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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6장 1절 - 10절 말씀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지파

by Lily00112233 2025. 12. 10.

 

 

여호수아 16 : 1~10 말씀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지파

요셉 자손의 경계 16:1~4
1 요셉 자손들이 제비 뽑아 얻은 땅은 여리고의 요단에서 시작해 동쪽의 여리고 

샘물에 이르고 여리고에서 벧엘 산지로 올라가는 광야를 거쳐

2 벧엘에서 루스로 가서 아렉 사람들의 영토인 아다롯을 지나서
3 서쪽으로 야블렛 사람들의 영토까지 내려가 아래쪽 영토인

벧호론까지 이르고 다시 게셀까지 가서 바다에서 끝납니다.
4 요셉의 자손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그들의 유산을 받았습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 16:5~10
5 에브라임 자손들이 그 가문에 따라 받은 영토는 이러합니다.

그 유산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벧호론 윗지방까지입니다.
6 그 경계는 바다 쪽으로 나가 북쪽의 믹므다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다아낫 실로를 돌아 그곳을 넘어 동쪽으로 야노아를 지납니다.
7 그다음 야노아에서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 여리고에 이르고 요단 강에서 끝납니다.
8 그 경계는 답부아에서 서쪽으로 가서 가나 시내에 이르고 바다에서 끝납니다. 이것은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 가문에 따라 받은 유산입니다.
9 그리고 에브라임 자손을 위해 따로 구별해 놓은 모든 성과 그 주변 마을은 므낫세 자손들의 가운데 있습니다.
10 그러나 그들이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으므로 오늘날까지도 가나안 사람들이 에브라임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노예가 돼 힘든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6:1-10, 말씀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지파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요셉 자손(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 제비를 뽑아 기업을 받는 내용과, 그들이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실패를 기록합니다. 특히, 이 실패는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결과였습니다.

1. 요셉 자손의 기업과 경계 (16:1-4)
포괄적 기업: 요셉 자손들(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요단 서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중앙 산악 지대를 제비 뽑아 얻었습니다.
경계: 그들의 땅은 여리고의 요단 강에서 시작하여 벧엘 산지, 아다롯, 아래쪽 벧호론, 게셀을 거쳐 서쪽 바다(지중해)에서 끝나는 광대한 지역이었습니다.

2.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와 실패 (16:5-10)
에브라임의 경계: 요셉 자손의 땅 내에서 에브라임 지파가 가문별로 받은 구체적인 경계가 제시되며, 이스라엘의 중앙부 핵심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실패와 결과 (10절): 에브라임 자손은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공존: 그 결과, 가나안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에브라임 사람들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실리: 다만, 에브라임은 그들을 노예로 삼아 힘든 일을 감당하게 하는 선에서 만족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 진멸 명령 대신 노동력 확보라는 경제적 실리를 선택한 불완전한 순종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6:1-10: 말씀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지파 (역사적 배경 및 신학적 의미)
주어진 본문(여호수아 16:1-10)은 **요셉 자손(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제비뽑아 받은 땅의 경계를 설명하며, 이들이 영적인 장자권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복의 사명을 완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실리에 타협했음을 보여줍니다.

역사적 배경 및 구조


1. 요셉 자손의 기업 (16:1-4)

 

두 배의 기업: 야곱의 축복에 따라 요셉의 아들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각각 독립된 지파를 형성하여 두 지파의 몫을 받았습니다. 이는 유다 지파 다음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넓고 비옥한 가나안 중부의 중심부를 차지했음을 의미합니다.

 

지리적 중요성: 이들의 경계는 요단 동쪽 여리고에서 시작해 서쪽 지중해(바다)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땅은 가나안의 주요 간선도로와 비옥한 산악 지대를 포함하고 있어 전략적,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2.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 (16:5-9)

 

중심지: 에브라임은 요셉 자손 중에서도 야곱에게서 장자권의 축복을 상징적으로 받은 지파였으며,

이후 북이스라엘 왕국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경계의 복잡성: 에브라임의 경계는 므낫세 땅의 일부 성읍(9절)을 포함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받은 땅이 상당히 비옥하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었음을 시사합니다.

