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 : 1~15
거저 받아 거저 나누는 제자의 사명
열두 제자를 부르심 10:1~4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열두 제자를 파송하심 10:5~15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 내용 요약
예수님은 기진한 무리를 향한 긍휼의 마음을 품으시고, 이제 제자들을 직접 현장으로 파송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권능(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위임하시며,
먼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고 명하십니다.
파송된 제자들이 견지해야 할 핵심 태도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무소유의 신뢰와,
복음을 영접하는 자에게 평안을 빌고 거절하는 자 앞에서는 단호히 먼지를 터는 영적 권위입니다.
2. 역사적 구조
열두 사도 (10:2): '제자(마테테스, 배우는 자)'에서 '사도(아포스톨로스, 보냄을 받은 자)'로 명칭이 바뀝니다.
이는 훈련의 단계에서 파송의 단계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12라는 숫자는 새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10:6): 이방인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구속사적 우선순위입니다.
먼지를 떨어 버리라 (10:14):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 땅에 갔다가 거룩한 땅으로 돌아올 때 행하던 관습입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을 이방인처럼 여기며, 그 불신앙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3. 신학적 구조
① 권능의 신학: "권능을 주시니라" (10:1)
신학: 사명은 내 능력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일을 시키시기 전에 반드시 그 일을 감당할 '권능(엑수시아)'을 먼저 주십니다.
사역자의 권위는 자신의 스펙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권세'에서 나옵니다.
② 은혜의 신학: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10:8)
신학: 제자도의 핵심 원리는 '무상성'입니다. 내가 가진 생명과 능력은 내 노력이 아닌 주님의 선물임을 기억할 때,
우리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정한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거저 주는 것'은 내가 '거저 받은 자'임을 증명하는 삶입니다.
③ 신뢰의 신학: "전대에 금이나 은을 가지지 말고" (10:9~10)
신학: 전대(돈)와 배낭(준비물)을 금하신 것은 사역자가 의지해야 할 분이 오직 '공급자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선교적 삶이란 내 준비된 자원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주님의 채우심을 경험하는 신뢰의 여정입니다.
제자의 삶은 '배우는 것'에 멈춰 있지 않고 '보내심을 받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파송하실 때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십니다.
이미 권능을 주셨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할 계획을 세워두셨습니다.
"준비가 덜 되어서 못 가요"라고 핑계 대기보다,
"거저 주신 은혜가 커서 갑니다"라고 고백하며 여러분의 가정과 캠퍼스라는 선교지로 당당히 걸어가길 바랍니다.
청년설교
보냄받은 자의 당당함: 빈손의 권능
: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제자의 여정
(마태복음 10:1~15)

사명은 준비된 사람이 시작하는 게 아니라,
보냄받았음을 믿는 사람이 출발한다.
— “우리는 언제 출발할 수 있는가?”
청년들의 지연된 순종, "아직은 때가 아니다"
우리는 '준비의 언어'가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토익 점수가 준비되어야 취업 문을 두드리고,
초기 자본이 넉넉히 준비되어야 창업을 꿈꿉니다.
이런 습관은 신앙생활에도 고스란히 투영됩니다.
"목사님, 제가 조금 더 성장하면요",
"제 형편이 좀 더 나아지면요",
"신앙의 자격이 준비되면 그때 사역할게요."
청년들은 늘 '완벽한 조건'이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순종을 지연시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가장 합리적인 핑계가 되곤 합니다.
부르신 사람을 준비시키신다, 선교 현장을 지키며 깨달은 지독한 진실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을 현장에서 준비시키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이제 막 훈련을 시작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들의 가방을 든든하게 채워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전대에 금이나 은을 가지지 말고,
옷도 신발도 추가로 챙기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철저한 빈손'을 출발의 조건으로 요구하고 계십니다.
비움이 곧 믿음이다 주님이 제자들의 전대를 비우신 이유는 명확합니다.
내 주머니에 금과 은이 가득하면,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권능보다 내 주머니의 자원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내 실력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권세'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빈손으로 보내시지만,
그 빈손에 세상을 이길 '권능'을 패키지로 묶어 주셨습니다.
“지금 내가 그토록 붙잡고 있는 그 ‘준비’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까,
아니면 실패할까 봐 떠는 두려움입니까?”
