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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9 : 1~9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용서받은 죄인

by Lily00112233 2026. 4. 16.

시편 99 : 1~9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용서받은 죄인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99:1~3
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2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하나님의 징계와 용서 99:4~9
4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6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7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8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1. 내용 요약 (Summary)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 선포로 시작되는 이 시는, 그룹(Cherubim)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온 땅이 떨며 

그분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 것을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힘만 가진 왕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고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시인은 모세, 아론, 사무엘과 같은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께 간구하여 응답받았던 역사를 상기시키며,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엄격히 징계하시되 회개하는 자를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을 그분의 성산에서 온전히 예배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본분임을 선포합니다.

2. 역사적 구조 (Historical Structure)
① 성전 신학과 그룹 보좌 (1~3절)

"그룹 사이에 좌정하셨다"는 묘사는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 내의 언약궤를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성전 안, 두 그룹 날개 사이에 임재해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예배가 막연한 명상이 아니라, 성전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공간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대면하는 사건이었음을 보여줍니다.

② 중보자들의 역사적 전승 (6~8절)

모세(율법), 아론(제사), 사무엘(기도)을 호출한 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중보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

특히 이들이 간구할 때 응답하셨던 역사적 경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고통 속에 직접 개입하시는 분임을 증명하는 토대가 됩니다.

3. 신학적 구조 (Theological Structure)
① 거룩론(Hagiology): 세 번의 '거룩(Ter-Sanctus)' (3, 5, 9절)
이 시는 3절, 5절, 9절 끝에서 "그는 거룩하시도다"라고 후렴구처럼 반복합니다.

신학적 의미: 하나님의 거룩은 단순히 '깨끗함'을 넘어, 피조물과 완전히 구별되는 

'타자성(Otherness)'과 절대적인 권위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가져야 할 가장 기초적인 마음가짐은 

이 거룩함 앞에 압도되는 거룩한 떨림(Mysterium Tremendum)입니다.

② 공의론(Justice): 정의를 사랑하는 능력 (4절)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신학적 통찰: 하나님의 능력은 폭력이 아니라 '정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야곱(이스라엘)'에게 직접 행하심으로, 

당신의 통치가 실제적인 공정함 위에 세워져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③ 은총론(Grace): 징계와 용서의 역설 (8절)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학적 역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십니다(징계). 

그러나 그 징계의 목적은 파멸이 아니라 회복이며, 진정으로 간구하는 자에게는 용서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죄인을 밀어내는 칼이 아니라, 죄를 태우고 죄인을 품으시는 사랑의 불꽃입니다.

 


청년설교

 

거룩한 떨림, 그리고 용서의 품
시편 99:1~9

 

도입 
: 거룩한 떨림, 그리고 용서의 품


하나님이 너무 '편한' 시대: "우리는 왜 거룩을 불편해하는가?"
요즘 청년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잖아요. 

그냥 편하게 믿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왜 자꾸 불편하게 죄와 거룩을 이야기해야 하죠?”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친구라 부르시고 언제든 찾아가면 안아주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운 분으로는 원하지만, **‘거룩한 분’**으로는 만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경외'의 무게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그 압도적인 거룩함 앞에 자신의 연약함과 죄인 됨이 낱낱이 드러날까 봐 떨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예배가 종종 무미건조하고 뜨겁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압도적인 경험, 즉 ‘경외(Awe)’를 잃어버렸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거룩 앞에서는 내 위선이 드러나고, 나의 적당한 타협이 드러나며, 내 숨겨진 욕망이 발가벗겨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는 드리지만, 진짜 하나님을 마주하기를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발등상 앞으로의 초대
오늘 시편 99편은 우리를 하나님의 ‘발등상(발판)’ 앞으로 초대합니다. 

그곳은 만민이 떨 정도로 장엄하고 두려운 자리입니다.

시인은 세 번에 걸쳐 “그는 거룩하시도다”라고 외치며 우리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으로 이끕니다.
하지만 여러분, 겁먹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나누려는 이야기는 단순히 우리를 겁주려는 무서운 하나님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룩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
놀라운 사실은,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을 밀어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거룩하신 보좌가 곧 모세와 사무엘이 응답을 받았던 자리이며, 

죄인이 정직하게 엎드릴 때 용서의 은혜가 흐르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만 많은 분이 아니라, ‘거룩하신 왕’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를 죄 가운데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거룩 때문에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라,

거룩하기에 우리를 가장 깨끗하고 안전하게 품으시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감격이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본문 


압도적 위엄: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거룩한 왕
: 하나님은 조언자가 아니라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본문 1절은 장엄하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진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상담사나 조언자가 아니라, 온 우주의 '왕'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내가 힘들 때만 찾는 상담사, 문제가 생겼을 때만 부르는 해결사,

혹은 내 소원을 들어주는 보조자 정도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곁가지가 아니라, 내 인생의 주권자이십니다.