 

주요 거점: 벧엘, 루스, 벧호론, 게셀 등 고대 가나안의 중요한 성읍들이 이 경계 안에 있었습니다.

3. 정복의 실패 (16:10)

 

타협의 결과: 에브라임 지파는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게셀은 요셉 자손 기업의 서쪽 경계에 있는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실리 추구: 그 결과는 "가나안 사람들이 에브라임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노예가 돼 힘든 일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하나님의 명령(진멸)을 따르는 대신, 가나안 족속을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경제적 이득(실리)을 선택했습니다.

영구적인 문제: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유다 지파처럼(15:63), 이 실패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문제로 기록되었습니다.

신학적 의미


1. 장자권의 책임 방기
특권과 의무: 에브라임은 야곱의 축복을 받은 영적 장자 지파로서, 유다 지파와 함께 가나안 정복의 가장 모범적인 지도력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세속적 유혹: 그러나 에브라임은 말씀(진멸 명령)보다 당장의 실리(노예 노동력)를 앞세워 불완전한 순종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세상의 유익과 하나님의 명령 사이에서 타협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을 보여줍니다.

타협의 결과: 노예로 남겨진 가나안 족속은 이후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데 기여하는 영적 타락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2. 진멸 명령의 중요성
부분적 정복의 위험성: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절시키라는 명령은 그들의 사악한 문화와 우상 숭배가 이스라엘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영적 정화의 조치였습니다.

영적 게으름: 게셀 정복의 실패는 에브라임 지파가 영적인 싸움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쉬운 길을 선택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성도가 죄와 악에 대해 철저히 대항하지 않고 부분적인 타협을 할 때, 그 잔재가 결국 자신을 노예로 만들게 됨을 경고합니다.

3. 언약과 땅의 관계
유산과 소유: 땅은 하나님이 주신 유산이었지만, 그 땅을 완전히 소유하고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불완전한 정복은 불완전한 안식을 초래합니다.


청년설교

말씀보다 자신들의 실리를 앞세운 지파

요셉 자손의 기업과 에브라임의 실패

16장은 요셉 자손(므낫세·에브라임)이 기업을 받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장 비옥하고 전략적인 중부 산지를 받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결론은 마지막 한 구절(16:10)
“게셀의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으므로 오늘날까지도 그들이 에브라임 가운데 살아서 노역을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지 않고, 실리를 선택한 지파.
그리고 그 선택은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요셉 자손의 축복 – 넓고 비옥한 기업 (1-4절)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야곱의 축복에 따라 두 지파의 몫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땅은:

여리고에서 시작하여
벧엘 산지를 지나
서쪽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가나안의 중심축 전체입니다.

즉,
특권의 땅, 영향력의 땅, 큰 꿈을 꾸어야 할 땅을 주신 것입니다.

에브라임의 경계와 역할 (5-9절)

에브라임은 단순히 큰 땅을 받은 것뿐 아니라,
이후 북이스라엘의 영적/정치적 중심지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큰 축복”과 함께 “큰 책임”이 따라온다는 사실입니다.

결정적 실패 – 실리를 선택한 지파 (10절)

문제의 본질은 한 구절에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함:
진멸시키는 것보다
노예로 두는 것이 더 이익이었기 때문

즉,
말씀보다 실리를 선택했다.
하나님의 명령보다 계산을 앞세웠다.
하나님보다 경제적 이득을 믿었다.

이것은 ‘불완전한 순종’이 아니라 ‘타협’입니다.

겉으로는 순종처럼 보이지만
속은 완전히 달라요.

영적 원리 – 남겨둔 죄는 반드시 나를 지배한다

에브라임이 “노예로 부리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그 가나안 사람들…
후에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우상 숭배와 타락의 씨앗이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남겨둔 죄는 반드시 다시 올라온다.”
“타협은 결국 지배가 된다.”

우리는 죄와 싸울 때 자주 이렇게 말해요: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건 죄까지는 아니야.”
“나중에 정리하지 뭐.”
그러나 성경은 아주 정확하게 말합니다:
“쫓아내지 않은 것은 반드시 너를 넘어뜨린다.”



축복을 받는 것과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은 다르다

성경은 요셉 자손에게 놀라운 축복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가나안의 중심, 가장 비옥하고 전략적인 땅을 차지하게 되었죠.