내 주머니의 자원을 신뢰하고 있다면 당신은 영원히 출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의 권능을 신뢰한다면,
당신은 바로 지금 빈손으로도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내 전대를 비우고 주님의 사명으로 가슴을 채우는 결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 배우는 자에서 보냄받은 자로 (10:1~4)
: 위임된 권세, 내 능력이 아닌 그분의 권위
주님은 먼저 '권능(엑수시아)'*을 주신 뒤, 그들을 부르시는 호칭을
'제자(마테테스, 배우는 자)'에서 '사도(아포스톨로스, 보냄받은 자)'로 바꾸십니다. 이 순서가 핵심입니다.
주님은 아무 대책 없이 등 떠밀어 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명을 주시기 전에 이미 그것을 감당할 정체성과 위임된 권세를 패키지로 묶어 주셨습니다.
'사도'는 단순히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는 '대사(Ambassador)'를 뜻합니다.
대사의 권위는 그 사람의 인격이나 말솜씨, 화려한 스펙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대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손짓에 권위가 실리는 이유는 그 뒤에 그를 보낸 '국가'가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 현장에서 끝까지 버티는 사람은 내 실력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나를 보냈는가"라는 위임의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경찰의 수신호
— 내 실력이 아닌 ‘위임된 권세’의 힘
복잡하게 엉킨 8차선 도로 한복판을 상상해 보십시오.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수십 톤의 대형 덤프트럭과 거대한 버스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서슬 퍼런 질주를 단번에 멈춰 세우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갓 임용된 듯한 가냘픈 체구의 순경 한 사람입니다.
그 순경이 도로 한가운데 서서 손바닥을 번쩍 들면,
집채만 한 트럭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멈춰 섭니다.
그 거대한 트럭 기사가 그 순경의 개인적인 실력이 무서워서 멈추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순경의 근육과 완력이 달려오는 트럭의 물리적인 에너지를 압도할 만큼 강력해서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 순경 개인의 힘만 놓고 본다면 트럭의 바퀴 하나도 당해낼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입고 있는 제복, 그리고 그가 뻗은 그 손길 뒤에는
‘국가의 공권력’이라는 어마어마한 권위가 버티고 있습니다.
순경은 자신의 힘으로 트럭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위임된 권세’를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트럭이 순종하는 것은 순경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그를 보낸 ‘국가’입니다.
우리 제자들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세상이라는 도로는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거대하고 위협적입니다.
스펙, 배경, 자본이라는 거대한 트럭들이 우리를 집어삼킬 듯이 달려옵니다.
그때 우리는 자꾸 내 몸집을 불리려 애를 씁니다.
"내가 더 힘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더 준비되어야 세상을 멈출 수 있는데"라며 자격지심에 빠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의 권세를 입고 가는 사도다."
여러분의 담대함은 "내가 얼마나 준비되었느냐"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파송하신 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이시라는 위임의 확신에서 나옵니다.
세상이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둠의 세력이 떠나가는 이유는 여러분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뻗은 그 믿음의 손길 뒤에,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깨를 펴십시오. 당신은 이름 없는 한 개인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파송한 천국 대사입니다.
우리 제자들의 담대함도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트럭 앞에 서면 우리는 한없이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누구냐"가 아니라 "누가 나를 보냈느냐"에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캠퍼스에서, 직장에서 복음을 들고 손을 드는 순간,
여러분의 등 뒤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십니다.
제자의 담대함은 내 스펙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그분의 이름에서 나옵니다.
거저 받은 은혜는 흘려보내라고 있다 (10:5~8)
: 은혜는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사역의 대원칙을 선포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제자들이 행할 치유와 회복의 권능은 그들이 노력해서 얻은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이 대가 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제자도의 핵심 동기는 '보상'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내가 받은 생명과 용서가 완전한 선물임을 아는 사람만이 세상에 나아가 당당하게 베풀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은혜를 내 공로로 여기거나 소유하려 드는 순간,
제자의 삶은 계산적으로 변하고 사역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집니다.
'거저 주는 삶'은 단순히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주님께 얼마나 큰 것을 받았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신앙 고백입니다.
내가 움켜쥐지 않고 흘려보낼 때,
비로소 나는 그 은혜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게 됩니다.

저수지와 통로
— 은혜는 소유할 때 썩고, 유통할 때 살아납니다
물을 관리하는 두 가지 판이하게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저수지'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통로'의 방식입니다.
저수지는 어떻게든 물을 많이 모으고 가두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가뭄을 대비한다는 명목하에 둑을 높이 쌓고 들어온 물이 나가지 못하도록 꽉 움켜쥡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두어진 물은 어떻게 됩니까?
흐르지 않는 물은 결국 산소를 잃고,
바닥부터 이끼가 끼며 서서히 썩어 들어갑니다.
