받는 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황홀한 은혜를 주시고는,
다시 차갑고 팍팍한 현실의 '산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시는 걸까요?
은혜의 목적은 안주하는 '별장'을 짓는 것일까요, 아니면 치열한 '현장'을 살아낼 능력을 얻는 것일까요?
오늘 변화산의 영광이 내일의 고난을 이기는 능력이 되는 신비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예배가 끝나고 월요일이 온다’는 표현은 청년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은혜를 경험하는 것보다 그 은혜를 삶 속에서 이어가는 일이 더 힘들다는 사실을 공감하며,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세상으로 보내시는 이유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봅시다.
본문
— 산 위에서 일어난 영광스러운 변모
1. 영광의 실체: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17:1~3)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헐몬 산 추정)에 오르십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주님의 정체성이 완전히 뒤바뀌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해처럼 빛나는 얼굴: 주님은 단순한 인간 스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이 영광은 6일 전 주님이 예고하신 '고난과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도록 미리 맛보게 하신 부활의 영광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상징하는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약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고 완성하시는 '역사의 주인공'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ㅡ전투 비행사의 시뮬레이션
전투 비행사가 실제 전쟁터에 나가기 전,
시뮬레이션에서 완벽한 승리를 반복해서 경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실제 공중전의 공포 속에서도 그 성공의 감각을 기억해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변화산의 영광은 우리가 안주하기 위한 '별장'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을 견뎌내게 하는 '영적 시뮬레이션'입니다.
2. 체험보다 중요한 것: "그의 말을 들으라" (17:4~5)
황홀경에 빠진 베드로는 이곳에 초막 셋을 짓고 영원히 머물자고 제안합니다.
"주님, 여기가 정말 좋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솔직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마 17:5)
하나님은 우리가 '신비한 체험' 자체에 취해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체험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과 순종'입니다.
영광의 체험은 감상용이 아니라, 산 아래로 내려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이어야 합니다.
3. 은혜의 결론: "오직 예수 외에는" (17:6~8)
하나님의 위엄 앞에 두려워 떨며 엎드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다가와 '어루만지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영광은 저 멀리 구름 속 소리가 아니라, 내 두려움을 만지시는 주님의 따뜻한 손길입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어 보니 그 화려했던 모세도, 엘리야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 17:8)

ㅡ무대의 조명
화려한 무대 장치와 특수 효과가 가득해도,
결국 모든 조명이 꺼지고 주인공 한 사람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될 때 극은 완성됩니다.
우리 신앙의 산 위에서 감정의 흥분과 신비로운 체험이 걷히고 난 뒤,
내 곁에 계신 '예수 한 분'만 남았다면 여러분은 은혜의 산에 제대로 오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혜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뜨거운 눈물과 찬양의 열기입니까?
아니면 오직 내 곁에 남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신비로운 체험이나 뜨거운 감정은 안개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두려움을 어루만지시는 주님의 손길은 산 아래에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눈을 들어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모세(율법의 정죄)도 사라지고 엘리야(신비한 현상)도 사라진 그 자리에,
끝까지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진짜 은혜의 시작입니다.
“예수 외에는 보이지 아니하더라”는 고백이 주는 평안을 강조해 주십시오.
우리가 세상의 현장으로 내려갈 때 붙들어야 할 것은 특별한 체험의 순간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 그분 자체입니다.
— 산 아래로 흐르는 영광
4. 산 아래의 소명: "내려와야 완성됩니다" (17:9)
제자들은 그 화려한 빛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겠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마 17:9)
영광의 체험 뒤에는 반드시 '내려감'이 있습니다.
신앙은 정상에서의 황홀한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산 아래의 비명과 아우성이 있는 현장으로 내려가는 순종에서 완성됩니다.
영광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명의 출발점입니다.

ㅡ충전된 배터리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아두면 100%가 됩니다.