그런데…
큰 축복을 받았다고 해서 그 축복을 다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땅을 받았지만,
그 땅을 ‘말씀대로’ 정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쫓아내라”고 하신 가나안 족속을
실리(노동력) 때문에 남겨두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축복을 받았지만,
그 축복을 실제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보다 실리를 따라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며 설교를 시작합니다:

“나는 지금 말씀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계산과 실리를 따르고 있는가?”

요셉 자손의 기업 — 큰 축복, 큰 책임 (1–4절)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야곱의 축복에 따라 두 지파의 몫을 받았습니다.

그 땅은:

여리고에서 시작하여
벧엘 산지를 넘어
서쪽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가나안의 중심부 전체였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땅을 주셨다는 것은
특별한 사명과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삶에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재능
기회
관계
배움
환경
복음

그러나 받은 만큼 책임이 생기고, 사명이 주어집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 — 중심에 서도록 부르심 (5–9절)

에브라임은 요셉 자손 가운데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지파였고,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심의 중심에 두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치가 아니라 영적 태도입니다.
중심에 있어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직장에서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에 두셨습니다.

문제는 그 자리에서 순종하고 있는가?입니다.

결정적 실패 — 말씀보다 실리를 택한 선택 (10절)

본문의 핵심은 10절입니다.

“게셀의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쫓아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쫓아내기 싫었다.
왜? 실리를 위해서.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대신
경제적 이득(노동력)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의 생각:
"쫓아내면 나중에 힘들어지잖아"
"그냥 같이 두면 되지"
"이건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야"

그러나 하나님이 보신 것:
"그 타협은 너희를 무너뜨릴 씨앗이 될 것이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의 타락과 멸망의 배경에는
바로 이런 ‘남겨둔 가나안의 잔재’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남겨둔 죄는 반드시 나를 지배한다.
작아 보이는 타협은 반드시 내 믿음을 무너뜨린다.
계산은 결국 하나님보다 커지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나중에 고칠게요.”
“지금은 이게 더 현실적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 네가 그 죄 아래 종이 된다.”

말씀을 선택할 것인가, 실리를 선택할 것인가

요셉 자손은 축복을 받았지만,
그 축복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말씀보다 실리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쫓아내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익이 더 중요하다”라고 선택했습니다.

핵심 메시지는
“말씀과 실리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에브라임의 실패는
우리 인생에도 너무 쉽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라” 하시는데
→ 우리는 계산합니다.

하나님은 “버려라” 하시는데
→ 우리는 “이 정도면 괜찮아요.”

하나님은 “끝까지 쫓아내라” 하시는데
→ 우리는 “나중에요…”



그 결과,
우리 마음 안에 게셀 같은 영역이 남겨지는 거예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결론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1. 나는 지금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있는가?

말씀?
계산?
현실?
이득?

2. 내 삶에 남겨둔 ‘게셀’은 무엇인가?

지워지지 않은 죄 습관
정리하지 않은 관계
내려놓지 않은 중독
방치해둔 마음의 상처
계속 미루는 순종
하나님보다 먼저 계산하는 습관

이런 것들은 ‘작아 보이지만’
결국 영혼의 중심을 흔드는 여부스족, 가나안 족속이 됩니다.

3. 해결 방향 – 기업은 ‘주시는 것’ + ‘정복하는 것’이다

땅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그 땅을 안식의 땅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순종입니다.

말씀에 대한 전적 신뢰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완전히 끊는 용기
오늘 즉시 순종하는 행동
계산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선택

이것이 기업을 누리는 길입니다.

에브라임은 계산했고, 우리는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들은 실리를 잡았고, 우리는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죄를 남겼고, 우리는 오늘 쫓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묻습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말씀을 따르는 사람인가?
실리를 따르는 사람인가?”

“너의 게셀은 무엇이며,
그것을 오늘 쫓아낼 용기가 있는가?”

“말씀을 선택할 때 주시는 풍성함을 믿는가?”

에브라임은 큰 축복을 받았지만
작은 타협으로 인해
그 축복을 완전히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반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말씀 > 실리
순종 > 계산
정결 > 타협
하나님 > 나의 이해

그때 하나님이 주신 기업—
우리의 삶, 미래, 사명—
모두가 진짜 안식의 땅이 됩니다.



