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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장 1절 - 20절 위선적인 종교인, 진실한 신앙인

by Lily00112233 2026. 2. 19.

마태복음 15 : 1~20 위선적인 종교인, 진실한 신앙인

위선적인 신앙 15:1~9
1 그때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다가와 물었습니다.
2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우리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습니까? 음식을 먹기 전에 그들은 손을 씻지 않습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어째서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4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5 그러나 너희는 누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내가 드려 도움이 될 것이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됐습니다’ 하고 말하면
6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니 너희 전통을 핑계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
7 이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대해 예언한 말이 옳았다.
8 ‘이 백성들은 입술로만 나를 공경하고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
9 사람의 계명을 교훈으로 가르치고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신앙인의 겉과 속 15:10~20
10 예수께서 무리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하는 것이다.”
12 그때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비위가 상한 것을 아십니까?”
13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식물은 모두 뿌리째 뽑힐 것이다.
14 그들을 내버려 두라. 그들은 앞을 못 보는 인도자다.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15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그 비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16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겠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배 속으로 들어가서 결국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느냐?
18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이런 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한다.
19 마음에서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위증, 비방이 나온다.
20 이런 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하지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1. 내용 요약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을 비난하자, 

예수님은 '전통'을 핑계로 '하나님의 계명(부모 공경)'을 어기는 그들의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하십니다. 

이어 예수님은 무리에게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임을 가르치시며, 신앙의 본질이 외적인 형식이 아닌 내면의 거룩함에 있음을 선포하십니다.

2. 역사적 구조 
장로들의 전통 (15:2): 성경(토라)에는 없으나 구전으로 내려온 세부 규칙들입니다. 

특히 식사 전 손 씻기는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제사장적 정결 의식을 일반인에게 확대 적용한 종교적 퍼포먼스였습니다.
고르반 제도 (15:5): 부모를 공경하기 위해 사용해야 할 재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고르반)'이라고 선언만 하면,

정작 부모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게 악용된 편법이었습니다. 종교적 명분으로 인륜을 저버린 대표적 위선 사례입니다.
불결함의 개념 (15:11, 18): 유대인들은 음식을 가려 먹는 것(제사 의식적 정결)이 영적 수준을 결정한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정면으로 뒤집어, 거룩의 근원지는 위장이 아니라 마음임을 선언하셨습니다.

3. 신학적 구조
① 계시의 우선순위 신학: "전통 vs 하나님의 말씀" (15:3, 6)
신학: 인간이 만든 전통이나 관습이 하나님의 계명보다 우선될 수 없습니다. 

종교적 열심이 도구화되어 하나님의 본질적인 뜻(사랑, 공경)을 가리는 현상을 경계하며, 

신앙의 유일한 표준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합니다.

② 위선과 소외의 신학: "입술 vs 마음" (15:8-9)
신학: 하나님은 입술의 고백(Lip service)이 아닌 마음의 거리로 신앙을 측정하십니다. 

마음이 떠난 예배는 '헛된 예배'이며, 사람의 교훈을 하나님의 권위로 가르치는 것은 위선이라는 종교적 허상을 고발합니다.

③ 내면적 거룩의 신학: "마음에서 나오는 것" (15:18-20)
신학: 죄의 본질은 외적인 행위 이전에 내면의 동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목록(악한 생각, 살인, 음란 등)을 나열하시며, 

진정한 성결은 손을 씻는 예식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마음을 씻어내는 회복에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나는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으니까", "나는 헌금을 꼬박꼬박 하니까"라는 종교적 형식이

여러분의 영혼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바리새인들은 손 씻는 법은 알았지만, 부모를 사랑하는 법은 잊었습니다. 

우리도 찬양 가사는 외우지만, 정작 일상에서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메말라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손'이 깨끗한지보다 여러분의 '마음 저장고'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를 보십니다.


청년설교

 

깨끗한 손인가, 깨끗한 마음인가?
: 위선적인 종교인, 진실한 신앙인
(마태복음 15:1–20)

 

도입

— 우리는 정말 괜찮은 신앙인일까?


1. 신앙의 '체크리스트'에 속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해본 적 없습니까? 