겉으로는 가득 차 보일지 모르나,
그 안에는 생명이 살 수 없는 악취 나는 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저수지가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받은 은혜인데",
"내가 얼마나 힘들게 얻은 축복인데"라며 그것을 내 창고에 쌓아두는 데만 급급합니다.
은혜를 '소유'하려고 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그 은혜는 감사가 아니라 기득권이 되고,
기쁨은 사라진 채 "남들보다 내가 더 많이 가졌다"는 영적 교만만 남게 됩니다.
결국 고인 은혜는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반면 통로는 물을 가두지 않습니다. 통로의 목적은 들어온 물을
그대로 통과시켜 필요한 곳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통로는 자기가 물을 만들어내지도 않고, 물을 소유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위에서 내려오는 물을 아래로 정직하게 흘려보낼 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통로를 지나는 물은 늘 맑고 신선합니다.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 흐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통로가 지나는 곳마다 마른 땅이 적셔지고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제자는 은혜의 저수지가 아니라 거룩한 통로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권능과 복을 주신 이유는 우리만 잘 먹고 잘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라는 통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 끝까지 흘러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거저 받았음을 기억하고 기꺼이 거저 흘려보낼 때,
하늘의 신선한 은혜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를 채우며 흐르게 됩니다.
통로는 자기가 물을 움켜쥐지 않기에 결코 썩지 않습니다.
오히려 흘려보내면 보낼수록 더 맑은 물이 계속해서 공급되는 신비로운 축복을 누립니다.
"내 전대가 비어 있어서 줄 것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통로는 자기가 물을 만드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흘려보내기로 결단하고 입을 열 때,
공급자이신 하나님께서 가장 신선한 은혜의 생수를 우리를 통해 쏟아부어 주실 것입니다.
제자는 은혜의 저수지가 아니라 은혜의 통로입니다.
"내가 어떻게 받은 은혜인데...",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얻은 자격인데..."라며 은혜를 움켜쥐는 순간,
그 은혜는 우리 안에서 독이 됩니다. 하지만 내가 거저 받았음을 기억하고 기꺼이 거저 흘려보낼 때,
하늘의 신선한 은혜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라는 통로를 타고 세상을 향해 흘러가게 됩니다.
통로는 자기가 물을 만들지 않지만, 가장 먼저 신선한 물을 경험하는 축복을 누립니다.
신뢰 — 왜 빈손으로 가게 하시는가 (10:9~15)
: 사명과 자존감을 분리하는 훈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돈도, 배낭도, 여벌 옷과 신발도 챙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아무 준비도 하지 말라는 무책임한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말라는 강력한 훈련입니다.
내 전대가 두둑하고 내 배낭이 가득 차 있으면,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기보다 내 주머니를 먼저 뒤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현장에서 뜻밖의 환대도 경험하고, 지독한 거절도 경험하길 원하셨습니다.
특히 거절당할 때 '먼지를 털어버리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상대방을 저주하라는 뜻이 아니라, 나의 사명과 자존감을 분리하라는 명령입니다.
복음이 거절당한 것이지 '나'라는 존재가 거절당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사역의 결과에 내 정체성을 걸면, 우리는 환대받을 때 교만해지고 거절당할 때 처참히 무너집니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온몸으로 배우길 원하셨습니다.

무전여행의 교훈
— 비워진 자리에 임하는 채우심
모든 일정을 5성급 호텔로 예약하고 완벽한 식단과 교통편을 준비해 둔 여행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여행은 쾌적할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지불한 돈으로 얻은 서비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 준비 없이 주님의 부르심만 믿고 떠난 길에서 만난 낯선 이의 따뜻한 밥 한 끼,
우연히 얻어 탄 차 한 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예비된 숙소를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압니다.
"아, 정말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는구나!"
주님이 우리 전대를 비우시는 이유는 우리를 고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채우시는 장면을 우리 인생의 목격자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내 전대가 비워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손길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대를 비우고 사명을 채우라
당신의 파송지는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그곳입니다
우리는 자꾸 ‘파송’이라고 하면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나는 것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오늘 여러분을 보내시는 파송지는
여러분의 캠퍼스, 숨 막히는 직장,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정입니다.
“돈이 없어서, 능력이 부족해서, 아직 신앙이 어리니까 더 준비해야 해서...”
