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QT

마태복음 7 : 1~12사람을 향한 관용, 주님을 향한 기도

by Lily00112233 2026. 1. 27.

마태복음 7 : 1~12 사람을 향한 관용, 주님을 향한 기도

 


비판하지 말라 7:1~6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7:7~12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 내용 요약
본문은 천국 시민이 갖추어야 할 '타인을 향한 태도'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다룹니다.

예수님은 남을 정죄하기 전 자신의 허물을 먼저 돌아보는 '비판의 자제'를 명령하시며,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끈기 있게 기도할 것을 권면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통해 율법의 완성이 사랑임을 선포하십니다.

2. 역사적 구조
티와 들보: '티'는 작은 나무 파편이나 겨를 의미하며, '들보'는 지붕을 받치는 거대한 대들보를 뜻합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즐겨 쓰던 풍자 섞인 과장법으로, 자신의 거대한 죄는 외면한 채 타인의 사소한 실수를 지적하는 위선을 날카롭게 꼬집은 것입니다.

거룩한 것과 진주: 당시 유대인들에게 진주는 매우 값진 보물이었습니다. 이를 개나 돼지(부정한 짐승의 상징)에게 주는 것은 가치를 모르는 자에게 진리를 낭비하지 말라는 뜻으로, 영적 분별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헬라어 원문은 현재 명령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구하고, 계속해서 찾고, 계속해서 두드리라'는 지속성을 의미합니다.

3. 신학적 구조
① 비판의 부메랑과 들보의 신학 (7:1~5)
신학: 비판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고유한 '재판관의 권위'를 찬탈하는 교만입니다.

내가 남을 헤아리는 그 기준이 결국 나를 심판하는 잣대가 된다는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가르칩니다.

진정한 영성은 형제의 티를 빼주기 전, 내 눈의 들보를 먼저 수술대에 올리는 '자기 성찰'에서 시작됩니다.

② 기도와 하나님의 선하심 (7:7~11)
신학: 기도의 응답은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합니다.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떡'보다 더 나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기도는 인색한 신의 마음을 돌리는 투쟁이 아니라, 선하신 아버지를 신뢰하며 문을 두드리는 자녀의 특권입니다.

③ 관계의 황금률 (7:12)
신학: 12절은 5장부터 시작된 산상수훈의 요약이자 결론입니다.

소극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먼저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세상은 "남보다 앞서라"고 가르치지만, 주님은 "남을 먼저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가 자꾸 거슬린다면 지금 내 눈에 거대한 대들보가 박혀 있다는 신호입니다.

비판의 손가락을 접고, 기도의 손을 모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주님은 우리의 눈에서 들보를 제거하시고 비로소 사랑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좋은 것'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비판의 손가락을 접고, 기도의 손을 모으라

부제: '들보'를 뺀 눈으로 보고,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를 구하라 

마태복음 7:1–12

 

"왜 남의 허물은 고해상도로 보일까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평가와 비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냉소적인 댓글, 직장 동료와의 뒷담화, SNS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품평회까지... 

 

우리는 남의 실수를 기막히게 찾아내어 기록하고 '박제'하는 데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허물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해집니다. 

 

이른바 '내로남불'이 청년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 공동체 안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일은

안타깝게도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서로를 평가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변명합니다. 

"나는 그냥 팩트를 말했을 뿐이에요.", 

"비판이 아니라 진심 어린 조언이었어요."

 

하지만 그 조언 뒤에 관계는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아주 불편한 거울을 들이대십니다. 

 

형제의 눈에 박힌 작은 가시 같은 '티'를 빼겠다고 나서기 전에, 

네 눈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서까래 같은 '들보'부터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 문제를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니라 심각한 '영적 경고'로 다루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비판의 잣대로 세상을 난도질하며 재판관의 자리에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기도의 손으로 하늘의 문을 두드리는 자녀의 자리에 살고 있습니까?



티와 들보의 역설, 그리고 끈질긴 기도

첫째, '티와 들보의 풍자'입니다. 티는 아주 작은 나무 파편이나 겨를 뜻하고,

들보는 지붕 전체를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을 뜻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치명적인 결함은 못 본 체하며

타인의 사소한 실수를 교정하려 드는 인간의 지독한 위선을

당시 유대인들이 즐겨 쓰던 과장법으로 날카롭게 꼬집으신 것입니다.

둘째, '거룩한 것과 진주'의 비유입니다.

이는 무분별한 비판을 금지하는 동시에 가져야 할 '영적 분별력'을 가르칩니다.