“나는 주일 예배도 꼬박꼬박 드리고, 헌금도 제때 하고, 

공동체 모임도 빠지지 않으니 꽤 괜찮은 그리스도인 아닐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몇 가지 종교적 '체크리스트'를 채우고 나면 안도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종교적 행위들이 때로는 우리 마음의 부패함을 가리는 교묘한 '화장'이 되기도 합니다.

2. 손 씻기와 마음 씻기
오늘 본문에는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종교 전문가들, 즉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해 날카로운 비난을 쏟아냅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고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습니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위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세워놓은 '종교적 규칙'을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형식의 문제였습니다.

3. 바리새인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교회 밖 세상 사람들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누구보다 종교적으로 성실했던 ‘교회 안 사람들’을 향한 폭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리나 창기보다 바리새인을 더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나쁜 짓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 뒤에 숨어 하나님과 상관없는 마음을 방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 당신의 거룩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겉으로는 경건한 신앙인처럼 보이는데 

속으로는 분노, 비교, 시기, 냉소가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지금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손을 씻는(형식)’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만 아시는 내 ‘마음을 씻는(본질)’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종교적인 가면을 벗고, 

우리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 정직하게 서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리새인은 악당이 아니라 모범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면 할수록 

우리 안에 바리새인 같은 위선이 자라날 위험이 커질수가 있습니다. 


본문 

— 예수님이 폭로하시는 첫 번째 진실

 

1.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삼킬 때 (15:1–6)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따져 묻습니다. "왜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듯, 이것은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이만큼 거룩한 규칙을 지킨다"는 종교적 자부심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급소를 찌르는 질문으로 응수하십니다.

“너희는 어째서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마 15:3)

주님은 ‘고르반’ 제도의 악용을 예로 드십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양해야 할 재물을 두고 "이건 하나님께 드릴 예물(고르반)이 되었습니다"라고 선언만 하면, 

정작 부모를 돕지 않아도 법적으로 면제받던 편법이었습니다. 

종교적 헌신이라는 화려한 명분으로, 가장 기본적인 인륜이자 하나님의 명령인 '사랑'과 '책임'을 회피한 것입니다.

 


ㅡSNS 신앙과 거실의 삶

청년 여러분, 혹시 우리는 현대판 '고르반'을 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SNS에는 세련된 배경에 성경 구절을 올리고 큐티 사진을 공유하며 
'경건한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쌓지만, 정작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마주하는 거실의 부모님께는 짜증을 내고 형제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나요? 

"나는 교회 일을 하느라 바빠서", 
"나는 사역 때문에 바빠서"라는 핑계로 
가장 가까운 이들을 향한 사랑을 미루고 있다면, 
그것은 거룩이 아니라 위선입니다. 
신앙은 일상의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2. 입술은 가까우나 마음은 멀리 있는 예배 (15:7–9)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그들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8)

얼마나 두렵고 아픈 말씀입니까. 입술은 뜨겁게 찬양합니다. 

입술은 유창하게 기도합니다. 입술은 목사님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마음의 저장고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청년들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형식은 남아있는데 불은 꺼져 있지는 않나요? 

사랑은 식고 의무만 남은 채 '예배드려 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마음이 떠난 모든 종교적 행위를 향해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고 선언하십니다.

'헛된 예배'만큼 사역자에게, 그리고 신앙인에게 무서운 선고는 없습니다.

청년 여러분,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종교적 퍼포먼스가 아닙니다.
"주님, 제가 교회 봉사 이만큼 했으니 부모님께 불효하는 건 눈감아 주세요."
"제가 기도를 한 시간이나 했으니 오늘 누군가를 미워한 건 괜찮겠죠?"


이런 거래를 멈추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입술이 내뱉는 종교적 언어보다, 여러분의 마음이 머무는 일상의 자리를 더 궁금해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입술과 마음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이 진짜 신앙의 시작입니다.

 

'종교적 활동이 일상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삶과 분리된 영성은 결국 바리새인과 같은 독선을 낳습니다.


