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8 : 1~9
열방의 구원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기이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 98:1~3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3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심판하러 오시는 하나님 98:4~9
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5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6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7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8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9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1. 내용 요약 (Summary)
시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 즉 주권적인 구원 역사를 찬양하기 위해 온 세상을 '새 노래'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났으며,
이는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헤세드와 에무나)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에 시인은 인간뿐만 아니라 바다, 세계, 큰 물, 산악 등 모든 피조물이 왕이신 여호와 앞에서 악기와 함성으로
축제를 벌일 것을 촉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찬양의 궁극적 이유는 의와 공평으로 세계를 심판하러
오실 하나님의 통치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2. 역사적 구조 (Historical Structure)
① 출애굽의 기억과 '새 노래' (1~3절)
"오른손과 거룩한 팔"은 출애굽 당시 홍해를 가르시고 대적을 물리치셨던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을 상징하는 고전적인 표현입니다(출 15:6).
역사적으로 이 시는 바벨론 포로 귀환과 같은 제2의 출애굽 사건을 배경으로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의 구원을 '기억'하신 하나님이 현재의 새로운 구원을 베푸셨기에,
공동체는 이전과 다른 '새 노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② 대관식 축제와 악기 동원 (4~6절)
수금, 나팔, 호각 소리는 고대 근동에서 새로운 왕이 등극할 때 울려 퍼지던 대관식의 전형적인 사운드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절기 예배, 특히 '여호와 즉위 축제' 때 제사장들과 온 백성이 왕이신 하나님을 알현하며
드렸던 국가적 제의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3. 신학적 구조 (Theological Structure)
① 구원론(Soteriology): 자기를 위하여 베푸신 구원 (1~2절)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신학적 의미: 인간의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영광을 위해
스스로 구원을 행하셨다는 '신본주의적 구원론'을 강조합니다.
이 구원은 은밀한 것이 아니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난 계시적 사건입니다.
② 언약론(Covenantalism): 인자와 성실의 기억 (3절)
구원의 동력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Hesed)'와 '성실(Emunah)'입니다.
신학적 통찰: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구원의 보증이 됩니다.
이 언약의 신실함이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에게 구원을 보게 하는 선교적 확장의 기초가 됩니다.
③ 피조물론(Creationism): 우주적 예배 (7~8절)
바다가 외치고, 큰 물(강)이 박수하며, 산악이 함께 노래합니다.
신학적 파격: 인간만이 예배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온 만물에 미치기에,
모든 자연 만물은 창조주의 임재 앞에 반응하는 인격적 예배자로 묘사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타락한 온 우주적 질서를 회복시키는 것임을 뜻합니다.
④ 심판론(Eschatology): 공평의 통치 (9절)
찬양의 마침표는 '심판하러 오시는 하나님'께 찍힙니다.
종말론적 소망: 여기서의 심판은 공포가 아니라 '축제'입니다.
뒤틀린 세상의 질서가 하나님의 '의(Zedek)'와 '공평(Mesharim)'으로 바로잡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에 더 이상 부를 노래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과 고난 속에 노래가 말라버린 것입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새 노래'는 악보가 새로운 노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오늘' 다시 경험한 사람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살아있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그리고 당신과의 언약을 기억하셔서 오늘도 우리 삶에 기이한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마르지 않는 기쁨, 새 노래로 왕을 맞으라
새 노래는 구원을 경험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
본문: 시편 98:1~9
도입
: 당신의 노래는 왜 멈췄습니까?
노래를 잃어버린 시대: "요즘 여러분의 삶에 노래가 있습니까?"
여러분, 요즘 우리 청년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적인 '여유'도 아니고, 주머니의 '돈'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퍼져야 할 '노래'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내느라 참 바쁩니다. 출근 전쟁을 치러야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 준비에 매달려야 하며, 복잡한 인간관계를 지켜내느라 기진맥진합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늘 안개처럼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버티는 삶: "살아는 있는데 기쁨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삶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살아는 있는데, 얼굴에 기쁨은 사라졌습니다.