하지만 배터리의 존재 목적은 충전기 옆에 평생 붙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목적은 충전기를 떠나 전원이 없는 곳으로 나가 빛을 밝히고 기계를 돌리는 것입니다.
은혜를 '충전'했다면 이제는 세상이라는 현장에서 기꺼이 '방전'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충전된 영성이 세상을 밝히는 에너지가 되어야 합니다.
5. 고난과 연결된 영광: "엘리야와 인자의 고난" (17:10–13)
산을 내려오며 제자들은 율법학자들이 말한 엘리야에 대해 묻습니다.
주님은 엘리야(세례 요한)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대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선언을 덧붙이십니다.
“이와 같이 인자도 그들의 손에 고난을 당할 것이다” (마 17:12)
변화산의 찬란한 광채는 곧바로 십자가의 짙은 그림자와 연결됩니다.
해처럼 빛나던 얼굴 뒤에는 가시관에 찢길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광은 고난을 면제받는 티켓이 아니라, 고난을 뚫고 지나갈 수 있게 하는 '하늘의 연료'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변화산의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그곳에 초막을 짓고 숨어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일부터 마주할 직장 상사의 비난, 취업 낙방의 쓴잔,
깨진 관계라는 '산 아래의 고난'을 견뎌낼 힘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영광은 고난을 없애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광은 고난을 통과하게 합니다. 수련회에서, 예배에서 주님을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산 아래로 내려가십시오.
변화산에서 보았던 그 빛나는 주님이, 여러분이 겪는 고난의 현장에도 똑같이 곁에 계실 것입니다.
산 아래의 비명을 외면하지 않고 그곳을 치유와 회복의 현장으로 바꾸는 진짜 신앙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주님의 어루만지심을 품고 세상으로
베드로는 '여기'가 좋다고 했지만, 주님은 '저기'로 가자고 하십니다.
영광의 산은 반드시 십자가의 골고다 언덕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산 위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
우리를 어루만지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한 분입니다.
✓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신비한 체험에 매몰되지 말고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에 순종하십시오.
✓ 현장으로 가십시오: 은혜받은 자의 사명은 가장 아픈 곳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 오직 예수만 바라보십시오: 세상의 소음이 가득한 산 아래에서도, 변화산의 그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으십시오.
이제 우리는 ‘은혜의 유통기한’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는 간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 어둠 속에서 주님의 빛을 비출 때,
그 은혜는 더 이상 감동의 기억이 아니라 내 삶의 능력이 됩니다.
변화산의 기억으로 골고다를 걷다
ㅡ월요일의 산 아래가 두려운 여러분에게
내일부터 시작될 일상이 두려우신가요?
직장 상사의 날카로운 비난, 안개처럼 불투명한 미래,
그리고 나를 찌르는 인간관계라는 '산 아래'의 현실이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오늘 여러분의 영혼에 그곳을 뚫고 나갈 '해 같은 얼굴'의 기억을 새겨주셨습니다.
은혜는 현실을 잊게 만드는 마취제가 아니라,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하게 만드는 강력한 비타민입니다.
안주하는 초막을 버리고 사명의 현장으로
"주님, 산 위의 은혜에만 취해 현실을 도피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본 주님의 영광을 품고, 고통의 신음이 가득한 산 아래로 담대히 내려가겠습니다.
세상의 소음 대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오직 예수 한 분만 의지하며 내일의 고난을 돌파하겠습니다."
변화산이 우리에게 남긴 신학적 메시지
1. 예수님의 신성: 구원의 주권자
“얼굴이 해처럼 빛났다”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는 위로자를 넘어,
죽음을 이기고 우리를 건져내실 전능한 구원의 주이십니다.
2. 체험을 넘어 말씀으로: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체험은 감정의 기복에 따라 사라질 수 있지만, 기록된 말씀은 인생을 견인합니다.
특히 주님이 변화산 직전에 하신 말씀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본 우리가 이제 그 십자가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3. 영광은 고난을 위한 준비: 목적지가 아닌 중간 지점
변화산은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그곳은 골고다 언덕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영적 병참기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그 자리에 머물라고가 아니라,
내일의 싸움을 이길 전신갑주를 입히기 위함입니다.