거룩은 무너진 인생의 질서를 세우는 힘입니다
2절과 3절은 하나님의 위엄을 찬송하며 그분이 '거룩'하시다고 선포합니다.

신학적으로 '거룩'은 단순히 깨끗함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조물인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절대적인 권위와 신비를 의미합니다.

이 거룩은 우리를 겁주기 위한 무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너진 우리 인생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거룩한 '질서'입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우리 마음이 요동치는 이유는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자리에 성공, 연애, 돈, 인정 같은 가짜 신들을 올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우상들이 흔들리면 우리 인생도 함께 흔들립니다. 하지만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내 인생을 통제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청년 여러분, 솔직해져 봅시다. 여러분이 가장 힘든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로가 막혀서입니까, 아니면 관계가 꼬여서입니까?

 사실 더 깊은 이유는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꺾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출발은 나의 통제권을 왕이신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내 감정보다 크신 분,
내 계획보다 높으신 분,
내 두려움보다 더 강하신 분.

내가 내 삶의 주인인 것처럼 살다가 세상이 조금만 흔들려도 같이 무너지는 이유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위대한 왕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파도보다 그 파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더 크심을 믿으십시오. 

그분의 크고 두려운 이름 앞에 먼저 엎드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견고한 평안이 여러분의 삶을 붙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정의로운 능력: 공의를 세우시는 왕
: 하나님의 능력은 정의로 증명됩니다


본문 4절은 왕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세상의 힘은 보통 누군가를 누르는 힘, 경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힘, 더 많이 가지는 소유의 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자를 살리고,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단순히 '아시는' 분이 아니라, 공의를 사랑하시고 우리 삶의 현장(야곱)에 직접 행하시는 분입니다.

거룩은 차가움이 아니라 뜨거운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차가운 결벽증이 아닙니다. 

오히려 뒤틀린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는 뜨거운 정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작은 불의도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숨은 거짓
내 이익을 위해 타협했던 양심
관계 속에서 남몰래 입힌 상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거룩하신 왕 앞에서 우리는 숨길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 삶을 가장 공정하게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감정이 아니라 '삶의 질서'입니다
5절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여기서 '발등상(Footstool)'은 왕 앞에 완전히 엎드리는 겸손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단지 좋은 찬양, 은혜로운 분위기, 감동적인 눈물로 끝나는 감상 활동이 아닙니다. 

예배는 내 삶의 왕좌에서 내가 내려오겠다는 강력한 주권의 선언입니다. 

진짜 예배는 축도가 끝나고 예배당 문을 나서는 월요일부터 시작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는 삶
남을 깎아내려 내가 올라가려는 유혹을 거절하는 것
억울한 상황에서도 공의의 하나님께 재판을 맡기는 인내

이것이 바로 거룩한 왕의 발등상 앞에 엎드리는 진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세상 권력은 힘이 정의가 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가 곧 힘이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셨나요? 불공평한 세상 때문에 화가 나시나요?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는 거룩한 왕께 여러분의 사정을 맡기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의 가장 든든한 변호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응답과 용서: 징계를 넘어 흐르는 은혜
: 하나님은 완벽한 자가 아닌,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


본문 6절은 이스라엘 역사의 거인들인 모세, 아론, 사무엘을 호출합니다. 왜 이들일까요? 

그들이 완벽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모세는 혈기로 사람을 죽였고,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드는 데 동참했으며, 

사무엘 역시 자녀 교육에 한계를 보였던 연약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부르짖을 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완벽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그들의 '간구' 때문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청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가 있습니다. 

“내가 좀 더 거룩해지면 기도해야지, 삶이 좀 정리되면 하나님께 나아가야지.” 

여러분, 하나님은 정리된 사람을 쇼윈도에서 고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채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오는 자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징계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8절은 복음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죄는 우리를 죽이는 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프게 징계하시고 우리가 행한 대로 보응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죽이려는 '심판의 칼'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려는 의사의 '사랑의 메스'입니다.

아프지만 살리기 위해 도려내시는 것입니다. 징계는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ㅡ태양과 눈동자

우리가 태양을 직접 눈으로 보면 눈이 멀게 됩니다. 태양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태양이 너무나 밝고 뜨겁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도 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태양이 있기에 지구에 생명이 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함은 우리를 죽이려는 칼이 아니라 
우리 삶의 어둠을 몰아내고 생명을 살리는 빛입니다. 
징계는 마치 우리가 태양을 똑바로 보려 할 때
"안 돼, 눈을 감거나 보호 장구를 써야 해라고 가로막아 주시는 주님의 보호의 손길입니다.