숨은 쉬고 있는데, 입술에 감사는 메말랐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는 있는데, 찬양의 감격은 화석처럼 굳어버렸습니다.
혹시 요즘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사라지지 않았나요?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 속에서 우리 입술에는 노래 대신 깊은 한숨이 더 익숙한 주소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어제의 노래 vs 오늘의 노래: "새 노래가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는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어제의 노래만으로는 오늘의 고난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제 먹은 밥으로 오늘을 살 수 없듯이,
우리에겐 오늘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새 노래'가 절실합니다.
구원을 본 사람의 승전가
오늘 시편 98편은 침묵하며 버티고 있는 우리를 향해 첫 문장부터 아주 강력하게 외칩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왜입니까? 하나님이 내 삶에 ‘기이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새 노래는 단순히 기분이 좋아진 사람이 부르는 흥겨운 가락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의 수렁에서 건져 올림을 받은 사람,
즉 구원을 경험한 사람만이 터뜨릴 수 있는 승리의 외침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메마른 여러분의 입술에 다시 노래를 회복시키길 원하십니다.
억지로 짜내는 감정이 아니라, 왕의 통치를 발견한 자의 영혼에서 터져 나오는 새 노래가 다시 시작되길 소망합니다.
본문
구원의 기이함: 자기를 위하여 베푸신 능력
: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품입니다
본문 1절은 우리가 찬양해야 할 이유를 명확히 밝힙니다.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통찰은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실 때 ‘자기를 위하여’ 하셨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혹은 내가 전보다 조금 더 착해져서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며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인자와 성실(헤세드와 에무나)’을 기억하셨습니다(3절).
우리가 연약하고 넘어질 때도 하나님의 구원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와 맺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신실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기이한 일’의 압도적 개입
성경에서 ‘기이한 일’이라는 표현은 사람이 설명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초자연적인 개입을 뜻합니다.
홍해가 갈라져 마른 땅이 될 때
광야 한복판에서 샘물이 터져 나올 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자가 일어날 때
이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기이한 일’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조금 도와주는 보조’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예 판을 바꾸시고, 막힌 길을 뚫어버리시는 ‘창조적 개입’을 하시는 분입니다.
“내 인생은 끝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인생에도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이 있지 않습니까?
몇 년째 나를 괴롭히는 고질적인 불안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는 엉킨 관계
내 실력으로는 넘을 수 없는 미래의 장벽
우리는 내 힘으로 상황을 정리해 보려다 지쳐서 “이제 끝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구원은 내가 상황을 정리해서 얻는 성적표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거룩한 팔) 내 인생에 개입하실 때 시작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괜찮은 사람이라서 도와주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그리고 여러분과 맺은 사랑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기이한 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실력에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실함에 소망을 두십시오. 왕의 오른손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길은 열릴 것입니다.
우주적 대관식: 왕의 등장을 환영하는 소리
: 찬양은 단순한 공연이 아닌 '왕의 등극' 선포입니다
본문 4절부터 6절을 보면 온갖 악기가 등장합니다.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왜 이렇게 시끄럽고 요란할까요?
이것은 단순한 음악 공연이나 고상한 취미 활동이 아닙니다. 고대 근동에서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성 안의 모든 악기를 동원해 울려 퍼뜨렸던 ‘대관식 사운드’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뒤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기이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이 지금 내 삶의 '왕'으로 입장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조용히 혼자 알고 넘길 일이 아니라,
온 땅이 진동하도록 소리 높여 환영해야 할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주권의 이동을 선포하는 영적 전쟁
신학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는 영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감정'이 왕이었고, '돈'이 왕이었으며, '세상의 평가'가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 왕 노릇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팔을 불고 즐거이 소리치는 순간, 우리는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 삶의 주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십니다!”