✓ 영광의 순간을 보물처럼 간직하십시오:
뜨거운 예배와 깊은 기도 속에서 만난 주님은 가짜가 아닙니다.
그 감동을 잊지 않도록 영혼에 깊이 새기십시오.
✓ 그러나 반드시 세상으로 돌아가십시오:
직장, 학교, 그리고 갈등이 있는 가정이 바로 여러분의 사명지입니다.
초막은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에 지어야 합니다.
✓ 변하지 않는 빛을 신뢰하십시오:
산 위에서 보았던 주님의 영광스러운 빛은,
어두운 산 아래에서도 결코 흐려지지 않습니다.
상황이 변한 것이지 주님이 변하신 것이 아닙니다.
묵상나눔질문
1. 수련회나 특별한 예배를 통해 큰 은혜를 경험한 뒤,
다시 마주한 일상(월요일)에서 가장 크게 괴리감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2. 베드로처럼 현실의 고난을 피해 머물고 싶은 나만의 '초막(도피처)'은 무엇인가요?
(취미, 게임, 은둔, 혹은 종교적 감정에만 몰입하는 것 등)
3. 변화산에서 모든 신비로운 현상이 사라지고 '예수만 남았을 때' 제자들은 비로소 산을 내려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내 신앙에서 '예수님 한 분'보다 더 의지하거나 앞세우고 있는 '모세(율법적 기준)'나 '엘리야(신비한 체험)'는 무엇인가요?
4.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처럼,
최근 내 감정이나 판단보다 주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고 순종하려 애썼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5. 주님이 가자고 하신 '산 아래'는 귀신 들린 아이와 절망한 아버지가 있는 곳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내가 주님의 빛을 품고 내려가 치유와 위로를 전해야 할 나의 현장은 어디인가요?
6.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어루만지시며 "일어나라"고 하신 주님의 손길이,
현재 내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이나 불안에 어떤 위로가 되나요?

변화산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청년의 기도
찬란한 영광의 주님,
오늘 우리는 변화산 위에서 해처럼 빛나는 주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황홀한 은혜와 하늘의 음성 앞에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고백하며,
이곳에 영원히 머물 초막을 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산 아래 기다리고 있는 차가운 현실, 나를 옥죄는 취업의 문턱,
깨진 관계의 상처,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로부터 도망쳐 주님의 영광 뒤로 숨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우리를 어루만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은혜는 안주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 충전소임을 깨닫습니다.
산 위의 영광스러운 빛을 우리 영혼에 깊이 새겨 주셨사오니,
이제는 그 빛을 연료 삼아 고통의 신음이 가득한 산 아래로 담대히 발걸음을 옮기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산 아래로 내려갈 때 오직 주님 한 분만 남게 하옵소서.
신비한 체험의 여운이나 사람의 칭찬, 종교적인 형식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오직 우리 곁을 지키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보이게 하옵소서.
세상의 소음이 주님의 음성을 가리지 못하게 하시고,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신 명령대로 일상의 작은 자리에서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내일부터 시작될 월요일의 삶이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습니다.
우리를 찌르는 상사의 말 한마디,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세상의 평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산에서 빛나셨던 그 예수님이,
이제 우리와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가 고난의 현장 한복판에 함께 서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굶겨 보내지 않으시고, 기진하여 쓰러지지 않게 어루만지시는 주님의 손을 꼭 잡고 걷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청년들이 변화산의 기억으로 골고다를 통과하게 하옵소서.
영광 뒤에 숨겨진 십자가의 사명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내려가는 그곳이 주님의 빛으로 인해 어둠이 물러가고 회복이 일어나는 기적의 현장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과 함께라면 광야도 잔칫집이 되고, 험한 산도 평지가 됨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나아갑니다.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우리 삶의 유일한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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