값진 진리를 조롱하고 짓밟는 자들에게 그것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으로,

천국 시민은 관용과 분별 사이의 균형을 지켜야 함을 시사합니다.

셋째,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기도의 명령입니다.

헬라어 원문은 현재 명령형으로, '응답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말고 지속적으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인색한 신을 설득하는 노동이 아니라, 선하신 아버지를 신뢰하며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는 '지속적인 소통'입니다. 비판의 에너지를 기도의 에너지로 바꿀 때,

우리는 비로소 내 눈의 들보를 빼고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좋은 것'을 얻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비판할 때, 나 또한 하나님의 심판대 아래 서 있는 죄인'임을 자각하게 해줍니다.


비판의 중독: 들보를 들고 티를 보려는 인간 (7:1~5)


예수님은 우리의 이중성을 고발하기 위해 아주 파격적이고도 역설적인 비유를 드십니다. 

형제의 눈에는 아주 작은 나무 파편인 '티'가 박혀 있고, 

내 눈에는 건물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인 '들보'가 박혀 있다는 설정입니다. 

상식적으로 내 눈에 들보가 박혀 있다면 남의 눈을 볼 여유조차 없을 텐데, 

주님은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고 꼬집으십니다.

우리가 비판에 중독되는 이유는 묘한 '착각' 때문입니다. 남을 비판하는 순간, 

나는 그 사람보다 더 옳고, 더 깨어 있으며, 더 신앙적인 위치에 서 있다는 우월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성경은 비판을 '영적 분별'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비판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인 '재판관의 자리'를 찬탈하는 교만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는 사람은 결국 그 잣대에 갇혀 자기 자신에게도 가장 잔인해지며, 

타인을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잊게 만듭니다.

 

 

ㅡ먼지 낀 안경과 이웃의 얼굴

안경에 시커먼 먼지가 가득 낀 사람이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찹니다.
"저 사람 얼굴은 왜 저렇게 지저분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안색이 어두워?"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의 얼굴이 아니라 본인의 안경에 낀 먼지입니다.
내 마음의 안경(들보)을 닦지 않고는 타인을 절대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비판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커질 때, 그것은 상대가 틀렸다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 바로 내 안경을 닦아야 할 때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신앙의 시작은 남을 고치는 수술대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의 들보를 먼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려놓는 '자기 성찰'에 있습니다.

 


 

분별의 지혜: 사랑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7:6)
비판을 멈추라는 말씀 뒤에 주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뜻밖의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이는 앞서 하신 말씀과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곧 '아무런 분별 없이 모든 것을 방임하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국 시민의 사랑에는 지혜로운 경계가 필요합니다. 

거룩한 진리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오히려 그것을 짓밟고 공격하는 이들에게 

무분별하게 마음을 다 열어 상처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참는 '나이브'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비판 대신 겸손을 택하되, 방임 대신 분별을 택해야 합니다.

 

천국 시민은 타인을 향해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영적으로 무디지도 않은, 성령의 지혜로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내 눈의 들보를 뺀 사람만이 비로소 형제의 티를 아프지 않게 빼줄 수 있는

따뜻하고도 예리한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내가 남을 평가할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져야 할 영적 분별력' 사이의 균형을 가르쳐줍니다.

 

 


 

 

기도의 신뢰: 왜 예수님은 비판 다음에 기도를 말씀하셨나 (7:7~11)


산상수훈의 흐름을 보면 아주 놀라운 지점이 발견됩니다. 

예수님은 타인을 비판하지 말라는 엄중한 명령을 하신 직후, 

갑자기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며 기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왜 비판 이야기 끝에 기도가 나올까요?

우리가 사람을 비판하고 깎아내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충분히 돌보지 않으신다'는 불안 때문입니다.

내 삶이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니 사람에게서 인정을 갈구하게 되고,

남과 비교하며 위안을 얻으려 하거나, 타인을 깎아내려 나를 방어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지점을 꿰뚫어 보십니다.

"사람 보며 날 세우지 말고, 너를 책임지시는 아버지께 나아가라"는 초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세 동사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모두 현재진행형입니다. 

즉,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관계의 지속성'을 의미합니다.

필요한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구하라),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찾으라),

열릴 때까지 끈기 있게 행동하는 것(두드리라)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ㅡ 문 앞의 아이와 아빠의 확신

어린아이가 집 문을 두드릴 때, 한 번 두드리고
대답이 없다고 금방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이는 문이 열릴 때까지 계속해서 두드립니다.