은혜를 '일상'으로 소비하지 마십시오
청년 여러분, 우리의 노래가 왜 멈췄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당연한 '일상'으로 소비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숨을 쉬는 것
수많은 유혹과 위기 속에서도 내 믿음이 무너지지 않은 것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이한 구원'인데, 어느 순간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당연하게 여기면 감탄이 사라지고, 감탄이 사라지면 노래는 멈춥니다.
새 노래는 새 은혜를 깨달은 자의 고백입니다
찬양은 분위기가 좋거나 노래 실력이 좋아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내가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정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터져 나오는 영혼의 반응입니다.
새 노래는 새로운 멜로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새 은혜를 오늘 다시 발견한 사람의 입술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소리를 높이십시오. 왕이 지금 여러분의 삶에 입장하고 계십니다.
그 왕을 환영하며 소리칠 때, 여러분을 짓누르던 모든 어둠의 권세는 떠나가고 진정한 왕의 평강이 시작될 것입니다.
만물의 박수: 나를 넘어 열방과 우주로 흐르는 구원
: 구원은 개인적 위로를 넘어선 '우주적 회복'입니다
본문 7절에서 9절은 장관을 이룹니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큰 물(강)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왜 인간이 아닌 자연 만물이 이렇게 흥분하며 박수할까요? 그 답은 9절에 있습니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성도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뒤틀린 창조 질서, 불공평한 세상, 억울한 눈물을 하나님의 ‘의와 공평’으로 바로잡으러 오시는
‘궁극적인 회복’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만물조차 그날을 고대하며 왕의 오심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순히 내 마음 하나 편해지는 서비스가 아니라,
온 세상을 다시 창조의 본모습으로 되돌리는 거대한 역사입니다.
"나만 잘되는 신앙"에서 벗어나십시오
청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내 취업, 내 결혼, 내 문제” 해결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아직 복음의 진짜 크기를 다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살리셔서 여러분의 가정에, 직장에,
그리고 여러분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척박한 땅에 하나님의 ‘새 노래’가 흐르게 하는 통로로 쓰길 원하십니다.
3절 말씀처럼, 땅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ㅡ지휘자를 바라보는 오케스트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 수많은 악기가 각자 다른 소리를 내지만,
지휘자의 손끝 하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연주자들은 때로 자신의 악보가 불협화음처럼 느껴져 당황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지휘자의 눈과 손을 바라봅니다. 그때 가장 완벽한 화음이 터져 나옵니다.
우리 인생도 수많은 사건과 감정이라는 악기가 섞여 때로는 소음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선포합니다. “왕이신 지휘자가 오고 계신다!”
그분이 지휘봉을 잡으시면, 우리 삶의 모든 소음은 찬양으로 바뀝니다.
바다가 외치고 산들이 노래하는 이 거대한 우주적 오케스트라에 여러분의 삶을 합류시키십시오.
지휘자이신 하나님이 ‘공평’이라는 박자로 여러분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연주하실 것입니다.

ㅡ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은 청년
누구보다 뜨겁게 찬양하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취업 실패와 관계의 상처 속에서 그는 점점 말이 없어졌습니다.
찬양도 기운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저 죽은 듯이 버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쳐서 예배당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보이지 않아도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들려왔습니다.
상황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었지만, 그는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떠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왕이신 그분이 여전히 자기 삶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제야 다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그 청년은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노래는 문제의 끝이 아니라 '주권의 발견'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 새 노래는 문제가 다 해결되어서 나오는 보너스가 아닙니다.
문제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왕이신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그 '기이한 구원'을 발견할 때 시작되는 승전가입니다.
결론 및 결단
새 노래는 왕의 통치를 발견한 자의 고백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삶에 기이한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끝났다"고 마침표를 찍은 그 자리에서,
주님은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고 구원의 길을 여시는 분입니다.
둘째, 새 노래는 새 은혜를 깨달은 사람의 반응입니다.
찬양은 상황이 바뀌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을 발견할 때
터져 나오는 영혼의 감탄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은 나를 넘어 세상을 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키시는 이유는,
우리를 통해 바다와 산과 열방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삼기 위함입니다.