이런 말들은 사도에게 어울리지 않는 변명입니다. 조건을 따지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사도가 아니라 제삼자인 ‘관찰자’가 되고 맙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사도로 부르시며 세상을 이길 권능을 이미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들고 발걸음을 떼는 그 순간,
하나님은 그곳에 합당한 사람을 예비해 두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책임지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사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준비가 아니라, 더 분명한 믿음입니다.
철저한 빈손이기에 누리는 당당한 권세 하나님은 완벽하게 세팅된 사람보다,
빈손으로 주님의 명령 하나 믿고 떠난 사람을 통해 가장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전대를 비우고 주님의 사명을 채웁시다.
“주님, ‘준비가 덜 되었다’는 비겁한 핑계 뒤에 숨어 순종을 미루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받은 은혜가 거저 받은 선물임을 기억하며, 오늘 내 삶의 자리로 빈손으로 당당히 나아갑니다.
내 주머니의 금과 은이 아니라 주님이 위임해 주신 권능을 사용하게 하소서.
세상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가 밟는 땅마다 주님의 평안을 흘려보내는 천국 대사로 살게 하옵소서.
내 빈 전대를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들로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믿음은 첫 발을 떼는 용기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 하나 믿고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안전한 항구에 머물러 있으면 풍랑은 피하겠지만, 바다 위를 걸으시는 주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빈손으로 나가는 제자의 발걸음에 하나님은 가장 풍성한 하늘의 자원을 쏟아부어 주실 것입니다.
묵상질문
1. "준비가 덜 되어서 못 하겠다"며 미루고 있는 순종의 영역은 무엇인가요?
2. 나는 교회 안에서 '배우는 학생'입니까, 세상으로 '보냄받은 대사'입니까?
3. 내 스펙이 아닌 '예수 이름의 권세'를 믿고 세상 앞에 당당해 본 적이 있나요?
4. 나는 은혜를 가두는 '저수지'인가요, 아니면 거저 받은 것을 흘려보내는 '통로'인가요?
5.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고 주님이 요즘 내 인생에서 '비우고 계신 전대'는 무엇인가요?
6. 복음을 전하다 거절당할 때, 내 자존감을 지키며 '먼지를 털어버릴' 믿음이 있나요?

철저한 빈손으로, 당당한 권세를 입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우리를 세상 끝날까지 홀로 두지 않으시는 파송의 주님,
오늘도 세상이라는 거친 풍랑 속에서 '준비'라는 이름의 핑계 뒤에
숨어 있던 우리를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자꾸만 내 주머니의 전대를 확인하며 "금도 없고 은도 없으니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라고 뒷걸음질 쳤습니다.
자격이 갖춰져야 시작할 수 있고,
능력이 쌓여야 보냄받을 수 있다는 세상의 공식에 갇혀,
주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하늘의 권능'을 잊고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오늘 이 시간 우리를 '제자'에서 '사도'로 새롭게 명명하여 주시옵소서.
단순히 배우는 자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대사로서 세상을 향해 담대히 발걸음을 떼는 보냄받은 자가 되게 하옵소서.
경찰의 수신호가 그 자신의 완력이 아니라 국가의 권위에서 나오듯,
우리의 당당함이 내 스펙이나 배경이 아닌 나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거대한 트럭들이 우리를 집어삼키려 달려올 때,
주님이 입혀주신 사도의 제복을 기억하며 당당히 손을 들게 하옵소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신 주님,
우리의 영혼이 은혜를 가두고 썩게 만드는 저수지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내가 받은 생명과 용서가 완전한 선물임을 기억하며,
주님이 우리를 통과하여 일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거룩한 통로로 내어드리게 하옵소서.
움켜쥐면 내 것 같으나 결국 썩어질 것들에 연연하지 않게 하시고,
거저 흘려보낼 때마다 하늘 창고에서 쏟아지는 신선한 은혜를 매 순간 경험하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이 우리의 전대를 비우실 때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배낭도, 여벌 옷도 가지지 말라 하신 것은 우리를 굶기기 위함이 아니라,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을 인생의 목격자로 세우기 위함임을 믿습니다.
내 자원이 끊어진 그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시고,
뜻밖의 환대를 통해 주님의 살아계심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냉담한 거절 앞에서도 우리의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며 사명의 길을 묵묵히 걷는 영적 실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한 주, 우리가 밟는 캠퍼스와 직장과 가정이 주님의 통치가 임하는 천국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평안이 합당한 자에게 머물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기쁜 소식이 삶의 향기로 증명되게 하옵소서.
빈손으로 떠나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로 돌아오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부르시고, 입히시고, 마침내 승리케 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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