— 예수님이 폭로하시는 두 번째 진실


3. 거룩의 근원지: 위장이 아니라 마음 (15:10~14)
예수님은 무리를 불러 모으시고 당시 유대인들의 가치관을 통째로 뒤흔드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불결하게 하는 것이다” (마 15:11)

그들은 "무엇을 먹느냐", 즉 외부적인 형식을 지키는 것이 거룩을 결정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단호하십니다. 거룩의 전쟁터는 위장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형식주의'와 '외식'이라는 식물은 결국 뿌리째 뽑힐 것입니다.

 


ㅡ 정수기의 필터와 컵의 청결

우리가 컵의 겉면을 아무리 금칠하고 깨끗하게 닦아도, 
정수기 내부 필터가 썩어 있거나 
저수조가 오염되어 있다면 그 물은 마실 수 없습니다. 
신앙은 컵의 겉면을 닦는 화려한 기술이 아닙니다. 
성령의 보혈로 우리 마음의 필터를 근본적으로 교체하는 작업입니다.

 

4. 마음의 저장고에서 나오는 것들의 실체 (15:15~20)
제자들조차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 묻자, 예수님은 더 직설적으로 죄의 본질을 파헤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배 속을 거쳐 뒤로 나가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위증, 비방이 나온다” (마 15:19)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저장고에는 무엇이 쌓여 있습니까?
겉으로는 세련된 옷을 입고 교회 의자에 앉아 있지만, 

우리 마음속은 비교, 질투, 음란한 상상,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비방으로 가득 찬 전쟁터 아닙니까? 

남들에게 들키지 않았다고 해서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뚜껑을 닫아둔 쓰레기통은 겉보기엔 멀쩡해도 그 안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진동하듯, 

우리의 마음도 종교라는 뚜껑으로 덮어두기만 한다면 결국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ㅡ 방치된 쓰레기통

여름날 방치된 쓰레기통을 떠올려 보십시오. 
뚜껑을 꽉 닫아두면 잠시는 괜찮아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온갖 오물들이 썩어가며 독한 가스를 내뿜습니다. 

우리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이라는 뚜껑으로 내면의 죄성을 덮어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그 뚜껑을 열고 내 안의 미움과 탐욕의 쓰레기를 쏟아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씻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손을 씻지 않은 게 문제가 아니다. 네 마음이 문제다.”

청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스마트폰 검색 기록과 혼자 있는 시간의 생각들을 주님 앞에 펼쳐놓을 수 있습니까? 

겉모습을 치장하는 종교적 화장을 지우십시오. 그리고 우리 마음의 깊은 저장고를 말씀의 생수로 씻어내십시오. 

손이 깨끗한 종교인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한 신앙인으로 서는 것,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진짜 거룩입니다.

'죄의 목록'을 단순히 도덕적인 죄로만 그치는게 아닌 

'타인을 향한 비방'이나 '비교의 마음'처럼 일상적인 내면의 오염으로 연결해야합니다. 

"씻지 않은 손보다 씻지 않은 마음을 더 부끄러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입술에서 마음으로의 회귀

ㅡ여러분은 지금 무엇 뒤에 숨어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기도는 어떤가요? 화려한 미사여구로 입술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는 않나요? 

삶의 현장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부딪히기보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과 역할이라는 안전한 성벽 뒤에 숨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내미는 '깨끗한 손'보다, 그 손으로 누구를 붙잡고 무엇을 품었는지 '마음의 궤적'을 추적하십니다.

위선의 손을 씻고 마음을 드리십시오
"주님,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손 씻기'를 멈추겠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내 불순종을 정당화했던 위선을 회개합니다. 

입술로만 주를 부르는 종교인이 아니라, 

내 마음의 저장고를 선한 말씀으로 채워 삶의 열매로 증명하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는 어떤 신앙인이 될 것인가?
ㅡ하나님을 '관리'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청년 여러분, 바리새인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열심이 특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관리'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도 이만큼 해주셔야 한다는 거래,

내 형식을 이만큼 갖췄으니 내 영성은 안전하다는 착각... 그것이 하나님을 관리하려는 오만입니다.

하나님을 관리하려 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 액수를 보시기 전에 마음의 방향을 보십니다. 