한숨을 버리고 새 노래를 취하십시오
여러분, 요즘 삶이 메말라 있습니까?
기도도 안 되고, 찬양의 가사는 입가에서 맴돌기만 하며,
가슴 속엔 감사의 고백 대신 무거운 한숨만 가득합니까?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미 기이한 일을 행했고, 지금도 행하고 있다. 그러니 다시 노래하라!"
어제의 낡은 원망과 한숨 섞인 노래를 이제는 과감히 버립시다.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내 삶의 모든 악기(재능, 시간, 열정)를 동원해 왕을 환영합시다.
구원의 통로로 일어서라
여러분의 인생은 구원의 종착지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새 노래가 울려 퍼질 때,
여러분이 속한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에 하나님의 공평과 의가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상황은 아직 그대로인 것 같아도, 하나님의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 왕의 임재 앞에 즐거이 소리치는 축제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새 노래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왕의 통치를 발견한 사람의 입술에서 시작됩니다."
묵상 나눔 질문
01. 최근 내 삶에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팔'이 개입하셨다고 느껴지는 '기이한 일'은 무엇인가요?
02. 요즘 내 입술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노래(혹은 고백)는 무엇입니까? 한숨인가요, 아니면 감사의 새 노래인가요?
03. 내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언약 때문에)'
나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안도감을 주나요?
04. 7~8절 말씀처럼 내 주변의 환경(자연,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만들기 위해
내가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축복의 통로' 역할은 무엇일까요?

마르지 않는 기쁨, 왕의 입성을 노래하는 영혼
오른손과 거룩한 팔을 펴사 우리 인생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기이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왕 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노래를 잃어버린 메마른 영혼들을 품고 주님 앞에 나옵니다.
매일의 생존을 위해 버티느라 바빴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잠식되어 입술에는 감사 대신 한숨이,
찬양 대신 탄식이 더 익숙해진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살아 있으나 기쁨이 없고,
숨은 쉬고 있으나 생동감을 잃어버린 우리 청년들의 메마른 가슴 위에
오늘 시편 98편의 우주적인 찬양의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구원이 철저히 주님의 작품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무언가 잘나서가 아니라,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와 맺으신 그 인자와 성실(헤세드와 에무나)을 기억하셔서 베푸시는 주권적인 구원임을 믿습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라고 절망하며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팔'이 다시 일을 시작하실 것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맡겨드리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 영혼에 ‘새 노래’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어제의 은혜에만 머물러 있는 화석화된 신앙이 아니라,
오늘 내 삶에 새롭게 입장하시는 왕을 맞이하는 생생한 고백이 터져 나오게 하옵소서.
찬양은 상황이 좋아져서 부르는 보너스가 아니라,
왕 되신 주님이 지금 내 삶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영적인 선언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의 입술을 열어 나팔 소리와 호각 소리로 왕이신 주님을 환영하게 하시고,
찬양을 통해 내 삶의 주권이 나에게서 주님께로 옮겨지는 거룩한 주권의 교체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구원이 나를 넘어 온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옵소서.
바다가 외치고 강물이 박수하며 산들이 노래하는
그 우주적인 오케스트라 속에 우리의 작은 삶을 합류시켜 주옵소서.
우리가 겪는 고난과 아픔이라는 불협화음조차 위대한 지휘자이신
주님의 손끝에서 가장 아름다운 찬양으로 조율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구원의 종착지가 아닌 축복의 통로로 불러주셨사오니,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주님의 의와 공평이 선포되게 하시고,
세상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영광을 누리게 하옵소서.
그들의 일터와 가정이 하나님의 대관식 축제 현장이 되게 하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왕의 평강이 그들의 영혼을 지켜주시옵소서.
의와 공평으로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마중 나가는 복된 청년들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며 날마다 새로운 노래를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님은 내 인생의 왕이십니다. 주님이 지휘하시기에 내 삶은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됩니다."
"오늘 내 한숨을 거두시고,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새 입술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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