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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7절 - 26절계명을 지키며 화목에 힘쓰는 삶

by Lily00112233 2026. 1. 21.

마태복음 5 : 17~26 계명을 지키며 화목에 힘쓰는 삶



율법에 대한 교훈 5:17~20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화해에 대한 교훈 5:21~26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1. 내용 요약
본문은 산상수훈의 핵심인 '율법의 참된 의미'를 다룹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음을 선포하시며,

겉모양만 중시하던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요구하십니다.

 

그 구체적인 첫 사례로 '살인'에 대한 계명을 재해석하시며,

물리적인 살인을 넘어 형제에 대한 분노와 모욕이 곧 영적 살인임을 지적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다 형제와의 화해가 우선임을 강조하십니다.

2. 역사적 구조
율법의 일점 일획: 히브리어 철자 중 가장 작은 '요드'나 글자의 아주 작은 삐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반드시 성취된다는 권위를 강조합니다.

라가(Raca): 당시 유대인들이 쓰던 욕설로 '골빈 놈', '쓸모없는 놈'이라는 뜻입니다. 

상대를 인격적으로 말살하는 언어적 폭력을 의미합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갈릴리에서 며칠을 걸어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 화해하고 오라는 것은, 화목이 그만큼 긴급하고 본질적인 일임을 뜻합니다.

3. 신학적 구조
① 율법의 완성자 예수 (5:17~20)
신학: 예수님은 율법의 조문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

율법이 원래 담고 있던 '사랑의 정신'을 회복시키러 오셨습니다.

더 나은 의: 서기관들의 의가 '규칙 준수'였다면, 천국 시민의 의는 '마음의 동기'로부터 나옵니다. 

천국은 행위의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법을 지키는 자들의 것입니다.

② 살인의 재정의와 화해의 우선순위 (5:21~26)
신학: 죄는 손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형제를 향한 분노와 멸시는 그의 인격을 살해하는 행위입니다.

예배와 삶의 일치: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예배)는 이웃과의 수직적 관계(화목)를 통해 증명됩니다. 

화해하지 않은 채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가짜 예배'임을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허들을 높이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깊이를 보여주셨습니다.

세상 법은 사람을 죽여야 죄라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법은 사람을 '미워하는 순간' 이미 죄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규칙이 아니라,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새 마음입니다.

예배의 감동보다 형제와의 화해를 더 급하게 여기는 자가 진짜 천국 시민입니다.


청년설교

 

껍데기 의(義)를 넘어, 생명의 화목으로
부제: 하나님보다 먼저 가야 할 곳—예배보다 급한 것이 있다

(마태복음 5 : 17~26 계명을 지키며 화목에 힘쓰는 삶)


 "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괜찮은데, 사람 앞에서는 무너지는가?"

 

오늘날 많은 청년이 신앙생활을 하며 이런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이랑은 정말 괜찮은 것 같은데, 사람이 너무 힘들어요.",

"예배 때는 눈물 흘리며 은혜받았는데,

집에 가자마자 가족이나 직장 상사 때문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라요."

 

우리는 은연중에 신앙을 두 영역으로 분리하며 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신앙'의 문제이고,

사람과의 관계는 단지 '성격이나 처세'의 문제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법을 어긴 적도 없고, 누군가를 물리적으로 해친 적도 없으니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야"라고 자부하며 예배의 자리에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어제 본 단톡방에서 그 친구를 향해 던진 무시 섞인 냉소,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를 향한 저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형제를 향한 차가운 침묵... 

주님은 오늘 그 껍데기뿐인 의로움을 뚫고 들어와 아주 불편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 말씀은 충격적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발걸음을 멈춰서라도 사람에게 먼저 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직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나의 예배는 하나님께 닿고 있습니까, 

아니면 깨진 관계를 피해 신앙이라는 이름 뒤로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까?"


역사적·신학적 배경: 문자를 넘어 심장으로 가는 율법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율법의 조항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문자' 속에 갇혀 죽어 있던 '하나님의 심장(사랑)'을 되살리시겠다는 선언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의 의(義)는 일종의 '행위 체크리스트'였습니다. 

"나는 살인하지 않았으니 이 계명을 지켰다"라고 안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는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마음의 동기'를 봅니다. 주님은 상대를 인격적으로 말살하는 욕설인 '라가(Raca)'나

상대를 무시하는 '미련한 놈'이라는 말 한마디가 실제 살인만큼이나 엄중한 심판의 대상임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손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완성: 하드웨어보다 중요한 소프트웨어 (5:17~20)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시며 그 권위를 확증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이 너무 엄격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율법을 단지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겉껍데기'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의
행동만 관리
규칙만 지킴
겉모습만 깨끗

 

바리새인들의 의(義)는 행동만 관리하고 규칙만 지키는 수준이었습니다. 