왜일까요? "안에 우리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100%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힘은 내 간구가 얼마나 대단하냐에 있지 않습니다.
문 너머에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았을 때
"역시 하나님이 옳았습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늘 아버지가 주시는 '좋은 것'의 신비입니다.

 

"비판은 내 결핍을 사람에게 채우려는 몸부림이고,

기도는 내 결핍을 하나님께 채우는 거룩한 습관"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비판의 손을 내려놓고 기도의 손을 들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 아주 정직하고도 아픈 질문을 던지십니다. 

"왜 그렇게 사람만 보고 있느냐? 왜 그렇게 남과 비교하며 살고 있느냐? 

왜 네가 재판관이 되어 혼자 판단하고 정죄하느냐?"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날 선 비판의 손가락을 치켜세울 때, 

우리 영혼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재판관의 자리를 찬탈하는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그 위험하고 고독한 자리에서 불러내십니다. 

"그 비판의 자리에 서 있지 말고, 선하신 아버지 앞으로 오너라." 

남을 찌르던 날카로운 손가락을 접고, 하늘 문을 두드리는 기도의 손을 모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눈의 들보를 인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티를 아프지 않게 어루만지는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비판의 손가락을 접고, 기도의 손을 모으십시오
이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도전합니다.

이번 한 주간, 누군가의 단점이 고해상도로 선명하게 보일 때마다

그를 향해 입을 여는 대신 여러분의 마음을 먼저 살피십시오.

"주님, 저 사람의 티를 보게 한 나의 들보는 무엇입니까?"라고 정직하게 질문해 보십시오.

 

그리고 비판의 에너지를 기도의 에너지로 바꾸어 보십시오.

그 사람을 비난하는 대신, 그를 위해 주님의 문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이 삿대질하던 손을 모아 기도의 손을 들 때, 

하늘 아버지는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좋은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비판의 담벼락을 허물고 먼저 대접하는 황금률의 삶을 살기로 결단합시다.

"주님, 이제 재판관의 자리에서 내려오겠습니다.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보게 하소서. 

사람을 향해 삿대질하던 교만한 손을 모아,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 아버지를 향해 끈질기게 

기도의 문을 두드리는 자녀가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7장 1~12절의 핵심은 '시선의 전환'입니다.

타인을 향한 날 선 시선을 '내 안의 들보'로 돌리고,

결핍을 향한 불안한 시선을 '선하신 아버지'께로 고정하는 것입니다

비판의 마음이 사랑의 기도로 바뀌는 은혜를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묵상질문


1. 최근 누군가의 행동이나 성격이 유독 거슬리고 비판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요? 


2.  내가 남에게 엄격하게 들이댔던 잣대가 나중에 그대로 나에게 되돌아와 마음이 어려웠던 적이 있나요?

3.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 에너지를 '기도'로 바꾸어 본 적이 있나요? 

4.  기도하면서 '떡 대신 돌을, 생선 대신 뱀을 주시는 하나님'처럼 느껴져 실망했던 적이 있나요? 

5.  "상대방이 먼저 나에게 잘해주면 나도 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먼저' 행해야 할 대상이 이번 주에 누구인가요? 


 


재판관의 자리를 떠나 아버지의 품으로


은밀한 중심을 보시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나님의 자리인 재판관의 자리에 올라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를 찾아내어 비판하고 정죄하는 교만을 저질렀음을 고백합니다. 

 

내 눈 속에 박힌 거대한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날 선 시선으로 타인을 난도질하며 살았던 우리의 위선과 무례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우리 손에 쥐어진 비판의 칼을 내려놓고 

하늘 문을 두드리는 기도의 손을 모으기 원합니다. 

누군가의 허물이 보일 때마다 입을 열어 정죄하기보다, 

마음을 열어 그를 위해 간구하는 중보자가 되게 하옵소서. 

 

타인을 향한 날카로운 손가락을 접고, 

오직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손을 들게 하옵소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말씀하신 주님! 

기도가 인색한 하나님을 설득하는 힘겨운 노동이 아니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아버지께 드리는 자녀의 행복한 의탁임을 믿습니다. 

 

설령 우리가 돌을 구한다 할지라도 

가장 영양가 있는 떡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응답의 유무보다 아버지가 문 뒤에 계시다는 

사실에 더 안심하는 청년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 받은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관용을 이제 세상으로 흘려보냅니다. 

대접받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삶을 버리고,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먼저 용서하며 

먼저 사랑하는 '황금률'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주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좋은 것'이 되게 하옵소서.
비판의 어둠을 뚫고 기도의 빛으로 나아가게 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