묵상질문 
“말씀보다 실리를 앞세우지 않는 신앙인가?”

1. 나는 결정할 때 ‘말씀’을 기준으로 하는가, ‘실리’를 기준으로 하는가?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말씀(진멸 명령)보다
눈앞의 이익(노동력)을 선택했습니다.

● 나는  선택의 순간에 무 엇을 기준으로 움직이는가? 말씀? 감정? 계산? 두려움?
● 최근 내가 내린 결정 중, “말씀보다 실리를 앞세운 선택”은 무엇이 있는가?
● 그 선택이 장기적으로 내 신앙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2. 하나님이 이미 내게 주신 기업(능력·기회·마음)의 ‘가치’를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가?

요셉 자손은 특별한 땅을 받았지만, 그 가치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기회·직업·관계를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 나는 갖고 있는 능력보다 “행동이 부족하다”고 느끼는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 나는 받은 기업을 현실에 눌려 축소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3. 내 안에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게셀)” 같은 영역은 무엇인가?

에브라임은 게셀을 쫓아내기보다
노예로 삼아 실리를 얻었습니다.

● 나는 지금 어떤 죄/습관/두려움/게으름과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둔 채로)
● 그 타협이 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하나님이 “오늘 정리하기 원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

4. 나는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서 중심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

에브라임은 중심 땅에 있었지만 중심 신앙은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이 나를 지금 세워놓으신 자리(직장, 공동체, 관계)에서
나는 어떤 영적 태도로 살고 있는가?
● 중심에 있으면서도 “책임을 피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나에게 어떤 사명을 기대하고 계실까?

5. 나는 ‘편한 공존’을 선택하는가, ‘아픈 순종’을 선택하는가?

게셀을 남겨두는 편이 더 편했습니다.
하지만 그 편함이 결국 그들을 무너뜨렸습니다.

● 나는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말씀의 순종을 미루고 있지 않은가?
(재정 관리, 습관 변화, 삶의 정리, 관계 청산 등)
● 편한 공존이 내 마음을 더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적 있는가?
● 오늘 결단해야 할 “불편한 순종 한 가지”는 무엇인가?

6.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받기만 하고’ 누리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요셉 자손은 땅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그 땅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 나는 삶에서 어떤 영역을 “받았지만 누리지 못하는 상태”로 두고 있는가?
(재정 습관, 시간 관리, 관계, 자기관리, 은사 등)
● 그 기업을 풍성하게 누리기 위해
오늘 실천해야 할 작은 행동 한 가지는 무엇인가?
● 하나님은 내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하길 원하시는가?

 



‘말씀보다 실리를 앞세우지 않게 하소서’

주님, 오늘도 제 마음을 말씀 앞에 세웁니다.
요셉 자손처럼, 더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저도 종종 말씀보다 내 계산과 실리를 먼저 선택했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시고, 제 마음을 다시 바로잡아 주옵소서.

주님이 이미 제 삶에 허락하신
은혜와 기업과 가능성을 바라보면서도
막상 행동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미루고, 타협했던 제 모습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 제가 쫓아내지 못한 게셀 같은 영역들,
게으름, 두려움, 재정의 혼란, 반복되는 습관들,
그 모든 타협의 흔적들을
오늘 주님 앞에서 숨기지 않겠습니다.

“조금만 두자,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마음속에 남겨두었던 작은 불순종도
주님, 오늘 비추어 주시고 끊어내게 하소서.

말씀보다 현실이 더 크게 보일 때,
계산이 말씀보다 먼저 튀어나올 때,
주님, 제 마음을 붙들어 주셔서
말씀을 우선으로 선택하는 순종의 사람 되게 하소서.

주님, 제 삶의 중심—예루살렘 같은 자리—에
말씀 아닌 다른 것이 자리 잡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기업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누리고 가꾸는 사람” 되게 하소서.

오늘 제 삶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한 가지 순종을 보게 하시고,
그 순종을 미루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시작하게 하옵소서.

주님,
말씀이 기준이 되는 하루,
말씀이 방향이 되는 선택,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