겉모습만 깨끗하게 닦아놓고 "나는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다"라며 스스로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천국 시민의 의는 행동의 결과가 아닌 '마음의 방향'을 봅니다.

주님은 기준을 낮추신 것이 아니라, 기준의 방향을 겉에서 속으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의 의
마음의 방향
관계의 진실성
사랑의 동기

ㅡ최신형 하드웨어와 구식 운영체제(OS)

여러분, 우리가 큰맘 먹고 수백만 원을 들여 최신형 스마트폰을 샀다고 가정해 봅시다. 
외관은 반짝이는 티타늄이고 카메라 렌즈는 네 개나 달려 있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최고의 플래그십 모델입니다. 
그런데 막상 전원을 켜보니, 그 안을 돌리는 소프트웨어가 
20년 전 피처폰 시절의 구형 OS라면 어떨까요?외형(하드웨어)은 완벽한데, 
속(소프트웨어)이 따라오지 못하는 기기는 비극입니다. 

최신 앱을 실행하면 바로 멈춰버리고, 
보안은 취약해서 해킹에 노출되며, 배터리는 광속으로 소모됩니다. 
겉모양은 '2026년형'인데 실제 성능은 '2000년대'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지적하신 바리새인들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조문'이라는 화려한 하드웨어를 갖추는 데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금식하고, 구제하고, 성경을 달달 외우는 겉모습은 흠잡을 데 없는 '최고 사양'이었죠.
하지만 그들의 영혼을 구동하는 운영체제(OS)는 여전히 자기 자랑, 정죄, 
그리고 탐욕이라는 구식 버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무리 율법이라는 하드웨어가 훌륭해도, 
그 안에 '사랑'이라는 최신 버전의 운영체제가 설치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매 순간 버벅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은 돌아가지 않고, 
작은 비판에도 영적 시스템이 다운되며, 
남을 판단하는 '버그'만 가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영혼의 전면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요구하십니다.
"나쁜 짓 안 했으니 괜찮다"는 수준의 구형 보안 패치로는 천국 시민의 삶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율법의 조항이라는 하드웨어를 단순히 유지하는 것을 넘어,
그 중심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강력하고 새로운 운영체제를 깔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지금 어떤 버전의 OS로 구동되고 있습니까? 
외형만 번듯한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속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최적화된 진짜 천국 시민입니까? 

지금 이 시간, 내 낡은 고집과 편견의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주님이 직접 설계하신 '사랑'이라는 최신 OS로 인생을 업데이트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의 삶은 버벅거림 없이 하나님의 뜻을 부드럽게 구현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살인의 재정의: 보이지 않는 칼, 미움 (5:21~22)

— 분노는 영혼을 죽인다


예수님은 인류의 오래된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하십니다. 

주님은 칼로 사람을 찌르는 물리적 행위뿐만 아니라, 형제에게 노하고 

그를 향해 인격적인 멸시를 쏟아붓는 모든 말과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는 '살인'과 다름없다고 선포하십니다.

 

 ㅡ소리 없는 총성, 말의 칼날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쉽게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두르며 삽니다. 
그것은 모니터 뒤에 숨어서 던지는 악플일 수도 있고, 
단톡방에서 누군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차가운 무시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 칼은 몸에 흉터를 남기지만, "너 같은 건 쓸모없어", 
"너는 실패자야"라는 말의 칼날은 영혼을 난도질합니다. 

 

수많은 청년이 실제 총성이 들리지 않는 전쟁터에서, 

이 날카로운 '말의 칼날'에 찔려 영혼이 죽어가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그 손에 쥔 '말의 칼'을 내려놓으라고 엄중히 명령하십니다.

 

ㅡ분노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폭력입니다

우리는 흔히 "화 좀 낼 수도 있지", "그 사람은 그런 욕을 먹어도 싸"라고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라가'나 '미련한 놈'이라는 욕설은 단순한 감정 분출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너는 사람 취급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선언하는 '인격적 말살'입니다.

 

주님이 분노를 이토록 심각하게 보신 이유는 분노가 공동체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의 영혼을 먼저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상대를 죽이기 위해 내가 먼저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미움이라는 칼을 품고 사는 한, 우리는 결코 천국 시민의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가 그 독한 마음의 칼을 내려놓고, 생명의 언어로 서로를 살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배보다 먼저 가야 할 길 — 화해 (5:23–26) 
미루지 말라, 지금 화해하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안하시는 해결책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당혹스럽게 들립니다. 