 


ㅡ수술실의 빛
어떤 사람이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수술실 조명은 너무나 밝아서 몸의 모든 환부와 치부를 낱낱이 드러냅니다. 
환자는 그 빛이 부끄럽고 숨고 싶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의사는 말합니다. 
“이 빛은 당신을 수치스럽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당신을 살리기 위해 비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빛은 우리를 정죄하고 망가뜨리려는 빛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내 안에 숨어 나를 죽이고 있는 암 덩어리 같은 죄를 드러내고 치유하기 위한 빛입니다. 
그래서 거룩 앞에 서는 사람은 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로소 진짜로 살아나는 사람입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청년 여러분,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졌을 때, 징계의 매를 맞을 때조차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보다 크신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빛 아래서 여러분의 상처와 죄를 정직하게 내어놓으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고치시고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결론 및 결단


거룩은 우리를 새롭게 하는 사랑의 불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시편 99편은 세 번에 걸쳐 반복하며 우리 영혼에 못을 박습니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이 거룩은 우리를 거부하고 밀어내는 차가운 결벽증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태우고 우리를 새롭게 빚으시는 뜨거운 사랑의 불꽃입니다. 

하나님은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거룩한 왕이시며, 정의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징계하시더라도 반드시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숨지 말고 하나님의 발등상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내려야 할 결단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만만한 친구'로 여기던 가벼운 태도를 버립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숨지 말고 나오십시오.

죄가 있어도 나오십시오.
무너졌어도 나오십시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도 나오십시오.
거룩하신 하나님은 정직하게 죄를 고백하며 

엎드리는 죄인을 세상 그 누구보다 깊이 품으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그분의 ‘발등상(발판)’ 앞에 엎드려 용서의 감격을 회복합시다.

거룩한 예배자로 일어서라
거룩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떨 줄 아는 사람만이, 

이 험한 세상의 풍파 앞에서 떨지 않는 강한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자는 사람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거룩한 빛 아래서 진정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거룩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떨 줄 아는 사람만이, 그분의 품 안에서 가장 안전한 평안을 누립니다.


묵상질문


01. 설교를 듣기 전과 후,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거룩'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02. 이번 한 주, 내가 하나님을 '만만한 친구'가 아닌 '거룩하신 왕'으로 대우하며 살기 위해 실천할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입니까?
03. 내가 겪고 있는 억울한 상황을 '정의를 사랑하시는 왕'께 맡길 때, 내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나요?
04. 현재 내 삶에 '징계'처럼 느껴지는 어려움이 있나요?

그것이 나를 죽이려는 칼이 아니라 살리려는 의사의 메스임을 고백할 수 있습니까?
05.  "행한 대로 갚으셨으나 용서하셨다"는 8절의 말씀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에게 어떤 소망을 주나요?


 

거룩한 떨림 속에서 만나는 용서의 품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어 온 땅을 흔드시는 위대하고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오늘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발등상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을 그저 내 소원을 들어주는 조언자나 필요할 때만 부르는 해결사로 가볍게 여겼던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압도적인 위엄 앞에 서기보다, 내 인생을 내가 통제하려는 교만함에 빠져 세상의 작은 흔들림에도 같이 요동치며 불안해했던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 영혼에 ‘거룩한 떨림’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님의 크고 두려운 이름 앞에 정직하게 서게 하시고, 그 거룩한 빛 앞에서 나의 위선과 타협, 

숨겨둔 욕망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불편함을 피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 불편함은 우리를 망가뜨리려는 정죄가 아니라, 

우리 안에 숨어 나를 죽이고 있는 죄의 암 덩어리를 도려내시려는 주님의 사랑의 메스임을 믿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떨 줄 아는 자가 되어, 

더 이상 세상의 풍파 앞에 떨지 않는 견고한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는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세상 권력은 힘이 정의가 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가 곧 힘이 됨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눈물 흘리는 청년들의 마음을 만져 주시고, 

정의를 사랑하시는 왕께서 그들의 삶을 가장 공정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직접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공의를 행하시는 거룩한 왕께 우리의 모든 사정을 맡겨드리는 영적 여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징계를 넘어 흐르는 주님의 지독한 용서를 보게 하옵소서.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이 부르짖을 때 응답하셨던 것처럼, 

오늘 무너진 채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간구하는 자를 기꺼이 품으시는 용서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주님을 피하지 않게 하시고, 

징계의 매를 맞을 때조차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하며 

다시 성산으로 달려가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들의 일터와 가정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성소가 되게 하시고,

수술실의 밝은 빛처럼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새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주님의 임재를 날마다 경험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품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안전한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영원한 용서의 품으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거룩은 나를 죽이려는 칼이 아니라, 나를 살리려는 빛입니다."
"나는 이제 숨지 않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