예배 참석 체크리스트를 보시기 전에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겉은 속일 수 있고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우리 마음의 지도를 훤히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꿀 것인가?
ㅡ형식이 아닌 관계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 사실 제 마음이 주님과 너무 멀어졌습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하십시오. 

주님은 세련된 형식보다 거친 진실을 원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신앙을 증명하십시오.
부모님께 지금 전화 한 통 하십시오. 

신앙은 거창한 사역지가 아니라 거실에서 시작됩니다. 

종교적 핑계로 미뤄두었던 사랑의 의무를 오늘 즉시 실천하십시오.

마음의 분출물을 관찰하십시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입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분노입니까, 시기입니까, 비난입니까? 

만약 오물이 나오고 있다면 주저 말고 주님께 가져오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손 씻는 물이 아니라,

리 영혼의 심부를 씻어내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뼈아프게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신앙은 오래 버틴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진짜'인 사람이 이깁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빈 신앙이 아니라,

세상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만은 알아주시는 '진짜 신앙인'이 되십시오.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의 눈을 응시하며 묻고 계십니다.

“네 입술 말고, 네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형식의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진실한 사랑의 신앙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진짜인 사람이 이긴다' 결과 중심적인 세상에서 지쳐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진실함' 하나면 충분하다는 사실이 가장 큰 해방감과 도전입니다.


묵상질문

1. 나는 주일 예배, 봉사, 헌금 등 눈에 보이는 종교적 행위를 마쳤을 때

'나는 괜찮은 신앙인이다'라는 안도감을 느낀 적이 있나요? 
2.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명분'을 내세워 부모 공경의 의무를 피했습니다.

나에게도 "사역 때문에", "교회 일 때문에"라는 핑계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사랑과 책임을 미루고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요?
3. 찬양을 부르거나 기도를 할 때,

내 입술의 고백과 내 마음의 실제 상태가 가장 멀게 느껴졌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왜 그런 간극이 생겼다고 생각하나요?
4. 예수님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최근 나의 언어와 생각 중에서 나를 가장 '불결하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예: 타인에 대한 비방, 비교에서 오는 시기, 음란한 상상 등)
5. 설교 결론에서 말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관리하는 신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6. 겉치레를 벗고 '진짜' 신앙인이 되기 위해,

이번 주 내가 당장 집(가족)이나 직장에서 실천해야 할 '마음 씻기'와 '사랑의 행동'은 무엇인가요?


 

 


가면을 벗고 주님 앞에 서는 기도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종교라는 화려한 옷 뒤에 숨어 있던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직면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깨끗한 손과 단정한 겉모습을 가꾸는 데는 열심이었으나, 

정작 온갖 악취가 진동하는 우리 마음의 저장고는 방치해 두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우리의 위선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입술로는 뜨겁게 주를 공경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마음은 주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던 '헛된 예배자'가 바로 우리였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과 '긍휼'은 잊은 채, 

내가 세운 기준과 전통으로 남을 정죄하고 비난했던 바리새인의 모습이 우리 안에 가득했음을 고백하오니, 

주님의 보혈로 우리를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드렸다"는 핑계로 가장 가까운 부모와 형제를 돌보지 않았던 

고르반의 비극이 우리 삶에 반복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일상의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가 되지 않게 하시고, 

가장 종교적인 순간에 가장 인간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거창한 사역의 자리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거실과 방 안에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우리 마음의 필터를 교체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안에서 솟구치는 비교와 시기, 미움과 음란의 찌꺼기들을 말씀의 생수로 씻어내 주시옵소서. 

뚜껑을 닫아둔 쓰레기통처럼 겉만 멀쩡한 인생이 아니라, 

속사람이 주님의 성품으로 가득 채워져 입을 열 때마다 생명의 언어가 흘러나오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청년들이 이제 하나님을 관리하려 드는 오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리에 서길 원합니다. 

신앙의 연수나 직분이 주는 안도감을 내려놓고, 

날마다 주님 앞에 정직하게 눈물 흘리는 '진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은 우리의 겉모습을 보고 평가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의 입술이 아닌 마음을 주님께 드립니다. 

우리의 전 존재가 주님의 거룩한 통치 아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선의 감옥에서 건져내어 진실한 사랑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