당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 성전까지 예물을 들고 오려면 며칠을 꼬박 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단 앞에 선 그 사람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실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관계가 깨어진 채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착각
눈물 흘렸다고
찬양에 감동했다고
말씀에 은혜 받았다고

하나님과 화목했다고 착각하지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계속 미워한 채라면
그 예배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나에게 닿으려 애쓰지만, 사실은 그 사람에게 먼저 가야 하지 않겠느냐?"

 

ㅡ미루지 마십시오
: 시간은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길에 있을 때 급히 사화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지금"이어야 할까요?

시간이 약이라는 세상 말과 달리,
신앙의 세계에서 방치된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하게 굳기 때문입니다.

화해를 미루면 상처는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굳어져 나의 비뚤어진 성격이 됩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나중에 내 마음이 편해지면 하겠다는 생각은 속임수입니다.

 

길 위에서, 재판관에게 넘겨지기 전인 바로 지금이 기회입니다. 

관계의 감옥에 갇혀 평생 원망의 빚을 갚으며 살 것인지, 

아니면 지금 먼저 손을 내밀어 천국 시민의 자유를 누릴 것인지는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먼저 가야 할 그 사람이 떠오른다면 주저 말고 유턴하십시오. 

그 순종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진짜 예배를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가서 화목하라: 고집을 꺾는 천국 시민의 품격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며 정결한 척 앉아

있는 우리의 머릿속에 자꾸만 떠오르는 불편한 얼굴이 있습니까?

 

"내가 옳으니까 저 사람이 먼저 사과해야지",

"내가 받은 상처가 더 크니까 이번에는 절대 먼저 연락 안 해"라는

그 단단한 고집이 혹시 여러분의 영혼을 가두고 있는 감옥은 아닙니까?

천국 시민은 자기의 옳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입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보다 형제를 잃지 않겠다는 사랑이 더 클 때, 

우리는 비로소 바리새인의 의를 넘어 주님이 원하시는 '더 나은 의'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에 든 '입술의 칼'을 먼저 거두십시오. 

내 마음속에 품었던 미움이 하나님 보시기엔 무서운 '살인'이었음을 정직하게 회개합시다.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할게", "우리 다시 시작해 보자"라는 그 짧은 한마디가 

여러분의 막힌 영적 혈관을 뚫어내는 기적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는 가장 빠른 길: 화해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종교적인 열심을 더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더 많이 기도하라거나, 더 오래 예배당에 머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가리키시는 방향은 명확합니다. "먼저 가서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본질: 율법은 우리를 가두는 규칙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사랑의 방향입니다.
   죄의 뿌리: 죄는 손끝의 행동 이전에, 이미 우리 마음의 동기에서 시작됩니다.
   예배의 조건: 하나님은 화려한 예물보다 형제와의 진실한 화해를 우선하십니다.
   신앙의 길: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 곧 하나님께로 가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오늘 '화해'라는 목적지로 유턴시키십시오.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통로는 바로 내가 등 돌리고 있었던 그 형제와 손을 잡는 곳에 있습니다. 

그 순종의 끝에서 여러분은 비로소 막힘 없이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짜 위로와 평강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실천은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묵상 질문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주하며,

내 마음속에 품은 미움과 분노를 '작은 죄'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나요?

   최근 내가 누군가에게 던진 말 중에 상대의 인격을 짓밟거나 존재 가치를 부정했던 '말의 칼날'은 없었나요?


   내 자존심 때문에 끝내 하지 못한 '전화 한 통'이나 '먼저 건네는 사과'는 무엇입니까?

   "나중에 내 마음이 풀리면 화해하겠다"며 미루고 있는 관계가 있나요?

 

 



껍데기 의를 벗고 생명의 화목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문자 뒤에 숨은 하나님의 심장을 가르쳐 주신 주님,

겉으로는 경건한 척, 아무 문제 없는 척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형제를 향한 날카로운 칼날과 미움의 독약이 가득함을 고백합니다. 

나쁜 짓 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여왔던 우리의 얄팍한 의로움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영혼의 운영체제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업데이트하기 원합니다. 

타인을 '라가'라 무시하고 '미련한 놈'이라 정죄하며 우리 마음속에서 수없이 저질렀던 살인의 죄를 회개합니다. 

사람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던 우리의 악한 말들을 멈추게 하시고, 

생명을 살리는 언어를 우리 입술에 담아 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 예배보다 급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오기 전, 우리가 먼저 찾아가야 할 형제가 누구인지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옵소서. 

막힌 관계의 혈관을 뚫고, 내 자존심을 꺾어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유턴의 용기를 주옵소서. 

기도만 길게 하고 삶에서는 돌이키지 않는 위선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옵소서.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화해의 현장으로 향하게 하옵소서. 

지금 급히 사화함으로 관계의 감옥에서 벗어나 주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와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겉모양만 번듯한 예물이 아니라, 

온전한 화목 위에서 드려지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화목제물 되시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